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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이 Aug 26. 2022

바다는 모든 걸 알고 있을 수도 있다.

송도 해수욕장에 다녀온 날


글과 함께 들어보세요.


송도에   생각한 것이다. 푹신한 모래사장에 발을 딛고 천천히 나아갔다. 청록빛의 바다가 시야에 펼쳐졌다. 먼바다 끝부터 천천히 시선이 앞으로 당겨져 온다.   끝에  포말이 부글거리는 것이 보인다. 나는 그것을 오래동안, 밀도 있게 눈에 담았다.


파도는 잔잔히 정돈된 모래사장으로 밀려온다. 그러면 모래와 청록빛 물결이 한데 뒤섞인다. 격정적인 대치 이후 잘게 부서진다. 부서진 조각들은 흰 포말이 되어 어질러진 모래 위를 덮는다. 파도가 밀려나간 자리는 언제 뒤섞이고 부서졌냐는 듯 정돈되어 있다. 이 과정은 멈추지 않고 반복된다.


삶에는 안온하고 정적인 순간이 있다. 고통스럽지도 않고, 넘치게 기쁘지도 않은 일상이 그러하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는 일, 물기가 가시지 않은 머릿결을 털며 문 밖을 나서는 일, 한기가 도는 바람에 몸을 추스르는 일이 그러하다. 이것은 정돈된 모래사장 같다.


모래와 물결이 섞이는 듯 혼란스럽고 격정적인 순간 있다. 삶의 여러 장소에서 나는 생각이 충돌하거나 사람과 갈등이 빚어진다. 그럴 때 나는 흔들리고, 뒤섞이고, 어지러워진다. 차가운 물결과 모래 알갱이가 순서 없이 마구 얽히는 것처럼 말이다.


부서질 때도 있다. 내가 찢겨나간 듯이 삶의 장면에서 자아가 사라진다. 상황과 타인만 남고 나는 거기에 없다. 일상은 더이상 잔잔하지 않고, 심해로 끝없이 침잠하는 것만 같다. 조용해 보이지만 그것은 파도가 부서지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포말이 모래를 정돈시키는 것은 경험에서 깨달음을 얻고, 삶이 보다 견디기 쉬워지는 과정과 같다. 격정과 혼란에 휘말리고 끝끝내 부서졌다가도 어떤 시기가 되면 그 경험에 대해 스스로 정리할 수 있게 된다. 그건 어떤 때였는지, 나는 왜 그랬는지, 세상은 어떤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것은 포말이 지나간 자리가 멀끔해지듯, 깨달음이 삶을 보다 윤택하게 닦아주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실은 바다가 모든 것을 알고 있을  있다고.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삶을 빗대어 명료하게 설명할  없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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