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어.
작년에 함께한 너와는 더 깊이 친해질 기회가, 올해 처음 만나는 너와는 새로운 인연을 맺는 시작이 될 거라 생각하니 심장이 쿵쿵대.
나는 너에게 금요일마다 편지를 쓰기로 다짐했어. 처음엔 ‘금요신문’을 만들려고 했지. 금요일마다 한 주의 뉴스를 실은 우리만의 신문을 발간하면 근사할 것 같았거든. ‘안녕하세요! 선생님은 설레는 마음으로 3반을 기다렸어요’로 시작하는 신문을 밤늦게 완성했어. 체계적으로 전달사항을 정리한 창간호를 뿌듯한 마음에 몇 번이나 다시 읽었지.
이럴 수가, 하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어. 자꾸만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게 거슬렸기 때문이야. 나는 ‘선생님’과 ‘학생’이 아니라 ‘나’와 ‘너’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
나의 엄마는 ‘엄마가~’라고 말하는 습관이 있어. 그런 엄마에게 영어를 가르쳐준 적이 있는데, 자꾸만 주어를 ‘I’라고 하지 않고 ‘Mother’라고 하는 거야. 내가 “Do you like apples?”라고 물으면 “Yes, Mother like apples.”라고 대답하는 식이야. 아마 나를 앞에 두고 머릿속에서 ‘응, 엄마는 사과 좋아해.’라는 문장을 만들었기 때문이겠지.
나는 그게 싫었어. ‘엄마’가 아니라 ‘나’가 주어라고, ‘나’가 자신의 행동을 하는 주체라고 여러 번 말했어. 엄마는 알았다고 해놓곤 어김없이 Mother부터 내뱉었어. 그렇게 많이 주의를 환기하였는데 틀린 줄도 모른 채.
그런데 어느덧 나에게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습관이 생겼더라. 나는 이 낯선 습관이 익숙해질까 두려워. 엄마가 자꾸 ‘엄마가~’라고 말할 때마다 답답했는데 내가 자꾸 ‘선생님이~’라고 말하는 그 답답한 사람이 되어버릴까 걱정돼. 말하자면 내가 내 이름보다 내 역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까 봐 걱정되는 거야.
‘금요신문’이란 제목은 ‘금요일의 편지’로 바꾸었어. 제일 위에 박아두었던 학교 로고는 ‘우리 반 로고를 모집합니다’라는 문장으로 대체했고. ‘신문’이란 단어와 학교 로고는 ‘나는’으로 시작하는 글에 어울리지 않았거든. 힘들게 쓴 글을 몽땅 지우고 온 우주에 단 한 명인 너를 상상해. 그리고 다시 말을 걸어.
내 이름은 영화야. 내가 좋아하는 이동진 평론가의 블로그 제목이 ‘언제나 영화처럼’이라 기뻤던 기억이 있어.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도덕 선생님을, 2학년 때는 가정 선생님을 좋아했는데 3학년 때 최종적으로 국어 선생님을 좋아했고 국어 선생님이 되었어(물론 중학생 땐 동방신기가 최고였어). ‘오늘도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걸 좋아해.
너는 어떤 새해 계획을 세웠는지 궁금해. 너의 새해 계획이 무엇이든 응원해. 너도 나의 새로운 한 해를 응원해주길 바라.
자, 오늘도 반가웠어!
추신.
나는 지난주에 좋아하는 작가의 공연을 보러 가서 사인을 받았어. 작가님은 책에다가 ‘사랑과 용기를 담아’라고 써주셨어. 그 문구를 보며 너의 이름을 떠올렸어. 나는 지금 사랑과 용기를 담아 너를 맞이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