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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Jun 09. 2022

문정희- 한계령을 위한 연가

누구나 지치고 힘들땐 태초의 나로 돌아가고 싶을꺼야~

문정희 시인하면 왠지 모르게 도회적인 이미지가 있다.

1947년 5월생의 이제 일흔하고도 반을 훌쩍 넘긴 나이에 전라남도 보성 출신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시인이 1980년대 강남 개발이 박차를 가하던 때부터 강남에 거주하며 멋들어진 헤어스타일과 화장. 의상이 어우러진  것들이 세련된 도회적 이미지의 작가로 기억되고 있다.

실제 이런 시인의 삶과 이미지에 맞게 2022년 4월 삼성동 경기고 부근에 '문정희 시인 길'이 조성되어 그녀의 작품 8편이 전시되고 있다.

아직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문인으로 시집 출판이나 신문 기고 등을 통해 늘 우리 곁에서 소통하고 있는 작가이다. 오늘은 이런 문정희 작가의 2010년 작인 '한계령을 위한 연가"를 감상해 보자.



한계령을 위한 연가

- 문정희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폭설을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


이윽고 날이 어두워지면 풍요는

조금씩 공포로 변하고, 현실은

두려움의 색채를 드리우기 시작하지만

헬리콥터가 나타났을 때에도

나는 결코 손을 흔들지는 않으리.


헬리콥터가 눈 속에 갇힌 야생조들과

짐승들을 위해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시퍼렇게 살아있는 젊은 심장을 향해

까아만 포탄을 뿌려 대던 헬리콥터들이

고라니나 꿩들의 일용할 양식을 위해

자비롭게 골고루 먹이를 뿌릴 때에도

나는 결코 옷자락을 보이지 않으리.


아름다운 한계령에 기꺼이 묶여

난생처음 짧은 축복에 몸 둘 바를 모르리


문정희 시집 '사랑의 기쁨' 中 2010年



시(詩)의 내용은 어렵지 않게 이해될 수 있다.

수십 년 만의 폭설이 내린 한계령에 그 추운 한겨울에도 못 잊을 만큼 사랑하는 사람과 한계령에 고립되고 싶다는 바람을 노래한 시.

근데 시인은 왜 그토록 극한의 상황에서 한계령이라는 곳에서 고립되고 싶은 소망을 이야기하며 제목을 나 자신이 아닌 한계령을 위한 축제의 노래라 지었을까?

나는 그게 제일 궁금하였고 그게 이 시의 핵심임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도회적인 이미지 가졌다고 생각하는 문정희 시인

우선 한계령에 대하여 알아보아야겠다.

한계령은 과거 서울과 양양을 잇는 고갯길이었다.

2017년 6월 30일에 서울양양간고속도로가 완공되면서 우리는 태백산맥을 지하로 통과하고 있지만 그전만 해도 동해의 넓고 푸른 바다를 보려면 굽이굽이 험한 한계령을 반드시 넘어야만 했다.

지금은 인적이 드물어 황량함마저 느끼는 곳이 한계령이 되었지만 이 시가 발표된 2010년만 해도 1년 365일 강원도 관동지방으로 지나드는 차량으로 붐비던 곳이었다.

그 한계령이 한적해지는 때가 있었으니 그것은 폭설이 내려 교통이 통제되는 한겨울에만이 깊은 고요 속에 고립되던 곳이 한계령이었다.


태백산맥의 깊고 깊은 산중에 자리 잡고 있어 본래 고요의 땅이었던 한계령 정상.

하지만 인적 드물던 고갯길에 도로가 생기고 우리네 삶이 풍요로워지자 점점 더 사람의 흔적들로 북적거리던 한계령.

그 한계령이 고요해지는 순간은 바로 한겨울 폭설이 내리던 그때 만이었다.


문정희 작가는 고요했던 그곳이 본래의 고요함으로 돌아가는 폭설의 계절에 사랑하는 사람과 그곳에서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고 생명의 손을 내주는 구조 헬리콥터조차 거부한 채 침잠하며 짧은 축복에 겨운 시간을 보냈으면 하는 바를 간절히 노래하고 있다.

한계령을 위한 잔치의 노래라 칭하기만 순간순간 지쳐가는 자기 자신에게 한겨울 본래의 고요함에 빠진 한계령에서 삶 그 자체에 대해 무의식 속에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불안 등을 느끼며 내가 살아있음을 각성하는 계기로 삼고자 노래함을 알 수 있다. 마치 눈이 녹으면 사람이 북적한 원래의 한계령으로 돌아가듯이 자신의 지침도 그렇게 눈녹듯 사라지고 평범한 일상으로 힘차게 돌아감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의 도회적인 성향이 나타나는 부분은 늘 자신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 수 있는 헬리콥터가 자신의 시야에 있으며 또 사랑하는 이도 있고 그게 끝이 아닌 잠깐의 묶여있는 시간이어야 한다는 조건은 결코 현실 부정이나 도피가 아닌 리프레시의 긍정적 고립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지쳐가는 이가 있다면 본연의 고요 속으로 들어간 한겨울 폭설 내린 한계령에서의 고립을 생각하며 생명에 대한 본연의 열정에 대하여 각성하며 다시금 살아가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는 시(詩) 문정희 시인의 '한계령을 위한 연가'였다.

폭설이 내린 한계령- 네이버 어느 블로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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