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배운 교육학 - 욕구위계이론
중등임용시험을 준비하던 첫해엔 사람을 피해 다녔다. 대학 졸업 후 타국에서 일하다가 조용히 귀국했고, 본가와 도서관을 왕복하며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스터디에서만 사람을 만났다. 저녁이면 운동장을 빙글빙글 걸으며 팟캐스트나 라디오로 대화에 대한 결핍을 채웠다.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에게 에너지를 얻는 성격이지만 도무지 타인을 만나고 싶지가 않았다. 나라는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위태로웠다.
그렇게 1년을 매달린 시험에서 떨어졌다. 멈췄던 숨을 끝끝내 참지 못하고 몰아쉬듯 친구 O를 만났다. O는 커피 대신 차 한 잔을 주문했다. 웬일이냐고 가볍게 물었는데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만의 커리어를 단단히 쌓아가던 O가 건강검진에서 심각한 병을 진단받았다고 했다. 주사를 17개씩 맞으며 수술까지 했고, 이제 먹거리는 물론 화장품과 샴푸까지 모두 친환경 유기농으로만 쓴다고 했다. 만난 지 다섯 시간쯤 되었을 때였다. 말과 말의 꼬투리를 잡고 나온 욕구위계이론에 O가 맞장구를 쳤다.
“나 요즘 매슬로우의 욕구위계이론에 대해 생각했잖아.”
“어? 나도 그런데!”
교육행정에서 배우는 매슬로우의 욕구위계이론은 욕구가 중요도에 따라 일련의 단계를 형성한다고 보는 동기 이론이다. 가장 낮은 1단계는 먹을 것, 마실 것 등 생물학적인 본능과 관련된 '생리적 욕구'이다. 2단계는 주거, 재정, 건강 등에서 위험과 박탈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불안을 회피하려는 '안전 욕구'이다. 그다음 나타나는 3단계는 좋아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아들여지고 원하는 집단에서 소속감을 느끼고자 하는 '소속 및 애정의 욕구'이다. 4단계는 어느 집단의 단순한 구성원 이상으로 성취하고 명예, 인정, 관심 등을 얻길 갈망하는 '존경의 욕구'다. 마지막 5단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고 더 나은 인간이 되고자 하는 '자아실현의 욕구'다.
“이번에 공부하며 되게 인상 깊었던 게, 단순히 욕구 단계만 구분한 게 아니더라고. 중요한 건 하위 단계의 욕구가 먼저 채워져야 위계 상의 다음 단계 욕구가 그제야 충족을 요구한다는 거야. 지금 당장 먹고살 게 없어서 생리적 욕구가 결핍되어 있으면 상위 욕구인 자아실현 욕구는 나타나지도 않는다는 거지. 나는 진짜 사람 좋아하는 성격인데, 직업도 없고 안전 욕구가 결핍되어 있으니까 사람들과 만나고 싶은 욕구가 전혀 안 생기더라.”
“그니까. 아플 때는 다른 거 다 필요 없었어. 연애고 자아실현이고 다 모르겠고, 그냥 건강만 하면 바랄 게 없는 거야. 근데 건강이 회복되니까 신기하게도 이것저것 또 해보고 싶어지더라.”
그로부터 1년이 지나 중학교에 발령받았다. 똑같은 교과서에 고개를 파묻고 똑같은 필기를 하는 자그마한 아이들을 가끔 우두커니 바라본다. 똑같아 보이지만 모두 다른 이 존재들은 어떤 욕구를 지니고 있을까. 제각기 어떤 욕구가 결핍되어 있을까.
그러다 내가 채울 수 있는 욕구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내가 채워줄 수 있는 결핍이라면 채워주고 싶었다.
내가 ‘교탁의 시간’이라고 부르는 순간이 있다. 조례 전이나 쉬는 시간에 짬을 내어 교실에 들어선다. 교탁에 가만히 서서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으면 아이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그리고 별별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교탁의 시간에 아이들의 연애 이야기도 듣고, 수업 시간에 혼난 이야기도 듣고, 아이들의 신나는 춤도 구경한다. 수업 시간에 보지 못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다.
