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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Oct 27. 2022

상처가 더 꽃이다- 유안진

유안진 시인은 1941년 경상북도 안동에서 태어났다.

중고등학교는 대전에서 다녔고 대학은 서울대학교를 나왔다.

1965년 박목월 시인의 추천으로 '현대문학'지에 '달'이 추천되어 등단을 하였고 1970년 첫 시집 '달하'를 출판하였다.

1976년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1981년 서울대학교 아동가족학과 교수가 되었다.

문학을 전공한 전업작가는 아니지만 많은 시집과 두 권의 에세이집 그리고 두 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하였으며 그 외 아동가정과 교수답게 전공 관련 서적도 여러 권 집필하였다.


오늘은 중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된 유안진 시인의 대표작 '상처가 더 꽃이다'를 감상해 보겠다.

어렵지 않게 술술 익히는 서정시이기에 천천히 음미하며 감상해 보자.



상처가 더 꽃이다


- 유안진


어린 매화나무는 꽃 피느라 한창이고

사백 년 고목은 꽃 지느라 한창인데

구경꾼들 고목에 더 몰려섰다

둥치도 가지도 꺾이고 구부러지고 휘어졌다

갈라지고 뒤틀리고 터지고 또 튀어나왔다

진물은 얼마나 오래 고여 흐르다가 말라붙었는지

주먹만큼 굵다란 혹이며 패인 구멍들이 험상궂다

거무죽죽한 혹도 구멍도 모양 굵기 깊이 빛깔이 다 다르다

새 진물이 번지는가 개미들 바삐 오르내려도

의연하고 의젓하다

사군자 중 으뜸답다

꽃구경이 아니라 상처 구경이다

상처 싶은 이들에게 훈장(勳章)으로 보이는가

상처 도지는 이들에게는 부적(符籍)으로 보이는가

백 년 못 된 사람이 매화 사백 년의 상처를 헤아리랴마는

감탄하고 쓸어 보고 어루만지기도 한다

만졌던 손에서 향기까지 맡아 본다

진동하겠지 상처의 향기

상처야말로 더 꽃인 것을.


유안진 시집 '알고(考)' 中 2009년


쉬운 언어로 상처받는 이에게 큰 위로를 주는 시(詩)이다.

사실이 그렇다.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사람의 삶일지언정 상처 없는 삶이 있을 수 있겠는가?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삶은 세상에 던져진 것'이라고 그리고 인간의 삶은 죽음이라는 그 끝이 있기에 불안의 감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간이 몇 이 되겠는가? 남부럽지 않은 사람조차 언젠가 그것을 다 두고 시커먼 암흑과도 같은 죽음 후의 그 무엇을 상상하는 것 자체가 무의식의 중심에 큰 상처로 남을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의 삶은 상처의 연속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상처가 있어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만에 하나 상처 없이 사는 삶이 있다고 해도 그렇게 사는 삶은 필연적으로 권태의 감정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말했듯이 인간의 삶은 불안과 부조리라는 고통 속에 상처받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안 살 수도 없는 것 아닌가?

요즘 말로 태어났으니 살아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쯤 되면 그 인간의 삶 그 자체를 사랑하라고 말했던 니체의 잠언들이 마구 떠오른다.

삶의 필연적 고통들을 알고 그 고통들까지 긍정하라고 말한 긍정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

어린 매화의 꽃보다 꽃이 지는 사백 년 고목이 더 아름다운 건 그 상처의 서사를 고스란히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삶도 똑같다. 삶의 생채기는 우리가 인간이기에 필연적으로 일어나며 그것을 긍정하고 아름다운 개인의 서사로 간직하며 사는 모습 그것이 니체가 말했던 '초인'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니체가 남긴 명언 하나를 쓰며 글을 마무리한다.


Amor fati(아모르파티)-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유안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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