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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Nov 18. 2021

오온(五蘊)- 삶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이유

오온(五蘊)의 사전적인 뜻은 다음과 같다.


생멸. 변화하는 모든 것을 구성하는 다섯 요소. 곧 물질인 색온(色蘊), 감각 인상인 수온(受蘊), 지작 또는 표상인 상온(想蘊), 마음의 작용인 행온(行蘊), 마음인 식온(識蘊)을 이른다.

네이버어학사전


사전적인 풀이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오온에 대하여 책을 읽어봐도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우매한 나의 현실이다.

그래서 오늘은 이 오온에 대하여 독한 마음으로 포스팅을 해보고자 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에 대하여 단순히 기복(祈福)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나 또한 어려서 집안의 안 좋은 일이나 대사를 앞두고 할머니께서 동네 암자나 절에 가서 부처님과 천지 신령님께 집안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곤 하셨다.

그런 이미지가 강한지 나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힘든 일이나 어려운 일이 닥치면 절로 향해 불상 앞에서 엎드려 복을 비는 이들이 무척이나 많은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이는 불교의 윤회사상이라는 독특한 내세(來世) 관과 인도의 브라만교, 중국, 우리나라의 토속신앙에 대한 포용력 등이 어울려져 만들어진 결과로 사실 부처님의 심오한 가르침과는 조금 거리가 있다는 것은 불교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오온에 대하여 말하기 전에 우리 사회에서 불교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일종의 선입견에 대하여 조금 이야기하고 들어가는 것이 이후에 나올 불교교리에 대하여 논하는 부분에서 조금은 당혹해 할 부분에 대하여 살짝 복선을 까는 정도로 받아들였으면 하는 마음에서 언급해 보았다.



우선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바세계(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윤회의 굴레에서 고통받는 원인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 왜냐하면 이것이 불교의 교리이기 때문이다.

불교의 교리 하면 사성제(四聖諦)와 삼법인(三法印)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사성제는 윤회의 굴레에서 고통받는 중생이 가야 할 길이라는 관점에서 살짝 이해해두고 인간세계의 특징과 그 세계 안에서 왜 우리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설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삼법인에 대하여 간단히 알아보자.

삼법인(三法印)은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 일체개고(一切皆苦)를 말하는데 결국 해탈하지 못한 인간의 삶은 고통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우주 만물 중 변하지 않는 것이 없고 그것이 우주 만물의 존재 원리이다.

제법무아(諸法無我): 따라서 나 또한 나라고 지칭할 수 있는 구체적 실존이 아님에도 나(我)의 주관으로 나에 집착한다.

일체개고(一切皆苦): 우주 만물의 섭리를 거슬러 나의 주관에서 비롯된 오욕(五慾)에 집착하니 삶이 곧 고통이다.


이와 같이 불교교리는 단순히 종교적, 철학적 관점으로써만 아니라 현대물리학의 논증에서도 입증된 과학적 존재론임이 이미 오래전 양자역학(물질의 가장 단위인 양성자 상태의 물질도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변화무쌍한 존재임)을 통해서 밝혀져 더욱 신빙성 있는 세계관이자 고통스러운 삶을 치유해 줄 대안으로 더욱 각광받는 것이 근래의 현실이다.


다시 오온의 이야기로 와서 변하지 않고 존재할 수 없는 것이 우주 만물의 존재 원리인데 그런 현실 속에서 변하지 않을 나에 대해 집착하니 당연히 세상의 도(道)를 거스르게 되는 것이고 인간의 존재는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나(我)에 대하여 집착하는 메커니즘이 오온이다. 그 오온에 대하여 알아보는 것은 어떻게 내가 현상계를 왜곡하는지를 아는 것이니 불교적으로나 개인적인 안녕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개념인 것이다.

우선 오온(五蘊)은 앞서 사전적인 정의에서 보았듯이 현상계를 왜곡하여 세상의 도(道)에 반하여 나라는 변화하는 객체를 불변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다섯 가지 그릇된 생각의 메커니즘을 말하는데 사전적인 정의보다 좀 더 쉽게 이야기를 해 보겠다.


먼저 온(蘊)의 뜻에 대하여 풀이하자면 부처는 이를 '칸다'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고대 인도어인 빨리어로 무더기 또는 덩어리로 가리킨다고 한다. 다시 조금 더 풀어보자면 다섯 가지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것들의 총체라 할 수 있을 것이다.(온은 그런 빨리어를 중국 한자로 표현한 것으로 蘊은 쌓을 온이다) 앞서 언급한 사성제(四聖諦)의 첫 번째인 고성제(苦聖諦)에서 세상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이 오온으로서 현상계를 왜곡하여 나(我)에 집착을 하니 고성제는 곧 오온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삼법인(三法印)에서도 일체개고(一切皆苦)의 이유가 오온으로 왜곡하여 나에 대하여 집착하게 되니 오온의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고는 불교교리 자체에 접근을 할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것이다.

