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가적일상추구 Oct 24. 2022

삼남에 내리는 눈- 황동규

황동규 시인은 '소나기'로 유명한 작가 황순원 선생의 장남으로 1938년 4월 평안남도 숙천에서 태어났다.

1946년 월남을 하게 되는데 본인에게는 가히 재미있는 일은 아니지만 우리에게는 요즘 말로 웃픈일화가 있다고 하는데 그 어린 나이의 경험이지만 팔순이 넘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나는 일이라고 한다.

그의 가족들을 태운 소달구지가 삼팔선에 도달하여 막 남녘으로 넘어갈 무렵 소련군이 세우길래 가족들은 잔뜩 긴장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소련군은 자기들이 축구 시합을 하는데 인원이 모자라니 일행 중 젊은 남자 몇은 축구시합의 인원수 좀 채워달라는 황당한 제의를 했다고 한다.

하는 수없이 축구 경기를 다 치르고 나서 가던 길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당하는 절박한 심정의 사람들이야 식은땀이 절로 나는 상황이지만 지금에 와서 그 이야기를 듣는 심정은 슬프지만 어쩐지 짠한 실소가 나오는 상황에 어이가 없어진다.


그렇게 월남하여 6.25를 겪고 서울대 문리대에 입학하여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지금까지 살아오셨다고 한다. 당시 대학에 입학하여 전공을 정하던 때라 작가의 삶의 애달픔을 알고 있던 아버지 황순원 작가와 어머니는 내심 의대나 법대로 진학하기를 바랐으나 문학의 길만이 후회 없는 삶이 될 거라는 확신으로 지금까지도 3년 주기로 시집을 펴내고 계시다.


오늘 소개할 시는 '삼남에 내리는 눈'이다. 사실 우리가 황동규 시인하면 떠올리는 시는 '즐거운 편지'이다.

그가 고등학교 재학 시절 짝사랑하는 연상의 여고생을 흠모하며 지은 시 치고는 속된 말로 4차원에 속하는 정신세계의 서정시이다. 그 대상이었던 연상의 여인조차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했던 그 시(詩)만을 기억하는 이라면 이건 모지 싶을 정도로 대학 졸업 후 본격적인 문인 생활로 접어든 후 사회성 깊은 시(詩)를 많이 창작하고 계신 시인의 작품이다. 

한 번 감상해 보자.


삼남에 내리는 눈


- 황동규


봉준(琫準)이 가 운다, 무식하게 무식하게

일자 무식하게, 아 한문만 알았던들

부드럽게 우는 법만 알았던들

왕 뒤에 큰 왕이 있고

큰 왕의 채찍

마패 없이 거듭 국경을 넘는

저 보마(步馬)의 겨울 안개 아래

부챗살로 갈라지는 땅들

포(砲)들이 얼굴 망가진 아이들처럼 울어

찬 눈에 홀로 볼 비빌 것을 알았던들

계룡산에 들어 조용히 밭에 목매었으련만

목매었으련만, 대국낫도 왜낫도 잘 들었으련만,

눈이 내린다, 우리가 무심히 건너는 돌다리에

형제의 아버지가 남몰래 앓는 초가 그늘에

귀 기울여 보아라, 눈이 내린다, 무심히,

갑갑하게 내려앉은 하늘 아래

무식하게 무식하게.


황동규 시선집 '삼남에 내리는 눈' 中 1975년



황동규 시인

앞서 말한 대로 '즐거운 편지'의 익살스러움은 온데간데없고 봉준이가 우는데 무식하게 운다고 우리의 아픈 역사 이야기를 꺼내고 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는 구한말이라고 칭하는 시기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못 이겨 일어난 동학농민운동의 최후를 그리고 있는 시이다.

한문조차 깨우치지 못했던 전봉준. 부드럽게 우는 법만이라도 알았다면 그렇게 목놓아 아이처럼 울지 않았을 텐데 무식하게 울다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녹두장군 전봉준.

사실 못 살겠다고 봉기해서 일본 세력을 쫓아 주었으면 하는 대한제국의 은밀한 사주도 있었기에 억울하기 그지없는 죽음이었다.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만 되었도 그렇게 처절하게 싸우다 모질게 생을 마감할 이유가 있었을까?


특히, 동학농민운동 마지막 전투인 우금치전투를 생각해 보면 그야말로 삼남에 내리는 눈이 더 아리게 느껴질 것이다.

동학농민운동을 진압한다는 이유로 대한제국은 청(淸) 나라에 파병을 요청하고 이에 톈진조약에 의거하여 자동으로 일본 군대도 조선으로 파병된다.

동학농민운동은 전라도와 충청도 그리고 경상도 일부 지역까지 널리 그 세력을 넓히게 되고 마지막 전투는 일본군 1개 대대 200여 명과 조선 관군 2,500여 명과 이에 반해 농민군은 1만여 명이 넘었다.

그 1만여 명도 나름 최정예였다. 나이가 많거나 너무 어리거나 또는 낫이나 몽둥이 등 변변한 무장이 없을 시 타일러 돌려보냈다고 한다.

사기충천인 농민군과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 200여 명의 싸움이 충청도 공주 우금치에서 시작되었다. 그야말로 일방적인 살육의 장(場)으로 세계 전쟁사에 기록된 어이없는 전투였다.

일본군에 개틀링 자동 기관총에 창과 농기구로 무장한 농민이 당해낼 재간이 있겠는가?

200대 1만의 싸움은 두 번의 전투로 한 달 만에 막을 내리고 전봉준은 부하의 밀고로 체포되어 일본군에게 인도되어 교수형에 처해진다.

시(詩)에도 계룡산에서 조용히 목매 달 팔자도 못된 그의 죽음에 아니 그 많은 무수히 많은 죄 없는 농민의 피를 무엇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 역사의 아픈 상처를 비장미 넘치는 글로 되돌아보게 되는 황동규 시인의 '삼남에 내리는 눈'을 아린 마음으로 감상해 보았다.

체포되는 녹두장군 전봉준 '삼남에 내리는 눈'을 읽고 보니 가슴이 아린다.


매거진의 이전글 즐거운 편지- 황동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