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완이 Dec 27. 2021

나의 애착 문제: 혼자 남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21년 3월 5일 작성


지난 2주간 마음이 지옥같았다. 금방이라도 자퇴하고 싶다는 극단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고, 사람들이 왜 내 마음을 몰라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생각해보면 티를 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게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기 바라면서 계속 우울해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이 두려웠다. 이 상태가 계속 될까봐. 이런 상태라면 전문상담교사가 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 어떤 사회생활도 못할 것 같았다. 사람들 앞에서 웃는 것도 힘이 들었다. 된다면 이 세상을 뜨고 싶었다. 지금 내가 발 딛고 선 모든 것을 두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다. 자퇴를 하고, 다른 지역에 가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칩거하며 감정을 추스리고 싶었다. 하지만 다행이게도 나는 나를 계속 보듬고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노력했다. 글을 열심히 쓰고 도대체 이 감정은 어디서부터 온 걸까 생각을 많이 했다. 끈질기게 나에 대해 생각한 끝에 내가 가지고 있던 비합리적 신념을 찾아냈다. 신기하게도 우울감이 바로 사라졌다. 내가 나를 상담한 경험을 한 것처러 마음이 개운하다. 또 언제 우울감이 찾아올지 모르고, 원인을 알지 못해 괴로울 수 있겠지만 근 2주간의 경험을 통해 나는 우울감을 극복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조금 생겼다.


처음 일주일동안은 너무 우울해 글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 정확히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2주째 접어들 때에는 드문드문 기록해둔 메모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2월 27일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 것에 잠길것같앗다. 그래도 그 상황순간을 벗어나려 하거나 할 때 도움 되얼아. 드러내지 말자. 확정짓지말자. 글을 많이 써보고 계속 생각하자. 자신에 대해 모르고, 어떤 것이 자신을 구성하고 있는지 모르는 친구들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의도적으로 본인이 그런 시간을 갖지 않는 이상 알려주지 않고 가르쳐주지 않으니까요.

이때 생각이 정말 많았다. 동시다발적으로 많은 생각들이 순식간에 떠올랐고 나는 그것을 감당해내기가 어려웠다. 이때 자조적인 생각이 정말 많았고, 부정적인 생각도 많이 했다. 그것이 모두 사실이 아니고 근거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런 생각들을 멈추기가 어려웠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때에는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글을 썼다는 점이다. 그것은 내 애착대상에게 말하고 싶은 내용이었다. 누군가 나를 알아줬음 좋겠고, 나를 인정해주고 위로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말하듯이 메모를 자주 썼다.


2월 28일

밀착되어서는 안 되는 대상이야. 그러니 그냥 보통의 내 모습으로 대하자.

지금부터, 근 2주간(아니 사실은 거의 3년동안) 애착을 크게 느꼈던 애착대상을 A라고 칭하려고 한다. A는 나와 완벽한 타인이다.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다.


나는 A에게 더 이상 밀착되면 안 된다는 식의 메모를 많이 썼다. 외롭고 우울한 동시에 A에게 한없이 밀착되고 싶고 기대고 싶은 느낌이 들었는데, 그것은 좋지 않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제한하는 메모를 많이 썼다.


나는 A를 마치 아버지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사랑의 감정은 아니었다. 계속 인정받고 싶었고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3월 1일

증상? 요근래 알게 된 사실들
증상이랄까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1. 일정 수준 이상으로 친밀감을 느끼면 거부감이 듦
2. 최소 20살 이상 차이나는 남성들을 애착대상으로 삼음(내가 정하는 것이 아님) -> 아빠의 영향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듦. 정확하지 않음..
2번의 경우..이게 옳은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속적으로 안전기지를 탐색하려는 것 같다. 아무래도 가족이 안전기지가 되지 못하니 지속적으로 애착대상을 찾아나서는 것 같다. 사랑하는 감정과는 많이 다른 것 같다.
1번의 경우 대학에 진학 후, 2학년을 기점으로? 많이 나아졌다. 아무래도 피상적인 관계망이 많았고 바쁘게 하루들을 보내다보니 자연스럽게 관계에 있어서 방어막이 많이 낮아졌다. 그리고 예전엔 일정 이상으로 친해지면 거부감과 함께 내가 상대를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이해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잡히곤 했는데 이제는 내가 책임지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내가 싫다면 거부할 수 있고 관계가 내가 걱정하는대로 파국으로 치닫지 않을 것임을 상기하면 불안감이 조금 감소함.

