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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Aug 08. 2022

사평역에서- 곽재구

1954년 전라도 광주 출신의 시인 곽재구.

그가 성인인 되어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입학을 하고 그렇게 1970년대 중후반을 보내고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사평역에서'라는 시로 당선이 되었다고 하면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1980년 5월에 있었던 일이 이 시에 투영되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제 시를 읽어봐도 그런 느낌이 강하다.

군부(軍部) 독재 시절 산업화라는 명분 아래 참혹히 짓밟힌 우리의 평범한 사람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무엇 하나 제대로 얻은 것 하나 없이 유린당했던 우리네 모습이 깊어가는 겨울날 어디론가 고달픈 길을 떠나기 위해 지친 몸으로 기다리는 모습에 애절함이 묻어나다 못해 눈물이 날 지경이다.

한 번 시를 감상해 보자.


사평역에서


-곽재구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 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 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 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 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부분 당선작


해방 후 지금까지 우리 민중의 고통은 정치적으론 공산주의에 대항한다는 명분, 경제적으론 낙후된 농업국가를 현대화된 산업국가로 변모한다는 명분하에 일어난 일들이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풍요로운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키치 아래 실제로 사평역에서 지친 몸으로 어디론가 더 힘들 길로 떠밀려 떠나야 했던 우리네 필부필부(匹夫匹婦)들에게 일어난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풍요로운 자유민주주의 사회'에 반하는 사회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재연이었다.


나치의 '선전. 선동주의', 스탈린'대숙청', 모택동의 '문화혁명' 굵은 것들만 예를 든 것이다.

하다못해 일제의 잔재조차 제대로 처리되지 못해 민주화. 노동운동자들에겐 일제강점기 일본 사법부 경찰들이 독립투사들에게 행했던 고문을 배운 대한민국 경찰이 똑같이 모진 고문을 가했다.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자 정의를 행했던 이들은 불의의 세력들에게 늘 괴롭힘당하는 존재였다.

그 고단함이 묻어 있는 시가 바로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일 것이다.


물론 시에서 표현하는 힘든 민중은 정의를 위해 투쟁했던 민주투사보다 아무것도 모른 채 힘들 길을 하염없이 걸어야 했던 우리 민중 그 자체 일 것이다.

하지만 민주투사이던 노동운동가이던 무산 노동자이던 빈농이던 우리 대다수는 그렇게 애달픈 삶을 살아야만 했다.

곽재구 시인

사실 이 시(詩)는 앞에서 언급한 1980년 5월을 광주 한복판에서 경험한 시인이 그것을 염두에 두고 쓴 시는 아니라고 한다.

이 시는 1979년쯤 써두었다가 이듬해 가을쯤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그다음 해 봄에 당선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1980년 그 일을 겪고 시를 썼다면 이렇게 연민의 눈으로만 우리를 바라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보다는 '사평역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해서 1979년까지의 일들 그리고 그 후 일어날 그 수많은 시련을 예견하며 우리 자신을 조금 더 따뜻한 눈으로 바라볼 것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구구절절 배어있는 듯하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의 한복판인 대한민국에서 왜 고통받는지도 모른 채 소외되고 있는 현실에서 아직도 '사평역'은 그 고단한 민중들이 졸거나 아픈 몸과 마음에 콜록거리며 목재소에서 버려진 톱밥을 단단히 뭉개 때는 값싼 온기를 뿜는 톱밥난로에 지친 몸을 포개어 쉬며 또 어디론가 고된 길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현실적으로도 우리가 삶의 의미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들이 자본주의 소비조장사회의 검은 유혹인지도 모른 채 시에 나오는 한 두릅의 굴비와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하루하루 힘겹게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한마디로 1979년의 사평역이 2022년에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땅의 평범한 사람으로 과연 무엇이 우리들에게 진정한 희망이요 살아갈 용기가 되는지 2022년 다시금 되물으며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를 감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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