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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Jun 10. 2022

김유정- 봄봄

개인적으로 한국의 F. 스콧 피츠제럴드라고 칭하고 싶다.

병마와 가난에 시달리다 폐결핵으로 쓸쓸히 삶을 마감한 작가 김유정.

그 와중에서도 생계와 건강 회복을 위해(치료비 마련) 부단히 노력하여 2여 년간의 짧은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지만 30여 편의 완성도 높은 작품을 남긴 열정의 작가 김유정.

일제강점기 자의반 타의반으로 내려온 고향 춘천에서 겪은 서민의 삶에 애정을 느끼고 실제 농촌운동에도 투신하였으나 혈기왕성했던 이십 대 초반 박녹주라는 기생 출신의 명창(名唱)을 스토킹 한 전력으로 인하여 호불호가 갈리는 작가 김유정.

이상이 내가 알고 있는 작가 김유정이다.

개인적으로 희대의 박녹주 스토킹 사건이 없었더라면 그의 삶은 완벽하리 만큼 작가로서 스토리텔링은 우리에게 그의 삶 말년의 친구 천재 작가 이상보다 더 드라마틱한 감동을 주었을 것이다.

이렇게 할 말 많은 작가 김유정의 '봄봄'에 대하여 알아보자.

작가 김유정(左)과 그의 이름을 딴 김유정역(右)

작가 김유정은 1908년 2월 12일 지금의 강원도 춘천시 신동면 증리 당시로는 춘천군 남내일작면 증리 실레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셋째 누이는 그가 당시 서울에도 있었던 집에서 태어나 엄밀히 말해 춘천이 고향이 아니라고 했으나 김유정은 살아생전 자신의 고향은 실레마을이며 그곳에 대한 애착 또한 컸다고 한다.

그가 태어나고 일곱 살이 되던 1915년 3월 그의 어머니가 죽고, 아버지도 2년 뒤인 1917년 5월 세상을 떠나 형인 김유근이 실제적인 보호자가 되었어야 함에도 그는 집안을 돌보지 않는 난봉꾼으로 만석꾼 집안이었던 가세를 몽땅 말아먹은 위인인 사람이었다. 성인이 된 김유정이 가난으로 인한 폐결핵과 치질 등으로 여생을 불행하게 살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형인 김유근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어찌 되었든 간에 지금의 정신분석학적으로나 심리학적으로 김유정의 무의식 기저는 애정결핍이 떡하니 자리 잡아 여성 특히, 연상의 여인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다고 한다.


이에 대한 일화로 박녹주 명창(名唱)에 대한 스토킹 사건이 있었는데 오죽하면 요즘 유행하는 유튜브에서도 김유정으로 검색을 하면 여러 콘텐츠가 뜰 정도로 유명한데 섬뜩한 부분도 있지만, 종국에는 별다른 사고 없이 마무리되었고 후에 박녹주 선생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가 이렇게 유명한 작가가 될 줄 알았다면 손이라도 허락해 줄 걸 하는 후회가 남아 있는 걸 보면 스토킹 당사자의 용서도 받은 만큼 지금의 우리들에게서 조금씩 잊혀갔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 그만큼 김유정 작가의 작품은 뛰어나고 그의 삶 역시 몽매한 민중에 대한 사랑 또한 작지 않기 때문이다.

작가 김유정이 사랑(?) 했던 명창(名唱) 박녹주 선생

할 말 많은 그의 삶 이야기는 그만하고 오늘의 주제인 소설 '봄봄'에 대하여 알아보자.

이 작품은 1935년에 발표한 작품으로 순박하고 어리숙한 인물인 화자가 슬하에 딸만 셋을 두고 있는 인색하고 교활하기 그지없는 마름(대지주 밑에서 소작을 하며 여러 소작농을 관리하는 사람)인 봉필의 집에 점순이라는 둘째 딸과 결혼하기 위해 데릴사위로 들어가 겪는 에피소드를 주제로 하고 있다.


