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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Oct 05. 2022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

작은 사랑을 큰 불빛으로 볼 수 있는 지혜

'박해받는 노동자의 해방'의 약자 박노해

그의 본명은 박기평이다.

그는 1957년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10대 후반 낮에는 거친 노동을 하고 밤에는 선린상고에서 공부를 했다. 그리고 섬유, 화학, 건설, 운동 노동자로 일을 했다.

그러던 중 1984년 '노동의 새벽'이라는 시집을 내는데 노동자가 쓴 최초의 노동 시집(詩集) 이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사실 당시 못 배우고 먹고살기 바빴던 저임금 비숙련 노동자들이 그의 시집에 열광하기엔 사회적 여건이 너무나도 열악한 시절이라 먼저 지식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입소문으로 100만 부가 넘게 팔려나가자 당시 전두환 정권은 그의 시집을 금서로 묶고 공산주의자로 낙인찍어 수배를 내리게 된다.

그 와중에도 얼굴 없는 노동 시인이 되어 그는 억압받는 노동자를 위하여 투쟁하였다.

그리고 7년여의 수배 도피와 투쟁으로 점철된 그의 젊은 날. 그 젊은 날의 끄트머리라 할 수 있는 1991년 당시 국정원인 안기부에 의하여 체포되어 재판을 받게 된다.

그의 죄는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 사건 관련자로  죄명은 비합법 사회주의 혁명조직 결성 및 활동인데 당시 우리는 그냥 편하게 그를 가르쳐 나라 망하게 만들 빨갱이들이라고 하면서 손찌검하면 되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검찰로부터 사형을 구형 받고도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이 죽어도 더 많은 박노해가 나타날 뿐이라는 그의 말은 마치 북한의 대변인이 자유민주 사회인 대한민국의 법정에서 버젓이 국가를 조롱한다는 보수언론의 지탄을 받았다.

그리하여 무기징역이 확정되고 시인은 7년 6개월을 복역하고 1998년 출소하게 된다.

1998년의 대통령은 한국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 대통령이었다.

그런 그가 박노해를 차가운 경주의 교도소에 가두어 둘리 만무했다.

그렇게 출소되고 국가에 의하여 다시금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어 국가보상금을 주겠다고 했으나 그는 단호히 거절하며 명언을 남긴다.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

그 이후의 행보는 그전의 노동운동가와는 조금 거리를 두며 평화운동가의 모습으로 각인되어 있다.

2000년 '사랑 평화 나눔'의 기치로 한 사회운동 단체인 <나눔문화>를 설립하고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중남미 등 가난과 분쟁으로 얼룩진 곳을 찾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평화의 시를 쓰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더 이상 노동운동자들의 목숨을 내건 피맺힌 절규와 투쟁은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해야 하나? 필요충분 요건을 이미 충족하여 수요가 없어졌다고 해야 하나?

이런 사회 속에서 투쟁가 박노해는 사랑과 평화의 전도사를 자처하며 험지를 다니고 있다.


오늘 소개할 시는 동명의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에 수록된 시(詩)로 그가 1998년 출소 후 10년을 넘게 세계 곳곳의 오지를 다니며 만든 시 5천여 편 중 304편을 가려 2010년에 출간한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차분히 감상해 보자.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 박노해


안데스산맥의 만년 설산

가장 높고 깊은 곳에 사는

께로족 마을을 찾아가는 길에


희박한 공기는 열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차고

발길에 떨어지는 돌들이 아찔한 벼랑을 구르며

태초의 정적을 깨뜨리는 칠흑 같은 밤의 고원


어둠이 이토록 무겁고 무서운 것이었던가

추위와 탈진으로 주저앉아 죽음의 공포가 엄습할 때


신기루인가

멀리 만년설 봉우리 사이로

희미한 불빛 하나


산 것이다


어둠 속에 길을 잃은 우리를 부르는

께로족 청년의 호롱불 하나


이렇게 어둠이 크고 깊은 설산의 발일지라도

빛은 저 작고 희미한 등불 하나로 충분했다


지금 세계가 칠흑처럼 어둡고

길 잃은 희망들이 숨이 죽어가도

단지 언뜻 비추는 불빛 하나만 살아 있다면

우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세계 속에는 어둠이 이해할 수 없는

빛이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거대한 악이 이해할 수 없는 선이

야만이 이해할 수 없는 희망이

깜박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그토록 강력하고 집요한 악의 정신이 지배해도

자기 영혼을 잃지 않고 희미한 등불로 서 있는 사람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

무력할지라도 끝끝내 꺾이지 않는 최후의 사람


최후의 한 사람은 최초의 한 사람이기에

희망은 단 사람이면 충분한 것이다


세계의 모든 어둠과 악이 총동원되었어도

결코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사람이 살아 있다면

저들은 총체적으로 실패하고 패배한 것이다


삶은 기적이다

인간은 신비이다

희망은 불멸이다


그대, 희미한 불빛만 살아 있다면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박노해 시집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 中 2010년 느린걸음


출처: pixabay.com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를 권한 이유를 좀 알겠습니까?

물론 과거에 어두운 현실에서 노동시를 쓰시던 분이라는 선입견으로 희망을 너무 작은 불빛 하나로 말한 것이 자칫 세상에 희망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힘든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죽을 듯이 힘든데 저기 나를 찾아 작은 등불 하나를 가지고 온 이가 서운하게 느껴지도 하다. 무언가 영화에서처럼 헬기도 뜨고 의료진이 부단하게 뛰어나와야만 내가 구조된 느낌이랄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자본가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것만큼(아니라고 해도 돈과 토지를 대고 아무것도 안 하고는 하루를 한 달을 일 년을 아니 평생을 거친 노동을 하는 자들보다 더 많이 가져갑니다)이나 선(善)보다는 악(惡)이 잘 통용되는 것이 진리인 것 같다 마음이 쓰리기까지 하다.


이 시도 그렇게 선입견으로 무거운 마음으로 읽으면 자칫 세상을 염세적으로 보지 않을까 싶어 그런 말을 한 것이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읽으면 아무리 힘든 세상일지라도 또 보잘것없는 이 일지라도 그는 그 험한 안데스산맥의 밤거리를 헤매지 않고 따뜻한 집으로 안내할 사람이며 그로 하여 나를 죽음의 공포로부터 구할 단 한 사람인 것이다.

마치 예수가 우리 모두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예수가 내 옆에 없다고 하더라도 그의 마음은 늘 내 곁에 있으니 세상이 어둡고 추울지라도 나에게 그 하나의 등불이 있으니 내가 사라질 또 그대가 사라질 이유 같은 것은 없는 것이다.


꼭 무언가 어떤 대상을 또는 물질적인 것을 소유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마음만 있어도 세상은 살아갈 가치를 충분히 내재하고 있다는 박노해 시인의 시 '그러니 그대 사라지지 말아라'를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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