먼저 오온(五蘊)의 첫 번째인 색온(色蘊)에 대하여 알아보자.

색(色)은 물질적인 형태를 가르치는 말로 우리 신체를 구성하는 물질적인 요소라 할 수 있겠다.

우리의 몸을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세포는 죽고 생성됨을 되풀이하다 거의 7년 주기로 전혀 새로운 세포들로 바뀌게 된다고 한다. 7년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전혀 다른 존재라 해도 무방한데 기억의 연속성으로 인해 나(我)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니 2,500여 년 전 부처의 선견지명이 참으로 경이로울 뿐이다.

이런 물질적인 요소는 지금도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고 있지만 무명(無明)의 상태에 있는 중생은 그저 그것이 나의 몸으로 고정된 하나의 성체(聖體)처럼 인식하며 집착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느낌으로 풀이할 수 있는 수온(受蘊)이다.

물질적 요소인 색온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머리 그러니깐 뇌의 인지 작용으로 여겨질 수 있다.

수온은 말 그대로 어떤 대상이나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좋다 또는 나쁘다처럼 순간적으로 우리가 느끼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세 번째는 지각으로 풀이되는 상온(想蘊)이다.

이는 일종의 개념화 또는 카테고리화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개념들이라든지, 장소나 소유권, 시간, 자아 등 되풀이되는 느낌들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식견이 생기고 사고의 편의를 위해 개념화나 카테고리화를 통해 좀 더 세상을 나의 관점에서 편하게 인식할 수 있는  편견을 만들어 내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네 번째 형성이라고 할 수 있는 행온(行蘊)이다.

이 행온은 행行의 뜻인 다니다처럼 인간이 무언가를 행하게 하는 의지 작용이라 할 수 있다.

이 의지 작용이 올바르게 작동하여야 선(善) 한 업(業)을 쌓아 열반에 이르게 되는데 대부분의 중생은 그저 좋은 것(쾌락적인 것)을 추구하기에 그른 업을 행하여 윤회의 쳇바퀴 속에서 고통받게 된다.


마지막으로 의식이라는 식온(識蘊)이 있다.

앞서 언급한 수온, 상온, 행온들에 의하여 조건 지어진 것들이 작동을 하여 순간순간 작용하는 견해들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이 순간적인 식온은 단순 의식이라 할 수 있으며 마명 스님의 대승기신론에 의하면 인간은 5식이라는 눈, 귀, 코, 혀, 신체라는 감각기관을 통해 인지한 것들을 통해 순간순간 의식(識)이 작용을 하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좀 더 나아가 제7말나식이라는 자의식이 생기며, 종국에는 제8아뢰야식이라는 무의식 정도로 이해되는 마음 깊은 속의 인지하기 힘든 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식온(識蘊)이 얼마나 찰나의 얕은 의식인지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마명 스님이 실존 인물인지에 대한 논쟁이 있지만 대승기신론의 작성 시기가 기원전 1~2세기 인점을 감안하면 프로이트의 무의식 개념이 19세기 말에  등장한 서구에 비하여 불교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 사고를 하였는지 놀라울 뿐이다)

이렇게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입자인 양성자조차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나(我)에 대한 집착으로 욕망에 휩싸여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현상학의 정리라고도 할 수 있는 오온(五蘊)이 작동하는 법에 대하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알아보았다.

유일신 신앙에서 그저 신(神)에 대한 믿을 통해 사후(死後)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보다 나에 대한 집착을 버려 안녕과 행복을 추구할 것을 권하며 가르침을 주는 부처의 말씀이 휠씬 더 살갑게 다가오는 것이 현대인의 마음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이 오온(五蘊)의 굴레 즉 무명(無明)에서 벗어나 지혜를 통해 밝은 빛을 얻을 것을 권하는 부처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끝내고자 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물질(色)은 너의 것이 아니고, 느낌(受)은 너의 것이 아니고, 지각(想)은 너의 것이 아니고, 의지적 형성(行)은 너의 것이 아니고, 의식(識)은 너의 것이 아니다. 그것을 버려라 너희가 그것을 버리면 너희에게 안녕과 행복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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