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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May 30. 2022

황순원- 소나기

이처럼 짧은 소설이 큰 울림을 남긴 적이 있었던가?

중학교 교과서에 전편이 실리 고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던 분량의 소설 '소나기'.

하지만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인간의 본성(本性)에 내재된 순수한 선(善)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고 행(行) 함에 황순원 작가의 도움을 적잖이 받았다.

이것은 중학교 저학년 시절 교과서를 통해 또는 다른 경로를 통해 배우더라도 모두가 순수한 사랑에 깃든 선(善)이라는 어쩌면 종교적 가치라고 할 수 있는 것을 그에게서 처음을 배운 시발점이 아닌가 싶다.(물론 종교를 통해 사랑과 자비 등을 배우기도 하지만 문학을 통해 그 순수한 감성을 배우는 것은 그의 소설 '소나기'를 통해서 일까 싶다.)


이렇듯 우리가 많은 빚은 지고 있는 작가 황순원은 1915년 평안남도 대동군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어린 시절 평양으로 이사 온 가족을 따라 평양에서 중학교를 마치게 되는데 이북의 명문이라고 할 수 있는 정주 오산중학교에서 수학하다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전학하여 졸업하였다.

그 후 일본으로 유학하여 도쿄의 제2고등학원을 졸업하고 사립명문인 와세다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였다.


1939년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하였는데 문제는 시기적으로 너무나도 암울한 때였다.

1938년 이미 전시 총동원령이 내려지고 미국과의 본격적인 태평양전쟁으로 치닫던 1942년에는 식민지에서 징용. 징발. 징병이 일상화되었고 조선말조차 쓰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정지용 같은 시인은 이때 절필을 하고 이후 다시는 문학활동을 하지 못한 채 6.25전쟁통에 삶을 마치기도 했다. 이 시절 황순원 작가는 몰래 글을 쓰고 집안의 다락방에 감추어 두었다고 한다.

해방을 맞아 공산주의 국가가 된 이북에서 살기엔 애당초 가당치도 않았던 부르주아 출신이었기에 1946년 월남하여 고등학교 교사를 하다 6.25를 몸소 겪고 그 후엔 활발한 문학활동을 하였으며 경희대학교에서 국문과 교수로 지내시다 2000년 9월 14일 자택에서 숨을 거두셨다.

동시대에 태어난 문인들이 독립운동. 좌우이념 대립. 민주화운동 등에 고초를 겪었던 것에 비하여 황순원 작가는 오롯이 문학활동에만 전념한 탓에 이런 그를 가르쳐 나이가 들며 더욱 원숙한 작품 활동을 한 얼마 되지 않는 우리나라 '노년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여담이지만 그보다 2살 어린 1917년생 윤동주 작가의 경우 1940년 그 흉흉했던 시기에 일본 유학길에 올라 1944년 2월 조국해방을 불과 6개월 남기고 머나먼 이국땅 형무소에서 삶을 마감한 일을 떠올려 보면 그가 1939년에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고국으로 돌아온 부분은 정말 천운이었다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소나기 마을 순수한 소년과 소녀가 비를 피하던 수숫단과 멀리 원두막이 보인다.(출처 어느 네이버 블로거)

이제 오늘의 주제인 소설 '소나기'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굳이 줄거리를 소개하지 않아도 될 만큼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스토리이다.

이 책의 배경이 1950년대 후반 양평의 시골마을이다.

나의 유년 시절이 1980년대 남양주 팔당이었던 점을 상기하면 그보다 30년 전의 양평이라고 하면 그야말로 첩첩산중의 시골마을이었을 것이다.


이때 서울에 사는 손자의 사업이 어려워져 가세가 기운 윤 초시 댁의 증손녀가 몸이 안 좋아 요양차 시골 할아버지 댁으로 내려온다. 이때 소녀는 마을 소년을 개울가 징검다리에서 몇 번을 마주하는데 어느 날에는 흰 조약돌을 던지며 '바보'라고 외치고 도망을 가는 소녀에게 소년은 야릇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소녀가 함께 산 너머 벌 끝까지 갈 것을 제안하고 함께 나서는데 차가운 가을 소나기를 맞이하고 소년은 입술이 파랗게 질린 소녀를 위해 원두막이며 수숫단 속이며 비를 맞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한다.

이내 비가 그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불어난 개울가를 소녀를 고 건너는 소년. 소녀의 분홍빛 스웨터는 소년의 옷에 묻은 얼룩이 번지고 만다.


그 후 만난 소녀는 씨알 굵고 맛있기로 소문난 윤 초시네 대추 몇 알 건네고 소년은 그런 소녀를 위해 호두 서리를 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지만 어느 날 소녀가 소년의 체취가 묻은 스웨터를 입혀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긴 채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영화 '소나기'의 한 장면

이 소설이 빛나는 이유는 소녀의 당돌함과 소년의 순수함의 묘한 조화일 것이다.

1950년 중. 후반 전쟁이 끝난 서울은 새로운 활기로 넘쳤다.

거리엔 자동차가 늘고 서양문물이 물밀듯이 몰려오는 상황에서 서울 출신의 소녀는 전통적인 우리네 여인네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풍긴다.

분홍빛 스웨터에 남색 스커트를 입은 외향으로도 충분히 이국적이며 특히, 징검다리에서 호감이 가는 소년에게 돌을 던지며 '바보'라고 외치는 부분과 함께 산 너머 벌 끝에 가자고 제안을 하고, 소년에게 대추를 건네는 모습은 당시로는 그야말로 새로운 가치관을 가진 여성의 등장을 알리는 듯하다. 하기야 죽은 마당에 자기가 입었던 옷을 입혀 묻어 달라고 하는 모습에 소년의 아버지는 잔망스럽다는 표현으로 혀끝을 돌렸다.

이에 비하여 소년은 양평 토박이로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한 소년의 모습의 전형이다.

특히,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소녀가 그리울 때마다 주머니 속의 흰 조약돌과 호두를 매만지는 모습은 우리네 전통적인 남녀관을 간직한 모습 그대로이다.


이렇게 놓고 보면 순수한 사랑 뒤에는 당시 서양적 가치관과 우리네 전통적 가치관이 융화되지 못한 채 혼란한 상황으로 치닫던 시대적 현실을 묘사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개발로 상징되는 서양적 가치관과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농경문화적인 유교적 가치관이 충돌하였던 시기의 우리네 현실을 이룰 수 없는 사랑의 비극적 상황으로 황순원 작가는 생각했던 것 같다.(소설을 읽은 목가적 일상 추구의 개인적 생각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순수한 소년과 소녀의 사랑 뒤에 문학적으로 당시 시대상을 고려해 보았을 때 두 주인공의 극단적인 성격적 대립은 가치관의 혼란을 겪는 시대에 두 가치관의 조화로운 화합을 원하는 각가의 마음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그 후의 우리네 가치관이 바르게 정립되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또한 역사적으로 대중이든 사회 지도층이든 시대의 가치관이 늘 올바르게 정립된 시절이 과연 있었는가 싶다.


8페이지도 안되는 분량의 소설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짜내고 있지는 않은가 싶을 정도로 그 가치가 엄청난 소설 '소나기', 너무도 많이 읽은 순수한 사랑의 이야기로 읽는 것보다 두 주인공의 극단적인 성격적 차이에서 오는 당시 사회의 가치관 대립의 시대적 소설로 읽어보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독서라 여기며 글을 마친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 이세영 씨가 14살에 연기한 '소나기'의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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