내 불안과 우울의 이유를 끊임없이 탐색하다가, 나에게 애착을 주제로 발생되는 문제들을 조금 분류할 수 있게 되었다. 크게는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인간관계에 대한 것, 하나는 한 명의 애착대상이 선정되고 (현재의 A) 그 사람에게 계속 접촉하고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 2가지로 나뉜다는 것을 우연히 통찰하게 됐다.


3월 3일~4일

나는 이때 감정의 폭발을 경험하게 된다. 3일, 느낌으로만 남아있던 감정들은 밖으로 마구 쏟아져 나왔고, 나는 그것을 감당하고 추스리느라 하루를 보내게 된다. 4일,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과 여러가지 생각의 중추를 발견하게 된다. 집에 와서 잠이 들고, 깨는 순간 내 문제를 우연히 통찰하게 되었다. 여태까지 산재되어 있던 많은 고민들이 서로 조합되었다. 그 고민들은 하나같이 '절대 혼자 남으면 안 된다.'라는 당위적 사고를 가리키고 있었다.

요며칠 우울감이 너무 심했다. 오늘은 주변 정신과를 찾아보고, 그곳으로 찾아가다가, 가는 것이 힘들게 느껴져 그냥 가던 길에 바로 집으로 왔다.
처음에는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런 이유없이, 나는 3년 주기로 우울했으니 또 우울할 때가 되었나보다 하고 큰 의미없이 넘겨보려고도 했다. 근데 아무 이유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유는 분명했고 내가 부정하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 우울감의 시작과 함께 A에 대한 생각이 계속 났다. A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나를 욕하진 않을지 노심초사하면서 대화상황을 계속해서 반추해보고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세보았다. 평소 같지 않은 행동이었다. 사실 A가 나를 마음에 들어했으면 하고 나를 인정해줬으면 하는 것은 대학을 다니는 내내 느끼던 감정이었지만, 이번만큼 내 삶을 크게 차지했던 적은 없었다. 정말, "매일, 하루종일"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A와 내가 진정한 관계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고 A를 사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에게 호감을 갖고 있긴 했으나 그것은 사랑과 관련된 호감이 아니었고, 선망과 부러움의 대상? 중요한 타인? 과 같은 맥락이었다. A를 보면 닮고 싶었고 부러웠고 나를 인정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아주 우연히, 전공을 배우던 중에 '애착이론'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내게 있어서 A는 애착대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안전기저라기에는 A와의 거리가 멀었고 피상적이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내가 애착을 가지고 있는 상대라는 표현이 맞았다. A가 내게 애착대상이라니. 도대체 왜? 왜 이런 상황이 가능했을까? 정말 생각을 많이 했다. 하지만 왜 그런지 정확한 이유는 스스로 알지 못한 채, 우울감은 깊어져갔다.
어제, 실시간 강의를 듣고, 밥을 먹고 있었는데 A에게 카톡이 왔다. A를 만나러 가야했다. 갑자기 나는 극도의 불안을 느꼈다. 심장이 어마어마하게 뛰었고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이런 상태에 놓여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정말로 가능하다면 바로 자퇴 원서를 쓰고 싶고, 이 상황을 회피하고 싶은 느낌이었다.
아주 맹렬한 감정들이 휘몰아친 뒤, 나는 겨우 그 감정의 이유들을 알게 됐다. 1년 전, B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이 A의 귀에 흘러들어갈까 두려웠던 것이다. 그 일이 A에게 들린다면 분명 나를 안 좋게 생각할 것이니까. 하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나는 그 상황에 대해 극도로 예민하고 불안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A가 그 일을 알게 되는 것이 마치 나를 버리고, 무시하고, 나를 영영 보지 않고 내 노력들을 인정해주지도 않을지 모르는 것처럼. 단순히 사람과 사이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일상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A를 마치 부모처럼 생각해야만(혹은 내게 부모만큼이나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겨야만) 가능한 감정들이었다. 그만큼 나는 A에 대해 애착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긴장한 상태로 A를 찾아갔다. 정말로 별 일 없었다. 나는 그가 하는 말에 대답만 하며 채 5분도 안 되는 대화를 하고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나는 원래 가야하는 곳에 가지 못했고, 바로 상담센터를 찾아갔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았다. 결국 나는 MMPI-2와 SCT검사를 하면서 울었다. 그냥 우는 것도 아니었다. 무언가를 토해내는 기분이었다. 그때 든 생각들은 다음과 같다.
진짜 너무 무섭다 뭐가 이렇게 무서운 걸까 ?? 괜찮아 나를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을 거야. 상담을 받자.
피해를 끼칠까봐 너무 무섭다. 내가 그런 존재가 될까봐. 절대 그러면 안 되는데. 내가 너무 작고 나에게 너무 미안하고 내가 너무 안쓰럽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나는 너무 괴로워하고 있다. 잘못했으면서 아무도 내게 사과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다. 나는 쓸모없는 존재같다. 아무도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다들 내 성과에만 관심이 있는 것 같다.
이런 상태로 상담자가 어떻게 되지? 누군가를 어떻게 도울 수 있지? 나는 지옥에나 떨어졌으면 좋겠다. 열등감 덩어리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지금보니 왜곡되고 근거도 없고 감정적인 판단들이 가득한 것 같다. 상담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다니........아무튼, 이때는 감정이 극으로 치달아서, 울면서 마구 흐느꼈다. 정말로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았고, 이 상태로는 상담사가 될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앉아있는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자퇴라는 극단적인 선택지가 떠올랐고 휴학도 떠올랐다. 무엇이든 이 상황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정말 뭐든지 하고 싶었다. 왜 그런지 무슨 이유인지 재보기 전에 너무너무 괴로웠고 힘들었고 외로웠기 때문에.
