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멕시코의 멕시코시티 출신 여류 소설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이 소설도 책의 제목만 봐서는 당최 무슨 내용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소설이다.
그도 그럴 것이 스페인어 원제목은 'Como Agua Para Chocolate'라고 하는데 이는 막 초콜릿이 부글부글 끊기 직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책을 다 읽고 나 후 내 방식대로 의역하자면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고 책 제목을 번역하고 싶다.
그런데 왜 당치도 않은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이냐 하면 원래 이 소설은 라우라 에스키벨이 드라마 희곡으로 기획했었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드라마화가 어려울 것이라는 주위의 권유에 따라 소설의 형태로 쓰여 1989년에 발표하였는데 미국에서만 200만 부 이상이 판매되고 전 세계 33개 언어로 번역되어 450만 부 이상 팔리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되고 자연스레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1993년 제작된 영화 'Como Agua Para Chocolate'는 지금은 이혼한 당시 남편 알폰소 에스키벨의 연출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상업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바로 그때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수입될 때 영화 배급사에서 번역한 영화 제목이 바로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인데 그 후 책이 번역되면서 영화의 그 제목을 버릴 수가 없어서 그냥 그 제목으로 쓰게 되었다고 한다.
여담이지만 남편 알폰소 에스키벨의 작품 중 '구름 위의 산책'이라는 키아누 리브즈 주연의 영화가 있는데 캘리포니아 최대 와인 산지라고 할 수 있는 나파밸리 와이너리를 배경으로 이루어진 영화인데 워낙 인상 깊었던 나파밸리의 모습에 감명받아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의 살리나스 밸리와 함께 꼭 가보고 싶은 북 캘리포니아의 장소였는데 2007년 두 곳 모두를 가보고 두 곳 모두 개발이 되지 않은 곳으로 1900년대 초반의 시대적 배경을 그대로 간직한 곳이어서 그 감동이 배가 되었던 기억이 있다.
이혼한 남편 알폰소 에스키벨 연출의 키아누 리브즈 주연의 영화 '구름 위에 산책'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소설의 배경은 멕시코 내전이 한창인 1910년대 멕시코 시골마을 농장이다.
주인공 티타는 아버지 없이 큰 농장을 꾸려가는 엄마인 마마 엘레나와 두 언니 그리고 집에서 부엌일을 하는 나차, 집안일을 하는 첸차, 농장 일꾼들과 함께 산다.
어려서부터 부엌일을 좋아했던 티타는 나차로부터 음식에 관한 많은 이야기와 조리법 등을 배우며 성장하는데 10대 후반 무렵 마을 청년인 페드로와 운명적으로 만나 결혼을 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녀의 가문은 대대로 막내딸이 죽을 때까지 부모를 봉양해야 한다는 관습에 따라 결혼이 허락되지 않고 페드로는 이내 큰 언니인 로사우라와 결혼을 하게 된다.
결혼식을 올리면서도 티타에게 당신을 위해 결혼한 것이지 로사우라를 사랑하기에 결혼한 것이 아니라며 사랑의 맹세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티타와 페드로와의 끈적한 눈길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지 페드로 부부를 미국으로 보내고 만다. 이 와중 멕시코 내전으로 흉흉했던 당시 사정에 티타는 내. 외부의 충격으로 정신이 피폐해지고 그런 그녀를 마마 엘레나는 정신병원에 보내고자 한다.
정신병원으로 보내기 전 동네 의원의 의사이자 가문의 주치의였던 존에게 보내지고 존은 이미 티타를 흠모하고 있었기에 자신에 집에서 돌봐주고 이에 몸과 마음에 기력을 회복한 티타는 존과의 결혼을 약속하게 된다.
존은 티타와 결혼을 위해 미국에 거주하는 숙모를 모시러 가고 그러는 동안 마마 엘레나가 죽고 이내 페드로와 티타는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의 존과의 결혼은 무리라고 판단하여 존에게 파혼을 통보하고 이야기는 시간이 훌쩍 지나 39살의 티타가 드디어 결혼식을 올리는 장면으로 끝나는 데 결혼식 상대는 존이 아닌 페드로로 둘은 20년 전 사랑의 서약을 맺고 버터 오다 티타의 언니이자 페드로의 아내인 로사우라가 갑자기 죽어 그 존재가 없어지자 그들은 이내 결혼을 올리게 된 것으로 마무리된다.
