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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챕터

2024. 08.

by 디미드

2012년 2월, 혼자 가겠다는 내 말을 무시한 채 따라오던 어머니와 함께 창원에서 논산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세상이 무너져도 눈물 한 방울 흘릴 것 같지 않던 그녀는 까까머리들이 모여있던 연병장 끝에서 결국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군복이 초록색에서 회색으로 바뀌어 가고 있을 즈음, 나는 그렇게 군인이 되었다.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낄낄대며 보던 푸른거탑 속에 막사가 내 집이 되었고, 총기함 옆에서 뜬눈으로 밤을 보내던 이등병의 자리는 한 칸씩 아주 느리게 TV와 가까워졌다.


빈이 형. 이등병 생활이 3개월쯤 지났을까. 빨간 모자를 눌러쓴 조교였던 내 밑으로 후임이 들어왔다. 그것도 두 살이나 많은 사람이. 해가 넘어가던 겨울, 새벽 2시에 둘이서 야간 근무를 나간 적이 있다. 나는 다들 싫어하던 2시~4시 야간 근무가 좋았다. 새벽 공기 아래, 다른 20대 초반 까까머리들과 나누는 시시콜콜한 이야기, 전역 후 계획에 대한 이야기들을 둘만의 시간에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형은 군대 들어오기 전 해피무브라는 봉사활동 단체를 통해 다녀온 여러 나라 이야기를 2시간 동안 들려줬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듣기만 했다. 경험하지 못한 세상을 알고 있는 형이 부럽기도, 멋있기도 했다.


“전역하면 나도 데려가 줄 수 있을까?”


서로 서른이 넘은 지금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형은 그때 내가 농담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렇게 몇 번의 야간 근무를 통해, 나는 가보지 못한 세상을 빈이 형의 이야기로 조금씩 채워갔다.


전역 3개월 앞두고 사지방에서 좋아하던 이성의 페이스북을 염탐하던 중, 뒤에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렀다.


“박하림 상병님, 혹시 전역 후 계획이 있으십니까?”

“복학 전 서울에서 고시원 잡고 영어 공부 좀 해보려고.”

“저는 동남아 배낭여행을 할 생각입니다.”

“같이 가자는 거야? 나 돈 없는데.”

“제 돈으로 비행기표는 끊겠습니다. 전역하고 나서 주시면 됩니다.”


어디로 가는지, 얼마나 가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마냥 ‘여행’이라는, ‘비행기’라는 단어가 좋았다. 해외라고는 중학교 때 학교에서 단체로 갔던 일본 2박 3일이 끝이었으니까. 얼마 뒤 나는 사회에 나가기 위해 모자 속에 자라나는 머리를 숨기는 병장이 되었다. 군 생활을 같이한 까까머리들과 마지막 사진을 찍는 날, 남은 이들에게 짧은 인사를 건넨 뒤에 마지막으로 빈이 형 앞에 섰다.


“형, 그동안 나 때문에 고생 많았어.”

“틀린 말은 아니지. 두 달 뒤 다시 만나자. 전역 축하해.”


전역 후, 창원에서 짐을 챙겨 영등포로 올라왔다. 한 달 15만 원 고시원, 낮에는 영어 공부, 밤에는 돈 벌기. 여행까지 남은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2014년 1월 8일, 빈이 형은 전역을 했고, 대구에서 바로 수원 우리 집으로 올라왔다. 다음 날 우리는 태국 방콕으로 떠났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노트 한 권을 샀다. 카오산 로드 어느 클럽에서 밤새 맥주를 마시던 날, 고수를 먹어보겠다고 입에 무작정 집어넣고 화장실에서 몰래 토했던 날, 캄보디아로 가는 침대 버스에서 모르는 외국인 사이에 누워 멀미하던 날, 아무도 없던 달랏의 호수 길을 걸어가며 서로 낄낄대던 날. 길을 잃어 먼저 숙소로 돌아온 나를 찾기 위해 형이 몇 시간을 울고불며 찾아 헤매던 날 말고도 수없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여행 내내 떠오르는 대로 기록한 노트는 아직도 내 방에서 가장 손이 잘 닿는 곳에 있으며, 가끔 꺼내 보기도 한다.


나는 복학을 위해 먼저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끊었다. 형은 미얀마까지 마저 여행하고 돌아오겠다고 했다. 베트남 어느 숙소에서 맥주 하나를 들고 소파에 누워 함께 보내는 마지막 밤, 문득 형에게 궁금한 것들이 많아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여행 내내 형은 마치 가이드처럼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 같았다. 영어도 곧잘 했고, 각 지역의 맛집과 숙소 정보도 일일이 파악하고 있었다.


“형, 혹시 나 때문에 군대에서 여행 공부하고 온 거 아니지?”

“아니야. 입대 전에 이미 다 다녀봤어.”

“여기를 다 와봤다고?”

“내가 말 안 했었나? 다시 와보고 싶었다고.”

“그러니까 왜?”

“너에게 이런 세상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지금 생각해도 빈이 형의 말은 너무 충격적이다. 난 서른세 살이 되었지만, 스물네 살이었던 그날의 형은 무슨 생각으로 나에게 그런 말을 했을까. 다음 날 아침,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형의 배웅을 받으며 혼자 태국으로 출발했다. 그날 공항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는 참 많이 울었다. 여행 내내 빼곡히 적어둔 노트의 마지막 장에는, 오글거리지만 ‘두 번째 챕터의 시작’이라고 적었다.


아직 군인 냄새가 나던 22살의 나는 빈이 형과 함께한 배낭여행 덕분에 많은 것이 바뀌었다. 세상을 더 넓게 볼 수 있게 되었고, 꿈이라는 것도 생겼다. 나도 누군가에게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95%는 내 기억이고, 5%는 허구가 섞인 10년도 넘은 나의 첫 여행 이야기. 나의 인생 두 번째 챕터를 열어준 리아 아빠 빈이 형에게 무한한 감사를 보내며, 나의 다음 챕터도 지금처럼 옆에서 지켜봐 주시길.


“형, 우리 또 여행 가자.”


2014년 1월 방콕 어딘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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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