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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Oct 24. 2021

교권침해 피해 교원이 되다




 “씨발.” 학생이 나를 향해 욕설을 내뱉었을 때 반사적으로 치밀어 오른 문장은 단순했다. ‘야, 너만 욕할 줄 알아? 나도 욕 잘해!’ 하지만 상대는 열여섯 살이었다. 나는 어른이기 때문에 복잡한 이해를 해내야 했다. 그 ‘하지만’과 ‘때문에’가 억울했다.     


 심리상담을 받으며 비로소 알아차렸다. 나는 나를 풍선처럼 부풀리고 있었다. 굉장한 척 과장했던 몸짓이 터져버렸다. 후련했다.











 중학교 3학년 국어 시간이었다. 학생이 교과서를 던지며 욕을 했다. 교실은 일순 조용해졌다.



 “뭐라고 했지?”



 학생은 좀 더 큰 목소리로, 또박또박 욕설을 반복했다.



 “왜 욕을 하며 교과서를 던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대화가 이어질수록 수렁에 빠졌다. 길고 긴 실랑이를 마무리 짓기 위해 “끝나고 교무실로 오세요.”라고 말하자 냉큼 “싫어요.”라는 답이 날아왔다. 화가 나서 몸이 떨렸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수십 개의 눈동자가 있었다. 별별 생각이 엉키는 가운데 속으로 되뇌었다.



 ‘태연해야 해. 울면 끝이야.’



 수업을 시작한 지 10분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나는 그 학생의 발언과 우리의 대화를 천천히 메모했고 잠시 노래 한 곡을 들은 뒤 끝까지 수업을 마무리했다. 아이들에겐 학습권이라는 게 있고, 다른 반과 진도를 맞춰야 하기도 했다. 자주 입술을 깨물었다.


 종이 울렸다. 학생 몇몇이 몰려와선 교실 문도 나서기 전에 나를 안았다. 그새 쓴 응원의 쪽지들을 받았다. 더욱더 서러워졌다. 교무실로 돌아오자마자 한글을 켜서 경위서를 작성했고 학생부장님께 교권위를 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 아이를 대할 때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불러서 다시 대화해야 할지, 그렇다면 내가 받은 상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도무지 마음 정리가 되지 않는데 다음날 또 그 반에 들어가야 했다. 


 교권위를 열고 싶다고 해놓곤 교권위가 무엇의 약자인지도 몰라서 퇴근 후에야 관련 규정을 찾았다. ‘학교교권보호위원회는 교원의 교육 활동 보호에 관한 사항을 심의·자문하는 기능을 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정당한 교육활동 중인 교사를 학생이나 학부모가 폭행‧모욕하는 등 교육활동 침해 사안이 발생한 경우 위원회 심의를 통해 피해 교원에게 공무상병가, 심리상담, 학급 변경 등을 지원하는 개념이었다.


 절차는 빼곡했다. 이미 교권위를 열어봤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일이 늘어난 부장님은 난감한 기색을 표하셨고, 곁에 계신 다른 부장님은 “요즘 젊은 교사들은 너무 약해. 학생이랑 갈등이 있으면 자기 실력을 높일 줄 알아야지”라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학생도 학생이지만 동료 교사들에게 상처받았다고 했다. 그때 나는 소리 높여 분노했었다.



 “아니, 애가 적절하지 못하게 욕을 했으면 그에 대해 책임지게 하는 것도 교육 아냐? 거기다 교사도 노동자이자 근로자잖아. 아이들도 교사가 월급 받는 거 다 안다구. 우리 아이들도 나중에 직업인이 될 텐데, 한 직업인이 감정적인 욕을 얻어먹고도 그냥 감내해야 하면 뭘 보고 배우겠어?”



 그래놓고는 다음 날 출근해선 교권위를 열지 말자고 변덕 부렸다. 우리 학교는 신설 학교라 애초에 교권위가 조직되어 있지 않고, 안 그래도 한 명이 감당하는 업무가 엄청나게 많은데 교권위까지 열어야 하는 게 죄송했다.


 오히려 학생부장님께서 위원회를 열어야 한다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선 선생님 탓이 아닌데도 책상에 커피 우유를 두고 가셨다. 어떤 선생님께선 상담을 알아봐 주시기도 했다. 별일 없는 척 밥을 사준 분도 계시고 나보다 더 격분하신 분도 계셨다. 결국 교권위를 열기로 했다. 이처럼 좋은 선생님들이 곁에 계셨기에 분노에서 헤어날 수 있었다.     


 치솟는 분노 다음에 가장 먼저 휘몰아치는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애초에 내가 잘못한 게 아닐까? 다르게 대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라서 그런 걸까? 다른 선생님이라면 어땠을까? 나는 이 자리가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닐까? 잠깐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그날의 대화가 어지럽게 펼쳐졌다. 끊임없이 복기하고 스스로의 미숙함을 자책했다.


