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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Aug 23. 2022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모란꽃 만큼 아름다운 詩

김영랑 시인의 본명은 윤식이다.

영랑은 아호(雅號)이다.

시인은 1903년 1월 16일 전라남도 강진의 부유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1917년 지금의 휘문고등학교의 전신인 휘문의숙에 입학하여 이때부터 문학에 관심을 가졌다고 한다.

1919년 3.1운동 때 낙향하여 의거를 준비하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6개월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일본 유학시절에는 관동대지진이 발생하여 귀국을 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한다. 그때 영문학을 공부하며 크리스티나 로세티나 존 키츠 같은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들의 시를 탐독했으며 1930년대 박용철, 정지용 시인 등과 함께 교류하며 시문학(詩文學) 동인지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8.15 광복 후 우익에서 정치활동을 하며 낭만주의의 영향이 짙은 서정시의 시작품 세계와는 다른 행보를 보였는데 1950년 서울수복 당시 폭격에 의한 폭사로 돌아가셨다.


동년배이자 함께 시문학 동인지 활동을 했지만 좌익활동을 했던 정지용 시인도 같은 시기에 납북이 되어 끌려가던 중 미군 전투기에 폭사하신 것으로 추정되는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하면 서정시를 쓰시고 일본 유학을 다녀와서 6.25와중 폭사한 비슷한 점이 있지만 정치적 행보는 완전히 달랐기에 이 두 분이 1950년 서울수복을 무사히(?) 지내고 한국전쟁을 지나 남이든 북에서든 문학적. 정치적으로 어떻게 지내셨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 질문에 대한 궁금증보다는 역사의 파고에 모진 삶은 사신 분들께 그저 안타까움 마음만 들 뿐이다.(생각해 보면 정지용 시인은 보도연맹 활동으로 인하여 북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을 것이고, 김영랑 시인도 이승만 정권 하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떨어진 이력도 있고 이승만 정권 후 5.16군사정변이 일어난 점을 감안하면 정치적으로 험난한 생활을 하였을 것 같아 사실 더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오늘은 이런 김영랑 시인의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을 감상해 보겠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몸을 여읜 설움에 잠길테요.

5월 어는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게 무너졌으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 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니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의 슬픔의 봄을


김영랑 시집 '영랑시집' 中 1935年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있다.

꽃은 붉게 피어 아름다움이 10일을 못하고 인간사 권력은 10년을 못 간다는 말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에서 화자가 사랑하는 모란꽃은 5일을 못 가고 나머지 360일을 또다시 긴 기다림으로 힘들게 한다.

사실이 그렇다 모란꽃은 화려하지만 정말 언제 핀지도 모를 정도로 꽃이 일찍 지고 그 화련한 꽃잎도 봄날 핀 그 어느 꽃보다 쉬 지어 땅바닥에서 아무렇게나 검게 그을려 자취를 감춘다. 그 후의 모란은 무성한 잡초처럼 여름날 마당 구석에 천덕꾸러기 마냥 자리를 잡고 있으니 아름다운 모란꽃을 다시금 기다리는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인생사 다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호우시절(好雨時節) 속에 있을 땐 그 시절이 그토록 아름다운지를 인지하지 못하다 다 지나고 나서 후회 속에 그리워하다 또다시 그런 시절이 와도 또 속절없이 시간에 속아 흘려보내고 만다.

설사 '모란이 피기까지는'의 화자처럼 아름다운 시간 속에 있다고 해도 인간 무의식의 절대 대왕 '불안'의 감정이 이 시절이 언제 끝날까 하는 걱정에 우리를 괴롭히게 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시(詩)를 차분히 감상하면 영국의 낭만주의 운동의 영향을 받은 우리의 서정시로서 참으로 감탄이 절로 나오며 동서양의 정서가 어우러진 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 마지막 연의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에서는 모란꽃을 대면하면 다시금 상실의 슬픔과 대면하게 될 그 뻔한 운명이지만 어찌 되건 그 아름다운 슬픔의 봄을 기다리는 마음을 생각해 보면 힘든 삶이지만 그래도 순간순간의 아름다움을 대면할 수 있기에 그 삶을 긍정하는 면에서 알베르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에서 신(神)을 기만한 죄로 아크로코린토산(山)에서 돌을 올려놓는 형벌을 받았지만 무수히 반복되는 그 고되고 무의미한 노동에도 산을 내려올 때 잠시의 휴식과 보람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부조리를 승화하였다는 에세이가 절로 생각나는 부분이다.

따스한 봄날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모란꽃을 생각하며 곧 질 꽃이지만 다시금 360여 일 기다려 기꺼이 맞이할 이별을 전제로 한 그 만남을 부조리(不條理) 한 삶을 극복하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상상하며 큰 감동을 느껴보는 것도 아주 괜찮은 일로 추천하며 김영랑 시인의 '모란꽃이 피기까지는'에 대한 포스팅을 마친다.

김영랑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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