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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Aug 10. 2022

이성복-서해

어쩌면 산타클로스는 없다는 이야기를 에둘러하신 걸 수도 있어......

시인 이성복 님은 1952년 경상북도 상주 출신이다.

빛나는 학구열로 상경하여 당시 최고 명문인 서울중-경기고-서울대 코스의 최고 학교들을 두루 섭렵하게 된다. 서울대 불어불문과에 입학하여 원래는 대기업 취업을 목표로 했는데 김현 서울대 교수를 만나 작가로 데뷔하게 되고 이후 대구로 내려가 계명대학교에서 불문학과 문예창작을 가르치다 얼마 전 정년퇴임하였다.

본인의 말대로 하면 작가로 기득권 안에서 편하게 잘 먹고 잘 산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사실 그는 1980년대 황지우, 최승자, 박남철 시인 등과 함께 당시의 시 창작 사조라 할 수 있는 해체주의 시문학의 선구자격이었으나 정작 유명해진 계기는 유명 힙합 뮤지션 지코가 TV에 출연하여 자신이 최근 읽은 책이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라는 책을 언급하면서였는데 이 책은 이성복 시인이 2011년에 펴낸 격언집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의 대표 시집인 '그 여름의 끝'에 수록된 서해를 감상하고자 한다.


서해


-이성복


아직 서해엔 가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멀리서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보지 않은 곳을 남겨두어야 할까 봅니다

내 다 가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 가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 속에서나 파도치고 있습니다


이성복 시집 '그 여름의 끝' 中 1990.06 문학과지성사



시를 읽고 있자니 어려서부터 불문율이었던 산타클로스 이야기가 떠오른다.

일 년을 착하게 살면 12월 24일 밤 몰래 방으로 침입(?) 하여 내가 가지고 싶었던 선물을 귀신같이 알고 머리맡에 두고 가는 산타클로스.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이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알게 된다.

세상에 산타클로스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산타클로스 대신 해마다 머리맡에 내가 가지고 싶었던 그 선물을 주는 것은 다름 아닌 부모라는 것을 말이다.


개인적으로 이성복 시인의 '서해'를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참조하여 다음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고 싶다.

1980년대 후반 민주화운동으로 무언가 희망에 불타오르던 시기, 뿐만이 아니다.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이 열리고 이듬해 해외여행이 본격적으로 자유화가 되고 저유가, 저 국제금리, 달러 약세화 등 이른바 3저 호황을 등에 업고 그야말로 날개를 달고 휠 휠 날던 대한민국 경제.

모든 사람들은 이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 눈앞에 왔다고 생각했다.

당시 초등학교 고학년이었던 나도 1990년대를 시작하며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TV 다큐멘터리를 엄청나게 또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하지만 시인 이성복은 생각한 거 같다.

결코 모두가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란 먼 이야기라는 것을 말이다.

산타클로스가 현실에는 없듯이 모두가 잘 사는 대한민국이란 애당초 존재하지도 하지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발전과정만 봐도 자명한 것이며, 간접민주주의의 과거 역사를 보면 국가 규모가 커짐에 따라 소외되는 사람은 더욱 늘어난다는 뒤집을 수 없는 사실을 보아도 향후 대한민국이 양극화 현상으로 멍들게 수밖에 없는 것은 당시 지식인의 하나로 쉽게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 서구 유럽 특히, 북유럽의 복지국가로 발전하지 않느냐고 반문한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사회의 문제점을 극복하고자 공산주의적 사회시스템을 받아들인 사회주의 국가이다. 1990년대 초반에도 주사파 등등해서 뒤숭숭한 마당에 공산주의에 대해 공부하는 것조차 중대 범죄인 국가에서 복지 사회주의 국가를 운운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인 상황이었다.

더 심각했던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신자유주의가 전두환 정권에 의해 대한민국이 그 이론의 초신봉자가 되어 있었음에 이성복 시인은 저 먼 꿈같은 나라에 결코 갈수 없음을 알고 차라리 그를 위해 또 그들을 위해 그냥 묻어버리기로 결심한듯하다.


2연에 그곳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 것 없이 게들이 집을 들락거리는 곳이지만은 당시 우리가 원했던 자유민주주의 복지국가가 그래도 지구상에 존재는 하니 아주 허망한 유토피아는 아니라는 이야기.

하지만 노동자를 착취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당시 정치인들의 행보를 보았을 때 결코 우리는 갈 수 없는 곳이 사회주의적 복지국가임을 알고 있기에 그 사실을 그저 묻어 버리는 시인 이성복.

그런 희망마저 없다면 그에 대한 노력도 접을 것이기에 저 바다 한편에 당신을 두고 그래도 당신이 있다는 희망에 우리 모두가 살아갈 용기를 가질 수 있게 해준 이성복 시인의 시 '서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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