그런데 한껏 울고나니 그래도 괜찮아졌다. MMPI-2 검사를 하면서 한 번씩 울컥하긴 했지만 서서히 좋아졌다. 하지만 집에 갈 때가 되자 또 미친듯이 우울해지기 시작했는데, 정말 무엇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무력감에 꼼짝없이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A와의 대화 장면을 나는 계속해서 반추했다. 말 하나하나, 내 행동, A의 행동 하나하나 비디오테이프를 튼 것처럼 돌려보면서 A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알아내려고 했다. 나는 A가 나를 인정해주고 괜찮다고 다독여주고, '안전기저'로서 기능해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 같다.
그렇게 3일의 하루는 끝났다. 저녁이 되니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또다른 자아가 있는 것처럼, 뭔가 괜찮아져서 공부 조금 하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잠을 엄청나게 설쳤다. 5번 정도 깬 것 같고, 잠을 자는데도 긴장 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 (근 2주간 식욕이 전혀 없었다.)
4일이 되었다. 오늘이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수영하러 갔다. 수영할 땐 잡생각이 들지 않아 좋았다. 수영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세로토닌과 행복 호르몬에 대한 영상을 봤다. A가 애착대상이라는 것을 통찰해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호르몬 영향 때문인가?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 조금만 마시기, 잠 잘 자기, 밥 잘 먹기와 같은 규칙들을 세워보기도 했다..
오전 시간이 흘러가고, 12시부터 시작되는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웃으며 친근하게 사람들을 대하기가 어렵다고 느꼈다. 분명 오랜만에 보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평소의 나 같았으면 한 명 한 명 인사를 하며 더욱 친근하게 대했을 텐데, 나는 애매하게 한 번 웃고는 말았다. 강의실에 들어가서는 표정 관리를 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마스크로 겨우 얼굴이 가려져서 다행이었다. 조를 짜기 위해 사람들과 소통해야 할 타이밍에도 제대로 소통하지 않았고 애먼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달리 길이 없다고 느꼈다. 그때는 내 감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느껴졌다. 나는 다음 수업이 있었지만 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나는 힘들었다. 그래서 집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지나가는 트럭이 흘린 파카를 발견했다. 나는 그것을 지나칠 수가 없어서 집어들고 지구대에 갖다주었다. 그 일로 기분이 조금 나아져서(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뭔가 내가 쓸모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수업 시작까지 7분 정도 남았을 무렵,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학교로 향했다.
수업을 듣는 와중에 또 우울했다. 수업이 끝난 후 같은 전공 사람들에게 인사할 수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반응을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상대가 민망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그냥 발이 가는대로 도착해서 도서관 열람실에 갔다. 집중이 전혀 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 책을 펼쳐들었다. 그때 카톡 하나를 받았다. 같은 동기 언니였다. 나에게 아까 수업에서 봤을 때 얼굴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며 괜찮냐고 묻는 말이었다. 나는 그 말을 보고 괜찮다고 카톡은 보내면서도 엎드려서 울었다.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가방을 챙겨 열람실을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 동안 아무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서 택시를 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꾹 참고 마을버스를 탔다.
집에 오자마자 쓰러져서 잠이 들었다. 2시간 정도 잤을까, 일어나자마자 나는 불현듯 무언가를 깨우친 기분이었다. 나는 바로 메모장을 켜고 글을 써내려갔다.
일주일동안 이유없이 우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 우연히 알았다.
A가 애착대상이고 A가 무관심하다면 살아갈 이유가 없다는 드는 것만이 내 우울의 결론이 아니라는 걸.
나는, 실은 부러웠다. A가 말을 할 때마다, A가 가족구성원으로서 가정에 힘을 다 하는 듯 보이는 일화들이. 나는 그것에 열등감을 느꼈고 부러움을 느꼈다. 가족끼리 여행을 가는 것도, 다정한 대화를 하는 것도, 사랑한다는 말을 건네는 것도, 내것이 아니고 내것일 수 없어서 나는 슬펐다. 내 가족은 이미 무너졌기 때문에.
가족으로서의 행복감, 그런 걸 겪어본 적조차 너무 희미하기 때문에. 나는 그런 상황에 가족 문제로 힘들어하는 게 애 같고 바보 같고 미성숙하다고 생각해서 인정하지 못했던 것 같다. 부정했다. 그래서 우울에 아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나보다.
내가 결국 타인에게(지금은 A) 애착이 생기는 현상도 아빠랑 다른 사람, 다정하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사람에게 애착이 생기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A를 비롯한 애착대상에게 '버림 받을까봐', '나를 비난할까봐' 극도로 불안해하고 예민해했던 것은, 애착대상들이 나를 그런 식으로 대하면 이세상에 정말 홀로 남겨진다, 혼자가 된다,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이 사실인지 여부를 따지기 전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굳게 믿고 있었다.

