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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Oct 24. 2021

우리에게 필요한 동기

현장에서 배운 교육학 - 자기결정성 이론

 



코로나19로 인해 5인 이상 집합 금지가 지속되었고, 견디다 못해 친구들과 화상회의로 모였다. 근황을 나누다가 한 친구가 말했다.



 “나 궁금한 게 있어. 너희는 공부하는 게 재미있어?”



 우리는 장난처럼 이구동성으로 대답했다.



 “재미있지!”



 질문했던 친구는 흥미롭다는 듯이 말했다.



 “다른 친구들이랑 얘기가 나왔는데, 내가 공부하는 거 재미있다니까 신기하다는 거야.”


 “그래? 모르는 걸 알아가는 게 재미있는 거 아니야?”



 이런 우리가 웃겨서 “공자님도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라고 했는데~”라고 농담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는 다 본업 외에도 꾸준히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었다. 시사스터디든 영어스터디든 창작스터디든 주말을 할애해 공부하는 것이 있었고, 하다못해 우리끼리 한 달에 한 번 놀 때도 책 한 권을 읽고 만나서 얘기를 나눴다. 다들 공부든 그룹 활동이든 발표든 ‘하지 않기’보단 ‘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왜 공부가 재미없다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어떻게 하면 공부가 재미있게 느껴질까?     





 교육심리학에는 학습동기이론 파트가 있다. 행동을 하게 만들고, 그 행동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동기가 과연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이론이 무수하지만 대부분 두 가지 동기를 기본으로 다룬다. 먼저 내재적 동기는 과제 그 자체에 대한 흥미와 즐거움에서 비롯되는 동기다. 한편 외재적 동기는 보상, 경쟁, 처벌 등 외적 자극에서 비롯되는 동기다. 당연히 내재적 동기가 더 좋은 것이라고 본다. 학교에서 외재적 보상에 해당하는 사탕이나 도장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외재적 동기에 대한 비판이 불편했다. 나는 도장판이 주어지면 기어코 그 도장판을 다 채우고야 마는 학생이었다. 칭찬을 들으면 몇 번이고 되새기며 즐거워했다. 결과에 대한 보상이 선명히 주어질 때 더 신이 나서 열심히 했다. 외재적 보상에서 비롯된 동기의 기쁨을 분명히 체험했기에 이것을 헛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이 의문을 해소해준 것이 자기결정성 이론이었다. 이 이론은 이분법적으로 내재적 동기가 긍정적이고 외재적 동기가 부정적인 게 아니라, 두 유형이 연속선상에 있으며 상호보완적이라고 반박한다. 무(無)동기 상태에서 내재적 동기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외재적 동기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기결정성이 상승함에 따라 외재적 동기가 점점 줄어들고 내재적 동기로 채워진다. 완전히 동기가 내면화되면 내재적 동기만으로도 행위를 하게 된다.


 자기결정성이란 ‘자신의 행동과 운명을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믿음’, ‘어떤 선택과 결정에서 스스로 자유로움을 느끼는 것’,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을 뜻한다. 자기결정성이 높아질수록 ‘자기로부터 시작되는 행동’, 즉 내재적 동기가 상승하는데 역설적으로 내재적 동기의 상승을 위해서는 환경이 중요하다. 인간에게는 생리적 욕구뿐만 아니라 생존을 위해 유능성, 자율성, 관계성을 충족하고자 하는 심리적 욕구가 있는데 이 심리적 욕구가 지지되는 환경에서 점차 내재적 동기가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결정성이란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는 내부로부터의 믿음이지만 얼마나 자기결정성을 발휘하느냐는 주위 환경이 결정한다.


 아이들의 주위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절대적으로 가정과 학교의 역할이 크다. 너무 쉽지도 너무 어렵지도 않은 도전적인 과제를 제시하고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줄 때 유능성이 충족되며 아이 스스로 규칙이나 과제, 속도를 선택할 때 자율성이 충족된다. 협동학습이나 무조건적이고 긍정적인 존중을 통해 관계성이 충족된다. 


 스스로 학습하고자 하는 내재적 동기를 단번에 일으키긴 어렵다. 그러나 칭찬과 긍정이라는 외재적 동기라면 해볼 만하다. 실제로 나의 사소한 말에 아이들이 변화하는 경험을 수시로 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민서가 떠오른다. 민서는 교무실에 올 일이 없는 아이였다.


 교무실에 앉아 있으면 말썽꾸러기들이 자주 들락거린다. 혼이 나러 올 때도 있지만 당당하게 “선생님, 사탕 주세요”라고 요구할 때도 있다. “오늘 했던 착한 일이 뭐야?”라고 물으면 진지한 표정으로 고민하다가 “수업 시간에 안 잤어요.”라고 답한다. 듬뿍 칭찬하고 사탕을 건넨다. 그런가 하면 공부에 열성인 아이도 있다. 질문할 문제집을 가져오거나 독서감상문 여러 장을 들고 선생님을 찾는다. 수업 시간에 떠든 아이들을 이르러 오기도 한다.