 작년에 비슷한 사례로 교권위를 열었다는 선생님께는 좀 더 솔직할 수 있었다. 



 “선생님, 저는요. 사과를 받아주기 싫어요. 용서하기 싫어요.”



 아이가 사과를 구하면 어른은 이해하고 용서해야 하며, 심지어 “사과하러 와줘서 고맙다”라고 말하는 게 어른스러운 어른이라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나도 상처를 받았다고, 나도 싫은 사람은 싫다고 펑펑 울었다. 그렇게 울고 나면 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어른스러운 어른이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학생이 수업 시간에 욕을 하는 것도, 대화 중에 침을 뱉는 것도(그러면서 “쌤한테 뱉은 거 아닌데요? 감기 걸린 건데요?”라고 태연스레 말하는 것도) 교직 생활을 하다 보면 흔한 일이라고 하셨다. 경고하고 넘어가거나 무시한다고들 하셨다.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없었던 셈 칠 수가 없었다.


 그 아이는 사과를 하러 왔다. 학생부장님이 타이르신 것 같았다.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알겠어.”라고 말했다. 도저히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 아이는 그날 이후 교실에서든 복도에서든 천연덕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나는 그게 얄미웠다. 


 그리고 그 학생을 얄미워하는 내 마음이 더욱더 미웠다.      





 많은 선생님께서 “가장 힘들었던 아이가 결국 가장 애틋한 아이가 되더라”라고 말씀하셨다. 난 그것도 싫었다. 뻔한 화해 서사가 싫었다. 나는 교훈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상처받은 걸 기억하는 인간일 뿐이었다. 한 학기를 마무리한 지금, 억울하게도 그 아이가 정말 애틋해져 버렸다.


 도서관 활용 수업이 취소된 날 다들 “아, 도서관 가고 싶은데!”라고 아우성칠 때 대뜸 “나는 국어 수업하는 게 좋은데?”라고 말하기도 하고, 갑자기 답도 모르는 발표를 열심히 했다. 어디 적는지 모르면서 어쨌든 교과서를 펴고 판서를 따라 적었다. 학기말 성적을 확인하곤 머쓱한 듯 다른 아이들의 점수를 기웃거리며 “쌤, 2학기 때는 제가 진짜 보여드릴게요.”라고 말했다. 한 번 더 사과하러 와서는 “저 요즘 국어 수업 열심히 듣고 있어요.”라며 민망한 듯 웃을 때, 나는 결국 말해버렸다.



 “사과해줘서 고마워.” 



 진심이었다.     


 그날, 아이가 던진 교과서가 여전히 땅에 덩그러니 떨어진 채로 수업을 다시 시작하며 말했다.



 “나는 교사고 여러분은 학생이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한 명의 인간이에요. 나는 여러분을 학생으로서 존중한다기보단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해요. 그리고 여러분들도 나를 선생님으로 존중하기보다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자,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를 추천해줄 사람? 노래 한 곡을 듣고 수업을 이어갑시다.”



 한 아이가 손을 들었고 우리는 4월에 어울리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들었다. 싸늘했던 교실에는 기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학생을 ‘미숙한 인간’으로 보는 관점을 싫어했다. 교사와 학생이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어야 하며, 어른은 ‘성숙한 사람’이고 아이를 ‘미숙한 사람’으로 보는 관점은 잘못되었다고 믿었다. 우리는 동등한 인간으로서 관계를 맺어야 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러니까 욕설을 들었을 때 더욱 분개했다. 차라리 ‘애들은 뭘 모르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면 한마디 따끔하게 하고 넘어갔을 텐데, 한 명의 인간이 한 명의 인간에게 욕을 하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후에 이어진 대화는 전투장에서의 기 싸움이었다.


 방학이 되고 아이와 거리를 두고 나서야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는 ‘미숙함’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아닐까. 나는 그 아이보다 두 배를 살았고, 그만한 시간을 더 경험했으며, 그만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통해 더 배웠다. 그런데도 아직 미숙하다. 결국 완전한 인간과 완전한 인간이 관계 맺는 것이 아니라 미숙한 인간과 미숙한 인간이 함께 사는 것이므로 누구든 서로에게 실수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다면 조금 덜 미숙한 사람이 조금 더 미숙한 사람을 포용해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그 상황에서 분노가 타당한지에 대한 기 싸움이 아니라 아이의 갑작스러운 분노 그 자체를 인정해줄 수 있지 않았을까. 구겨진 채 덩그러니 바닥에 떨어진 교과서를 주워서 탁탁 털어낸 후 아이의 책상 위에 올려둘 수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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