나는 내 우울의 근원, A를 보면 더 가까워질 수 없다는 생각에 슬프고, 부럽고, 가족에 대한 열등감을 느끼는 이유를 알아냈다. 앞서 말했듯 '혼자 남을까봐'. 그것은 아주 근원적이고 궁극적인 핵심 신념이었다. 여태까지 알고 있으면서도 부정했던 사실이기도 하다. 알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긴 하다. 하지만 내가 2주에 걸쳐서 여러가지 생각들을 기록해두고, 붙잡아두고, 이유를 스스로 캐물어가지 않았더라면 이런 통찰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3월 5일

오늘이다. 나는 정말 홀가분한 마음으로 일어나서 도서관에 왔다. 그리고 한 시간동안 또 감정과 생각에 대해 글을 쓰느라 노트북을 붙잡고 있었다. 그 글들은 다음과 같다. 어제와는 조금 결이 다르지만, 통찰에 대해 좀 더 세부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나는 이 세상에 홀로 남겨지는 게 무서운 거였다. 뉴스로 수없이 접하는 고독사의 모습, 필요한 돌봄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 쪽방촌에서 괴로이 늙어가는 사람들을 함부로 동정하고 그들에게 나를 투영해서 보고 있었던 것이다. (평소에 그런 영상을 많이 봤음) 부끄러운 줄 모르고.
내가 해야 할 것은 그들을 동정하고, 그들처럼 되지 말아야겠다는 '불행 포르노'식의 이입이 아니다. 내가 해야 할 것은 그들이 소외되고 현재의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사회적 안전망이 구축될 수 있도록 힘쓰는 일이다.
여태 나는 '혼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지를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학습했던 것 같다. 혼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괴로운지에 대한 영상을 보고,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혼자가 되기 싫다는 마음을 갖고 이리저리 대안을 생각해봤던 것 같다. 결혼을 해서 배우자를 두는 것, 친구들과 함께 사는 것 등.
나에게 억겹의 우울함을 선사했던 거대한 감정들은 결국 '혼자가 되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마음을 부풀리고 부풀렸던 것이다. 나는 나에게 되물어야 한다. 혼자가 어때서? 그리고, 혼자가 되는 것이 내 미래에 확정적인 것일까? 나는 혼자가 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나?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불현듯, 심리검사 수업에 제출했던 HTP검사가 떠올랐다. 나는 집을 그릴 때, 모두가 함께 사는 집을 그렸다. 집이 하나의 공동체였고, 가족이었고, 모두가 서로를 알고 위로하고 공유하고 나누는 공간이었다. 나는 그곳에 살고 싶다고 그렸다. 혼자가 되기 무서워서. 단순히 그때의 나는 내가 외향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싶어서 그런 집에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지만, 좀 더 깊이 들여다보니 '혼자 남고 싶지 않다.'는 강렬한 소망이 자리해있었다.
나는 혼자가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그 두려움이 어디서 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굉장히 복잡한 것 같다. 일단 1학년 때 독거노인 분들 찾아가는 봉사를 했을 때, 조금씩 그런 생각을 시작했던 것 같다. 홀로 남겨지는 것,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것에 대한 외로움. 나는 가족이라곤 엄마밖에 없었고, 엄마와도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가 혼자 남겨지거나 내가 혼자 남겨지거나 하는 상황은 아주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그분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내가 그들에게 뭔가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다는 무력감과 함께 그들의 삶에 나를 대입했었다. 나도 저렇게 되면 어쩌지? <- 나는 이 생각을 부정하고 있었다. 인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나 자체를 부정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냐, 난 그런 생각하지 않아. 해서는 안 돼. 그런 식으로 나를 외면한 대가가 이렇게 크게 돌아온 게 아닐까. 그 생각을 하는 나에게 진정으로 귀 기울여줬어야 했는데.