스토리를 보면 평범하지는 않지만 소설이라는 허구적 설정에 감동을 받고 또 페미니즘 소설이라는 뒷배경을 가지고 있음에도 그리 충격적(?)이지 않은 플롯으로 이처럼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바로 이 시점에서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파악해 보아야 할 것이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멕시코 출신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
소설은 인간 중 여성이라는 존재에게서 식욕과 성욕이라는 원초적 본능에 대하여 다른 각도에서 살펴봄으로써 인간의 삶에 대하여 더 깊은 통찰을 하게 끔 해준다.
굳이 여성과 남성의 이분법적인 대립을 통해 페미니즘의 논쟁을 펼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같은 여성들끼리의 갈등을 가지고 여성 스스로가 자유로워질 수 있는 길에 대하여 논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독특한 서술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소설에서 남성과 여성의 대립은 찾아보기 힘들다.
굳이 언급하자면 멕시코 혁명군이 티타에 집에 몰려와 집안의 여자들을 겁탈하거나 음식을 훔쳐 가는 정도가 다이다.(물론 큰 범죄행위이지만 소설에서는 그리 큰 사건은 되지 못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잘못된 관습을 고집하는 마마 엘레나와 티타 그리고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배우자를 소유했다고 생각하는 전통적인(?) 남녀관을 고집하는 큰 언니 로사우라와 티타와의 대립이 이 소설의 플롯을 끌어주는 주된 사건이다.
그리고 그 갈등의 해결이 마마 엘레나나 로사우라와 티타 간에 극적인 화해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둘의 죽음으로 해결되는 모습은 여성 스스로를 올가 매는 관습에 대하여 망설임 없이 벗어던질 것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데 20세기 초 '자기만의 방'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주장한 여성에 대한 좀 더 많은 사회적 배려(남성 중심 사회)를 요구하는 것에 비하면 20세기 말 라우라 에스키벨은 여성 스스로 자신을 옥죄는 관습에 대하여 훌훌 털어낼 것을 요구한다.(백 년도 안 걸린 시간 동안 이루어낸 극적인 반전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부엌이라는 여성의 전통적인 공간에서만 자유로울 수 있었던 티타가 그 공간을 뛰어넘어 자신이 원하던 사랑과 삶을 이룬 것은 다름 아닌 부엌에서 모두의 삶을 지탱할 에너지와 음유할 수 있는 풍미를 제공하는 여성이 있기에 가능했다는 기본적인 설정 속에 성욕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쟁취하는 티타와 그녀의 작은 언니 헤르트루디스의 삶은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충족한 후 자아를 찾아가는 모습에 현대 여성이 지향해야 하는 진취적 삶을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였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욕구와 자아를 실현하는 삶.
여성들의 감수성으로 인류를 지탱하고 평화를 만들 수 있는 그 방식이 강압적이며 폭력적인 기존의 사회에 대한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다다르자 이 소설의 위대함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다.
멕시코 전통요리(출처: pixabay.com)
마지막으로 앞서 언급했던 '터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면 이렇다.
이 소설에서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 아닌 터진 사건 두 가지가 있다.
최음적 효과를 가지는 음식을 먹은 후에 여성에게 억압된 관념이기만 했던 성(性)이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먼저 언니인 헤르트루디스에게 뒤이어 티타에게도 있었다.
언니 헤르트루디스는 그 억압에서 벗어나 혁명군의 장군이 되는 사회적 성공을 그리고 티타는 페드로와의 사랑을 단순한 이승에서의 한때의 사랑이 아닌 영원불멸의 고귀한 사랑으로 승화하였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여성은 아직 '터지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 놓여있다고 할 수 있다.
성(性)과 식(食)은 기본적으로 여성에게서 따뜻해질 수 있다.
노자(老子)에서도 여성은 인간 생명의 근원 자체이다. 생명을 잉태하고 지지하여 우리 인간들의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원심을 제공해 준다.
여성이 이제 '터지기 일보 직전'의 삶에서 터져 버린 자유의 삶을 찾을 때 인간 생명이 고귀해지는 그 꿈과도 같은 세상이 열릴 수 있다는 메시지가 바로 'Como Agua Para Chocolate'인 것이다.
여성들이여 자신을 올가 매고 있는 그 무엇을 벗어던지고 진정으로 자유로워지자 그래야 터진 세상이 올 것이고 그것은 생명과 자유가 고귀해지는 인류의 실낙원 그곳일지어니다.
이것이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키치였다.
한 번쯤 새로운 페미니즘 아니 인간 삶의 진정한 자유와 가치가 무엇인지가 궁금하다면 한 번 읽어볼 가치가 충분한 책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