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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도마뱀 1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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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끼 Oct 23. 2021

무엇을 위해 달리는가

#10




그녀는 핸드폰과 지갑을 손에 쥐고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윤영은 정말 정신 나간 사람처럼 정처 없이 달렸다. 이마를 스치는 바람의 서늘한 감각만이 이것이 현실임을 인지 시켜 주고 있었다. 그러다 지면을 미처 의식하지 못한 탓에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운동화가 벗겨지고 앞 코가 닳았다. 창피하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윤영은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일어나 먼지를 툭툭 털고서는 다시 달음박질쳤다. 그녀는 대로변에 다다라서야 급하게 택시를 잡아탔다.


“어흑, 기사님 서울역! 서울역으로 가주세요.” 택시기사는 미터기의 승차 버튼을 누르고는 목적지로 향했다. 놀란 가슴이 진정되지 않았다. 심장은 너무나도 격렬하게 뛰어서 마치 토하듯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속이 메스꺼웠다. 순간 택시에 탄 모습마저 스토커가 지켜본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올라왔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그녀는 돈도 내지 않고 갑자기 차 문을 열고 뛰쳐 내렸다.


이제 윤영은 이성적으로 행동하기가 힘들 정도로 극한의 상황을 겪고 있었다. 급하게 내린 곳이 어딘지도 모르겠지만 그녀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쳐야 하는지도 뒤죽박죽 정리되지 않은 채 미친 듯이 달려댔다. 그리고 내가 왜 이런 끔찍한 일을 겪어야 하는지에 대한 억하심정과 스토커를 향한 증오와 혐오감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그 새끼는 악마임에 틀림이 없다.


간간이 윤영을 이상하게 보는 사람들을 지나 윤영은 사람이 없는 곳으로 냅다 뛰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등산로의 입구가 보였다. 서울 인근의 야산인 듯했다. 주변을 둘러봐도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윤영은 이곳에서 잠시나마 안전할 거라 안심했다.


그 순간 휴대전화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윤영은 멍하니 휴대전화를 바라보다 이내 크게 결심을 한 듯 침을 꿀꺽 삼키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크크큭 큭큭, 뭐해요? 지금 본인 되게 바보 같은 거 알아요? 아 오랜만에 엄청나게 웃었네. 끅끅. 윤영 씨 반응이 너무 재밌는 거 알아요?” 휴대전화 너머의 목소리는 그놈이었다. 이 새끼는 뭐가 그리 신이 났는지 자지러지듯이 웃어 재꼈다. ‘이 상황이 지금 웃긴가? 이 씨발놈이.’


그러다 갑자기 웃음을 뚝 끊고선 한 마디 덧붙였다.“근데 산에는 뭐하러 갔어요? 내일 출근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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