뿐만 아니라, 유튜브에서 보여주는 쪽방촌의 삶, 노숙인들의 삶, 혼자 삶을 살아가고 고독사의 모습을 촬영한 영상들을 보면서 '혼자 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더욱 강화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생각들은 내가 타인에게 애착을 갖는 일에 더욱 힘을 실어주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을 자주 꿈꾸었다. 요근래 꾼 꿈 중에서는 A가 다정한 가족구성원으로 나오는 것도 있었다. 나는 사랑받는 딸이었고, 우리 가족은 다정다감하고 행복했다. 그런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황들이 꿈에 등장했다. 생각해보니 단서들은 꽤나 많았구나. 내가 알지 못했을 뿐이지.
나는 나를 좀 더 놓아주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 여태까지의 나는 인간적인 삶에 집착하면서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올바르게' 살고 '올바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늘 떠올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생각들에 반대되는 것들은 무시해버리거나 부정해버렸다. 하지만 세상은 늘 이상적으로 살 수만은 없지 않을까? 이상적 자기와 현실적 자기간의 간극에 관심을 갖고 그것을 메우려는 노력을 하되, 현실적 자기를 존중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현재의 나를 무시하고 비난하기보다 다독여주고 위로해주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철저히 나를 외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러지 말자.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내가 나를 존중해주자. 그런 고민 할 만했지. 그런 생각이 들만했지. 하지만 그것은 진실이 아니고, 앞으로도 진실이 아닐 수 있지. 그러니 불안해하지 말고 힘들어하지 말자. 나는 충분히 잘 해왔고 쓸모있는 존재야.

나는 정말 중요한 것들을 알게 된 기분이다. 오늘 아침은 정말 상쾌했다. 기분이 좋았다. 우울감 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날씨가 좋았고, 나는 가만히 벤치에 앉아서 햇빛을 만끽하며 삶이 가치있다고 느꼈다. 2주 간 느꼈던 불행감과 우울감은 온데간데 없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음식도 맛있었다. 식욕이 생겼다. 반추가 사라졌다. 계속해서 A와의 대화 상황을 돌려보며 내가 어떤 존재일지, A에게 가치있게 느껴졌을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 A는 A고 나는 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착대상과 분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혼자여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의 미래에 희망이 가득하게 느껴졌다.


하루만에 이렇게 바뀐 것이 나도 믿기지 않지만, 현실이었다. 정말 내 문제가 무엇인지 직면하고 싶다는 마음이 나를 실제 문제 앞으로 데려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해보니 우울에는 늘 이유가 있었다. 엘리스가 말했듯, 부정적 정서를 느낀다면 반드시 그에 선행되는 사고가 스쳐지나갔었다. 하지만 이번처럼 우울의 이유를 묻고 또 물어 추적한 적은 없었다. 나는 이 점에 대해 나 자신에게 큰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앞으로도 내가 무슨 정서를 느끼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려 한다. 그 정서와 생각들을 순간순간 다루지 않으면, 그것들은 언제 또 미해결과제가 되어 내 일상을 잠식해버릴지 모르니까.


작가의 이전글 가난에 대한 가장 고통의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