 민서는 내가 장난을 걸어도 가만히 미소 짓는 아이였다. 친구들과 잘 지내지만 떠들썩하지는 않고, 수업 시간에 가끔 졸기도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들고 집중했다. 한 마디로 교사가 안심할 수 있는 아이였다. 안심할 수 있는 아이는 오히려 교무실에 올 일이 없었다. 


 학기 초가 되고 학급 임원 선거 공고문이 붙었다. 후보자 등록 마감일은 다가오는데 지원자가 아무도 없었다. 아침 조회든 오후 종례든 빨리 끝나길 바라는 아이들 앞에서 일단 해봐라, 모든 시작은 성공하면 기회가 되고 실패하면 경험이 된다, 구구절절 설명하느라 분주했다.


 점심시간에 민서가 교무실 문을 톡톡 두드리고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깜짝 놀라기까지 했다. 민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저 회장 선거 나가려고요.”


 “응? 좋지!”



 당황스러운 마음을 감추려고 더욱 크게 기뻐했던 것 같기도 하다. 응원과 함께 입후보 등록 신청서를 건넸다. 이후로 세 명이 더 후보자 등록을 했고, 민서는 집에서 꼼꼼하게 준비해온 공약서를 발표하고 부회장에 당선되었다.


 청소 시간이 끝나고 텅 빈 교실에 섰다. 후보자로 나온 네 아이의 보호자에게 한 명씩 전화하여 오늘 우리 아이가 얼마나 용기를 잘 냈는지 전했다. 민서의 어머니께 축하를 전할 때였다.



 “선생님, 감사해요.”


 “아녜요, 민서가 잘한 거죠.”



 으레 나누는 대화인가 했건만 이어지는 이야기가 놀라웠다.



 “선생님 덕분에 민서가 회장 선거에 나가겠다고 한 걸요.”


 “네?”


 “선생님께서 민서에게 임시 반장을 맡기셨다면서요. 민서에게 반장 역할을 잘한다고 칭찬해주셔서 기뻤나봐요. 저에게 ‘회장 선거 나가볼까?’라고 묻더라고요. 저야 하면 좋겠다고 응원해줬죠. 며칠 동안 말이 없기에 궁금했는데 결국 나갔네요. 선생님 덕분이에요.”



 뜨끔했다. 민서가 임시 반장을 맡은 건 단지 민서가 4번이었기 때문이다. 개학하고도 일주일 후에야 치르는 임원선거 전까지 학급 일을 도울 사람이 필요했다. 날짜에 해당하는 번호에게 임시 반장을 부탁했다. 우리 학교는 성별 구별 없이 가나다순으로 번호를 부여하는데 김 씨인 민서는 4번이었고, 그렇게 4일의 임시 반장을 맡게 된 것이다.


 아무 가시적 대가가 없으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칭찬밖에 없었다. 습관에서든 고마움에서든 인사를 잘하네, 칠판을 잘 닦네, 친구를 잘 챙기네, 말을 걸었을 뿐인데 민서는 나의 한 마디를 소중히 심은 것이다. 그렇게 심은 한 마디를 자꾸 들여다보다가 스스로 싹까지 틔운 것이다.





 현지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는 현지는 점심시간이면 책을 읽는 아이였다. 무슨 책을 읽는지 궁금해서 들여다보고 내가 읽은 책이면 호들갑을 떨었다. 모르는 책이면 후기를 알려달라고 말해두기도 했다. 학부모 상담주간에 보호자와 전화하며 “현지가 어쩜 그렇게 책을 많이 읽어요?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더라고요.”라고 말씀드렸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네?”


 “제가 현지 책 읽히려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는데도 안 듣더니, 어느 날 와서 말하더라고요. 점심시간에 책 좀 훑어보고 있었을 뿐인데 선생님이 칭찬하셨다고, 선생님은 자기가 책 많이 읽는 줄 착각하고 계신다고요. 근데 그다음부터는 진짜로 책을 많이 읽으려고 하더라고요.”     





 공부가 재미있다는 그 친구들 중 한 명이 어릴 적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아주 어렸을 적에 배를 깔고 누워서 앉은키가 높은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며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동그란 얼굴이 아니라 아래에서 보이는 대로 코를 뾰족하게 그리고 턱이 얼굴의 중앙에 있는 그림이었다. 그걸 보고 할아버지는 “얘는 대단한 사람이 될 거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 말이 서른이 넘은 지금도 종종 생각난다고 했다. 진짜로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어쩌면 대표적인 외재적 동기인 칭찬은 레고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들은 살아가며 받은 칭찬 레고들을 가득 가지고 있다. 어린아이를 만나면 소중한 레고를 한두 개 쥐여준다. 한 번에 너무 많이 주면 오히려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는 이곳저곳에서 받은 레고를 모으고 조합하며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라는 내재적 동기가 생긴다. 나만의 작품을 이리저리 만들다 보면 이 멋진 레고 만들기를 같이 하기 위하여 자신의 레고 블록을 다른 사람에게 건넬 마음이 생긴다.


 어른인 나는 성장하는 아이들의 환경을 구성하는 존재다. 내가 건네는 말과 행동이 아이가 지닌 세계의 배경이 된다. 나이를 먹었는지 종종 아이들을 보면 ‘너희가 미래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를 위하여, 나는 좋은 환경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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