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것들에 대해 이해받기를 원합니다.
내가 처한 상황 이러니,,,,,,,
내가 경험한 일들이 이러니,,,,,,
내가 가지고 있는 핸디캡이 이러니,,,,,,
사실 이것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크든 작든 타인의 배려 같은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이해에 대한 기대가 결과대로 나에게 온 적이 있나요?
아마도 아니요 정도가 아니라 그로 인해 상처받은 기억이 더 많을 것입니다.
우리 삶이 그런 거 같습니다.
많은 오해 속에서 이해를 바라지만 결국 오해만 커지고 서로 상처받고 멀어지는 것.
이것들의 반복이 아닌가 싶네요.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의 주인공인 뫼르소.
많은 사람들은 그저 날씨가 좋아 아랍인을 죽이고 사형당한 부조리한 인간의 전형으로 알고 있는데 사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전혀 이해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실망 이해받기 위한 그 어떤 변명도 하지 않고 담담히 사형을 당합니다.
이해받기를 거부한 한 인간의 소극적 자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는 바로 그것을 부조리라 말하며 그것에 반항하지만 부정적으로 대응하는 인간의 예로 뫼르소를 선택한 것입니다.
이처럼 개개인의 사정을 남들이 알아서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것은 기적을 바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이해받기를 원하는 것은 모든 것이 내 위주로 돌아가 주길 바라는 어쩌면 강요되는 폭력적인 성향일 수도 있습니다.
이해를 바라기보단 그저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어른다운 모습으로 삶을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들 또한 나를 이해해 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사실을 먼저 기억하며,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작은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