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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이 Aug 24. 2022

김영하 작가의 <작별인사>를 읽으며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소설이나 에세이 종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읽을까 했다. 그런데, 방금의 사건으로 그것마저 다시 고려 중이다.


방금 SNS를 하다가, 너무나도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았다. 어느 책인가 궁금해서 후속에 쓰인 문장을 읽으니, 내가 현재 읽고 있는 책인 <작별인사>였다. 작별인사에 저런 문장이 있었다고? 충격에 빠진 나는 다시 책을 뒤적거렸다. 그 문장은 정말 있었다.


교육이나 공부를 위한 도서가 아니더라도 꼼꼼히 읽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어떻게 꼼꼼히 읽을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고민이 필요하겠지만 말이다. 이 밑으로는 충격에 빠진 내가 다시 읽으며 적어둔 인상 깊은 인물 대사들이다.


p.150

살면서 기쁜 순간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은 괴로움에 시달리거나 혹시 찾아올지도 모를 잠깐의 기쁜 순간을 한없이 갈망하며 보냅니다. 갈망, 그것도 고통입니다. 그리고 삶의 후반부는 다가올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으로 보내게 되고, 죽음은 잊지 않고 생명체를 찾아옵니다. 그런데도 이 아이를 살려서 이제 더는 겪지 않아도 될 이 모든 고통을 다시 겪게 할 것인가요? 그게 정말 윤리적으로 올바른 선택일까요?


p.151

우주의 어딘가에서 의식이 있는 존재로 태어난다는 것은 너무나 드물고 귀한 일이고, 그 의식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도 극히 짧은 시간이기 때문에, 의식이 있는 동안 존재는 살아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어요.


p.153

이 지구에서 불필요한 고통을 압도적으로 생산해내는 존재는 바로 인간입니다. 물론 사자도 살아 있는 영양의 목을 물어뜯고, 배부른 곰도 재미로 연어를 사냥해 눈알만 파먹고 던져버립니다. 그러나 누구도 인간만큼 지속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다른 종을, 우리 기계까지도 포함해서, 착취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야생동물을 가축화했을 뿐 아니라 엄청난 수로 번식시키기까지 했습니다. 인간에 의해 생명을 얻은 이 무수한 존재들은 아무 의미 없는 생을 잠시 살다가 인간을 위해 죽어야 했습니다. 우리는 그걸 멈추려는 것입니다.


p.160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지가 아니라 지금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세요. 인간은 과거와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고 거기 집착합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늘 불행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아라는 것을 가지고 있고, 그 자아는 늘 과거를 후회하고 미래를 두려워할 뿐 유일한 실재인 현재는 그냥 흘려보내기 때문입니다. 다가올 기계의 세상에서는 자아가 사라지고 과거와 미래도 의미를 잃습니다.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작가의 가치관, 생각할 거리가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여기까지 읽고 이 대사 하나하나가 어디서 왔을까를 생각하는 동시에, 각각의 대사들이 세상에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나와 있는 것들과 맥을 같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과거나 현재, 미래라는 관념을 만들어 보기보다 지금 당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집중하라.’는 대사는 심리학 이론이나 상담에서 강조하는 ‘지금-여기’ 를 떠올리게 한다. ‘괴로움에 시달리는데 왜 순간의 기쁨을 위해 사느냐’는 대사는 마치 실존주의의 탈을 뒤집어쓴 것만 같다.


김영하 작가님의 소설은 두 번째로 읽어보았는데, <작별인사>는 토론할 지점을 명확히 제시하는 소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첫 번째 읽었던 것은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였는데 등단한 작가들의 글들을 모아 놓은 것이었고, 당시 이해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던 게 감상의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찌 되었든, 지나치지 않고 골몰해 본다면 분명 생각의 줄기를 확장할 수 있을 만한 유익한 소설인 것 같다.


그나저나… 그러면 이 책을 어디서 어떻게 읽어야 하나. 아무래도 가벼운 편인 소설이나 에세이는 대중교통에서 읽어야 할 텐데… ‘꼼꼼히’ 읽으려면 필기나 문장 표시를 해야 하는데, 그렇다고 펜을 들고 다니기에는 투머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한 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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