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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Nov 23. 2021

박노해- 바람이 바뀌었다

투쟁가 박노해의 투철한 시대정신을 엿본다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의 약자 박노해


그의 본명은 박기평이다.

그는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10대 후반 낮에는 거친 노동을 하고 밤에는 선린상고에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섬유, 화학, 건설, 운동 노동자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1984년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을 내는데 노동자가 쓴 최초의 노동 시집(詩集) 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사실 당시 못 배우고 먹고살기 바빴던 저임금 비숙련 노동자들이 그의 시집에 열광하기엔 사회적 여건이 너무나도 열악한 시절이라 먼저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입소문으로 100만 부가 넘게 팔려나가자 당시 전두환 정권은 그의 시집을 금서로 묶고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수배를 내리게 된다.

그 와중에도 얼굴 없는 노동 시인이 되어 그는 억압받는 노동자를 위하여 투쟁하였다.

그리고 7년여의 수배 도피와 투쟁으로 점철된 그의 젊은 날. 그 젊은 날의 끄트머리라 할 수 있는 1991년 당시 국정원인 안기부에 의하여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그의 죄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사건으로  죄명은 비합법 사회주의 혁명조직 결성 및 활동인데 당시 우리는 그냥 편하게 빨갱이들이라고 하면서 손찌검하면 되는 일과 사람들이었다.

검찰로부터 사형을 언도받고도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죽어도 더 많은 박노해가 나타날 뿐이라는 그의 말은 마치 북한의 대변인이 자유민주 사회인 대한민국의 법정에서 버젓이 국가를 조롱한다는 보수언론의 지탄을 받았다.

그리하여 무기징역이 확정되고 시인은 7년 6개월을 복역하고 1998년 출소하게 된다.

1998년의 대통령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런 그가 박노해를 차가운 경주의 교도소에 가두어 둘리 만무했다.

그렇게 출소되고 국가에 의하여 다시금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어 국가보상금을 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단호히 거절하며 명언을 남긴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

그 이후의 행보는 그전의 노동운동가와는 조금 거리를 두며 평화운동가의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2000년 '사랑 평화 나눔'의 기치로 한 사회운동단체인 <나눔문화>를 설립하고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가난과 분쟁으로 얼룩진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평화의 시를 쓰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더 이상 노동운동자들의 목숨을 내건 피맺힌 절규와 투쟁은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해야 하나? 필요충분 요건을 이미 충족하여 수요가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이런 사회 속에서 투쟁가 박노해는 사랑과 평화의 전도사를 자처하며 험지를 다니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소개할 시 '바람이 바뀌었다'를 읽고 있으면 무언가 많은 변화가 있는 우리 대한민국 사회에 대하여 생각하게 한다.

물론 우리 사회가 정의(正義)를 실현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는 나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두가 느끼는 것이겠지만 인간의 욕망이 만족이 없다 하더라도 아직도 계층 간 불평등이 만연해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또 한편으로는 대통령이든 국회의원이든 지방자치단체장이든 늘 무슨 선거든 공약으로 등장하는 것이 강성귀족노조 문제인 것을 생각하면 확실히 바뀌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초에는 노동조합을 설립하고자 하는 운동만 해도 빨갱이가 되어 어디론가 끌려가던 세상 아니었던가! 그런 풍파의 중심이 되어 국가에 의하여 목숨까지 끊어버리겠다는 협박에 차가운 감옥에서 8년 가까운 세월을 보낸 시인 박노해 그리고 인간 박기평이 바라보는 세상은 확실히 보통 사람의 눈과 뇌를 가지고 생각하는 우리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의 시 '바람이 바뀌었다'를 감상해 보자.


바람이 바뀌었다

                      - 박노해


천둥번개가 한 번 치고

시원한 빗줄기가 내리더니

하루아침에 바람이 바뀌었다

풀벌레 소리가 가늘어지고

새의 노래가 한 옥타브 높아지고

짙푸르던 나뭇잎도 엷어지고

바위 틈의 돌단풍이 붉어지고

다랑논의 벼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검붉게 익어오고

산국화가 꽃망울을 올리고

하늘 구름이 투명해지고

입추가 오는 아침 길에서

가늘어진 눈빛으로 먼 그대를 바라본다

조용히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무더운 열기와 무거운 공기와

얼굴을 가리고 말들을 삼키고

마스크 씌워져 무감하고 무디어진

내 생의 날들이여

이제 바람이 바뀌어 불고

맑아지고 섬세해진 나의 감각으로

거짓과 진실을

강제와 자율을

예리하게 식별해 가야겠다

바람이 분다

바람이 바뀌었다

하늘이 높아졌다



시(詩)를 감상하고 있자니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다.