화자는 마름인 봉필의 집에 둘째 딸 점순과 결혼하기 위해 3년하고도 7개월이나 데릴사위로 살고 있다.

말이 데릴 사위지 머슴이나 다름없이 일을 부리고 밥은 끼니당 한 그릇 외에는 주지도 않고 마름으로 살며 걸어진 입과 손으로 거의 매일 욕을 먹거나 손찌검을 당한다.

장인에게 점순과의 결혼을 이야기하면 계속 키가 작아 아직 시집을 보내기 어렵다는 말을 하지만 기실 자신의 장모보다 한 뼘은 더 큰 점순을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점순 역시 주인공이 싫지 않은 내색을 하며 서둘러 혼인을 하게 하라고 화자를 부추긴다.

원하는 결혼은 키가 작다는 이유로 계속 미루어지고 머슴살이는 점점 힘에 부칠 때 주위에 사람들도 화자의 마음에 이래저래 열불을 당기니 어느 날 주인공은 작정을 하고 장모를 넝알(가파른 지형으로 주택가 쪽에 있으면 밑으로 쓰레기 등을 버리기도 한다) 밑으로 민다.

장인에게 손찌검을 할 수 없고 그냥 넝알 밑으로 몇 번이고 못 올라오게 민 것뿐이니 이번 가을에 결혼 승낙을 확실히 받을 때까지 계속 밀고 또 민다.

그러다 장인이 화자의 중요 부위를 움켜지게 되고 주인공도 함께 장인의 그곳을 움켜지니 서로 나 죽겠다 나뒹굴다 보다 못한 장모와 점순이 뛰어나와 제 남편과 아버지 편을 드니 화자는 어안이 벙벙하다.

소설은 이렇게 지금의 시트콤 한편의 한 장면을 보는 듯 마무리되고 소설을 읽는 자는 이게 무슨 황당 시추에이션인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책을 덮을 그런 내용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블랙코미디의 한 장면 같은 이 짧은 소설이 가지고 있는 가치는 무엇일까?

그것은 1920~30년대 민초들의 삶을 가감 없이 표현한 것으로 이 작품 하나로 당시 농촌의 사회상을 가늠해 볼 수 있다는 데 있다. 대지주의 토지 소유와 소작농의 경작이라는 봉건적 제도가 만연한 전근대적인 모습을 하고 있으며 식민지 시대라는 특성상 노동력이 부족한 현실에서 농경문화를 벗어나지 못해 딸만 셋인 마름이 제대로 된 노동력이 없어 더 많은 농사일을 하지 못하고 데릴사위라는 명분으로 청년을 머슴처럼 부려먹으며 살아가는 모습은 현재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당시의 시대상이었다.


김유정의 소설이 가지는 가치는 특정되는 시기와 지역의 시대상과 당시의 생생한 언어를 기록하고 보전하고 있다는데 그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작품이 그만의 경험을 통한 농촌 사회 해학적 문학이라는 한계를 지적하는 이들이 있다면 앞서 언급한 부분을 통해 단순한 해학문학의 한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적 문제 제기와 역사적 고증자료라는 현재의 가치는 그의 문학이 단순한 문학적 가치뿐만이 아니라 일제 치하 어려운 우리의 현실에 대한 반성과 고증이라는 우리에게 많지 않은 자료를 제공하는 부분까지 더해져 다시금 조명되는 것은 지금의 그가 대한민국 인물로는 최초로 한 지역의 전철역 이름을 오롯이 가져간 이유라고도 할 수 있겠다.


그의 작품을 읽으며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지금은 알아듣기 힘든 방언이며 고어(古語)며 사회적 제도들이 낯설기는 하지만 하나하나 검색해가며 알아보는 재미 또한 쏠쏠하기에 그의 단편소설집을 추천하며 100여 년 전 강원도 춘천 실레마을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것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며 글을 마무리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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