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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Aug 03. 2022

그 여름의 끝- 이성복

김수용, 나쓰메 소세키, 프란츠 카프카, 마르셀 프루스트, 플로베르, 랭보, 릴케, 가브리엘 마르케스 이들의 글이 천상에 있다면 다만 자신은 그들의 아류(亞流) 뿐이라고 고백하는 작가 이성복.

과거에도 현재에도 칸트 3부작의 마지막인 '판단력 비판'의 질문 '인간은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의 답인 미(美)의 의미와 추구 방향에 대해 공부 중이라고 말하는 작가 이성복.

오늘의 그의 대표작 '그 여름의 끝'을 감상해 보자.


이시는 '우리 모두에게는 보이지 않은 것을 우리 모두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여 삶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가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시론(詩論)에 가장 부합되는 시라고 개인적으로 생각되기에 더욱 그 문자 하나하나가 주옥처럼 느껴진다.


그 여름의 끝


               - 이성복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엑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 中 1990.06. 문학과지성사


우선 시인 이성복은 1952년 경상북도 상주 출신이다.

빛나는 학구열로 상경하여 명문학교를 두루 섭렵한다(서울 중-경기고-서울대).

서울대 불어불문과에 입학하여 원래는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했는데 김현 서울대 교수를 만나 작가로 데뷔하게 되고 이후 대구로 내려가 계명대학교에서 불문학과 문예창작을 가르치다 얼마 전 정년퇴임하였다.

본인의 말대로 하면 작가로 기득권 안에서 편하게 잘 먹고 잘 산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사실 그는 1980년대 황지우, 최승자, 박남철 시인 등과 함께 당시의 시 창작 사조라 할 수 있는 해체주의 시문학의 선구자격이었으나 정작 유명해진 계기는 유명 힙합 뮤지션 지코가 TV에 출연하여 자신이 최근 읽은 책이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라는 책을 언급하면서였는데 이 책은 이성복 시인이 2011년에 펴낸 격언집이었기 때문이다.

시는 그의 시철학에 맞게 쉬운 언어로 우리에게 잘 보지 못했던 자연과 일상의 현상을 통해 삶의 아름다움을 다시금 느끼고 용기를 얻어 살아갈 힘을 준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이성복 시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시인은 많은데 읽을 독자는 없다. 시인의 이야기를 모두가 이해해야 하는데 자신만의 언어로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하니 도무지 독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난해한 이야기들만 넘쳐난다. 고로 이야기하는 화자인 시인만 많을 뿐 그것을 이해하는 독자는 없다'

얼핏 지나가는 지면을 통해 읽은지라 나름 생각나는 대로 정리했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내가 받았던 그 인상은 지금도 방금 전의 일처럼 명징하다.


'그 여름의 끝'도 이런 맥락에서 읽으면 그 가치를 단숨에 알아볼 수 있다.

한 여름 마당 저편 붉은 꽃을 피운 백일홍.

장마철 어김없이 찾아오는 태풍의 모진 폭풍을 그 가느다란 줄기로 이겨내고 피어나 불을 뿜듯이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자태를 보고 있자니 작가는 그 가는 줄기와 대비되는 강렬한 꽃을 나약하지만 결코 쓰러지지 않는 우리네 삶의 단면을 떠올리며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놓는다.


결국 삶은 극복에 의미가 있으며 거친 대자연의 장(場)에서 숱한 고난을 이겨내고 살아가는 모든 존재와 인간을 통해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이 글 처음에서 언급한 대로 칸트 3부작의 마지막 인간은 무엇을 희망할 수 있는가?의 답, 숭고와 미에 대한 시인 이성복의 답안지를 감상하며 고난의 극복을 통해 웃으며 살아가는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금 깊은 상념에 나 자신을 가라앉혀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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