부처님 말씀대로 사람이 윤회를 한다면 수많은 윤회의 굴레에서 만들어진 사람의 성(性)이라는 것이 과연 어떤 물질적 요소로 인하여 전해지는 것이 확실하다는 확신이 든다.

고된 노동을 하며 야간 고등학교 그것도 상업학교를 졸업한(학력 비하는 절대 아니고 그저 경외롭다는 표현일 뿐이다) 그가 어찌 이토록 간결한 언어로 사람의 마음을 적시는지......

그가 젊은 날 목숨을 내놓고 투쟁하던 때와는 다르게 시인의 나이 예순 즈음 변한 세상에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모습이 눈앞에 또렷이 보이는 것 같다.


시인은 그 지난했던 세월과 현재의 시간의 간격을 그저 천둥번개 한 번 치고 시원하게 비 한 번 내린 것으로 퉁친다. 과거를 팔아 현재를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그 말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청춘의 뜨거웠던 투쟁의 날들이 지나고 시대(時代)도 자신도 무르익는 계절 가을이 왔음을 인식한다.

하지만 그 세월에 대한 회한의 감정이 어찌 남아 있지 않으랴.

자신을 박노해라는 얼굴 없는 시인이자 투쟁가로 살았던 그 시절.

시인은 얼굴을 가리고 말을 삼키며 마스크로 씌워진 시간이라며 조금 더 떳떳하게 투쟁하지 못했기에 원했던 세상을 만들지 못했다는 회한으로 얼룩진 지난 세월이 야속하기만 하다.


하지만 시인은 그렇게 바뀐 세상과 자신의 모습을 보며 보다 맑고 예리하게 가다듬어진 정신으로 이 거짓으로 덧칠해진 세상에서 참과 거짓 그리고 강제와 자율을 구분하며 더 맑고 투명한 세상을 위해 정진(精進) 할 것을 다짐한다.

세상이 변하고 바람이 바뀌고 하늘이 높아졌지만 누구나 행복하고 자유로운 세상은 그만큼 더 멀리 달아나기에 시인은 평생을 가다듬은 그 예리한 판단력으로 정진할 것을 만천하에 다시금 약속한다.

젊은 날 그 열정과 투쟁심은 무뎌질망정 거친 세상의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 예리한 판단력이 있기에 다시금 마음을 잡아보는 시인. 그런 시인의 마음이 간결한 시어와 함께 청량하게 다가오는 시가 바로 이 '바람이 바뀌었다'가 아닐까 한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소재를 밝은 느낌의 서정시로 누구든지 공감할 수 있게 창작할 수 있다는 게 경외스럽고 그저 부럽기만 할 뿐이다.

지난날 국가 경제개발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얼마나 많은 이 땅의 노동자들이 죄 없이 희생되었던가?

물론 지금도 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상황에서 희생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박노해 시인이 얼굴 없는 시인으로 활동할 당시 대놓고 하던 노동착취의 시대는 분명 지났다고 할 것이다. 오히려 강성노조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기득권만을 위해 투쟁(?) 하는 이들도 있으니 분명 바람은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바람이라는 것이 멈춘것도 아닐 뿐더러 방향이 바뀐다는 것도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닐 것이다.

60~80년대 까지는 한국식 독점 자본주의의 시대로 몇몇 산업자본가들의 노동착취가 만연했던 시대라면 2021년의 현시대는 분명 신자유주의에 의한 시민 착취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자유, 개성, 과시, 자기표현 등 수많은 미구어를 사용하여 소비를 조장하며 그 소비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거친 노동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지금의 '신자유주의'시대이다.

시인 박노해는 그런 시대에 진정한 개인의 자유와 평화로운 삶을 위해 예리한 판단력으로 참과 거짓, 강제와 자율에 대하여 사리분별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근래에 미니멀 라이프나 조기 은퇴를 목표하는 리타이어족등이 이런 신자유주의 시대의 시민 착취에 속지 않겠다는 시대적 조류임은 분명한 것이다.

시인은 그렇게 바뀐 세상에 예전과 같이 목숨을 내놓고 투쟁할 순 없지만 예리한 판단력으로 사이렌에 속지 않는 오디세이아가 될 것을 스스로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투쟁가에서 진정한 자유로의 인도자 된 시인 박노해 그의 진정한 시대정신에 다시금 경의를 표해본다.

박노해 시인의 시대정신을 엿볼수 있는 시(詩) '바람이 바뀌었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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