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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도마뱀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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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끼 Oct 23. 2021

'운명' 교향곡 5번 1악장

#11




윤영은 발작하듯 휴대전화를 집어 던졌다. 다리가 사시나무 떨듯 후들거렸다. ‘도대체 지금 내가 어디인지는 어떻게 알지? 그것보다 도어락을 해킹했으면…. 이 휴대전화는 멀쩡한 건가?’ 차라리 산속에 들어가 자연인으로 사는 것이 이 미친놈이 빅 브라더 마냥 지켜보는 염병할 일상보다는 나을 것이다. 윤영은 산으로 도망쳤다. 기다렸다는 듯이 뒤에서 그 녀석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어디 가냐고요? 키킥.” 


윤영이 뒤돌아봤을 때 그녀는 비로소 확신했다.

스토커는 며칠 전 집 앞에서 봤던 검은 모자에 위아래로 검은 옷을 입었던 남자였다. 온몸에 털이 바짝 섰다. 그 남자는 윤영을 향해 미친놈처럼 달음박질을 해왔다. 윤영은 사태를 파악하고 곧바로 반대 방향으로 달렸지만 금세 붙잡혔다. 살면서 처음 느끼는 극한의 공포였다.


“놔, 이 씨발 새끼야.”


스토커는 이내 윤영을 따라잡아 그녀의 왼손을 낚아챘고 윤영은 본능적으로 오른손을 들어 그 자식의 면상을 가격했다. 스토커가 쓰고 있던 안경의 렌즈가 깨지며 파편이 눈에 들어가 얼굴을 부여잡고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주저앉았다. 녀석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 꿇은 무릎을 발로 눌러 짓밟았다.


그리곤 윤영은 옆에 있던 돌을 집어 들어 자신의 일상을 송두리째 망쳐버린 악마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순간 귓가에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5번 1악장이 울렸다. 마치 머릿속에서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해방감과 속 시원함이 그녀를 휘감았다. 신이 나서 웅장하고 비장한 선율에 맞춰 연신 돌로 머리를 내리쳤다. 리드미컬한 타격감이 손끝으로 느껴지며 짜릿한 전율이 일었다.


‘이런 인간도 사람이라고 땅에 발을 붙이고 같은 하늘 아래 산다면. 그리고 법이 이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면. 내가 이 새끼를 단죄하고 말겠어. 이 구더기만도 못한 새끼. 죽어 마땅한 개새끼.’


이 기세를 몰아서 고꾸라진 녀석의 등을 한쪽 발로 밟아 서고 연속적으로 두개골을 후려 깠다. 윤영의 얼굴에 스토커의 피가 잭슨 폴록의 ‘뜨거운 추상’ 작품처럼 흩뿌려졌다. 비릿한 피비린내가 후각을 자극했다. 얼굴에는 선홍빛의 뜨끈한 스토커의 혈흔이 잔뜩 튀었다. 윤영은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퍼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너는 나를 망칠 수 없다.’


바로 그때 도마뱀처럼 기형적으로 돋아났던 윤영의 꼬리뼈가 ‘딱’하고 끊어졌다. 이제 꼬리뼈가 있던 자리에는 불그스름한 흔적만이 남았다. 윤영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비록 정당방위지만 살인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저 꼬리는 어쩔 것인가.


윤영은 홀린 듯이 손에 들고 있던 돌의 혈흔을 바로 옆에 흐르는 개울에 씻고 롱스커트로 문질러 자신의 지문을 지웠다. 그리고 얼굴에 튄 핏자국을 세수했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일이 클수록 침착하게.’  윤영은 집어 던졌던 휴대전화를 다시 주워들고 유유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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