이 교탁의 시간을 좋아하는 이유는 가장 큰 이유는 나를 매개로 온갖 학생이 어울린다는 점이다. 교탁에 서서 학습지를 정리하고 있으면 아이들은 차례차례 종이를 넘기는 나의 손끝을 주시한다. 자신의 학습지가 언제 나타날지 궁금해하며 시선이 집중되는 순간, 일부러 전학생의 학습지를 오래 펼쳐놓는다.
“우와, 진섭이 봐봐. 글씨가 완전히 할아버지 글씨야.”
이 별것 아닌 말에 아이들은 “저도 볼래요!”라며 고개를 뺀다.
“진짜네! 진짜 할아버지 글씨네!”
“와, 앞으로 가정통신문 사인은 얘한테 부탁하면 되겠다.”
“야, 너 선생님 계시는데 무슨 말이야!”
무리가 확실하게 나뉘어 있고, 다른 무리에 속하면 말 섞을 일이 별로 없는 아이들이 글씨체 하나에 다 같이 감탄한다. 진섭이는 쑥스러워하며 가만히 바라만 보고 있다. 그렇게 전학생을 슬그머니 섞어놓는다. 나는 슈퍼마리오가 금화를 모으듯 진섭이의 소속 및 애정의 욕구 주머니가 띠링 효과음과 함께 금화 한 개를 채우는 이미지를 상상하곤 몰래 웃는다. 그렇게 교탁 주위를 맴돌며 아이들의 욕구와 결핍을 채우고 띠링 효과음으로 화음을 만들고자 하는 욕심을 낸다.
그러나 그 화음은 순전히 욕심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꼬박 사계절이 걸렸다. 아이들을 알 만큼 안다고 생각한 12월이었다. 이제 우리가 ‘우리’로 엮일 날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청소를 마치고도 괜히 교탁 주위를 서성이고 있을 때 진주가 애타게 불렀다.
“선생님! 선생님! 은송이가 카톡으로 욕했어요!”
“뭐라고? 나는 은송이가 살면서 욕을 한 번도 안 한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이거 보세요.”
아이들은 호들갑스럽게 핸드폰 속 대화를 보여준다. 나는 최대한 충격 받은 표정을 짓는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은송이가 욕을 하지? 세상 모든 사람이 욕을 해도 은송이는 욕을 안 할 줄 알았는데……. 나는 속았어.”
그러면 은송이는 억울한 표정을 짓는다.
“선생님! 쟤가 먼저 뭐라고 했어요!”
주위에 있던 아이들은 모범생 은송이가 난처해하는 모습에 마냥 신이 난다. 그러면서 진주가 큰 비밀이라도 알려주듯 말한다.
“선생님, 선생님이 아는 저희는 10%밖에 안 돼요!”
나는 그 말이 웃겨서 더욱더 놀라는 척을 한다.
“뭐라고? 나는 너희에 대해 전부 다 아는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선생님! 저희는 선생님 생각보다 더 이상한 애들이에요!”
“응? 너희 이상한 애들이었어? 나는 너희가 좋은 애들인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선생님! 오해예요!”
아이들은 봄바람 같은 웃음을 지으며 자지러진다.
수업 종이 치면 아이들은 모여 앉고 나는 혼자 교무실로 돌아온다. 별것 아닌 대화가 자꾸 떠올랐다. 10%라니. 100%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60%쯤은 알지 않나? 괜히 반박하는 마음이 피어올랐다.
그러나 그것이 사실일 것이다. 내가 아이들을 아무리 사랑한다 한들 10%밖에 모를 것이다. 나는 결국 너희의 욕구도 결핍도 고스란히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아는 그 10%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이들을 쉽게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어른의 그 오만한 과대평가를 내려놓아야만 한다. 다만 정성을 다해 전하고 싶다. 너에게 다채롭게 출현할 욕구를 채우기 위한 복잡다단한 여정을 너희가 즐기면 좋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