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추운 겨울날 종로의 포장마차에 세 남자가 함께 술을 마시기로 한다.
한 명은 주인공 화자로 육군사관학교 시험에 낙방을 하고 군대를 다녀와 구청에 근무 중인 공무원이고, 한 명은 대학원에 재학 중인 부유한 집 자제이다. 그리고 필시 가난해 보이는 남자인데 옷은 나름 차려입은 삼십 대 중반의 남자 해서 이들 세명은 그 추운 날 어디서 먹고 마시며 또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내게 될까?
그 이야기가 '서울, 1964년 겨울'이다.
일단 27페이지 가량의 짧은 단편소설의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1964년 겨울 어느 날 서울시내 허름한 포장마차에 나란히 앉은 두 명의 20대 젊은이가 이야기를 시작한다. 간단한 통성명이 끝나고 화자는 대학원생 안에게 파리가 좋으냐고 묻는다. 자신은 날수 있는 것 중에 손에 잡히는 것이 파리이기에 파리를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안은 나에게 묻는다. 꿈틀거리는 것을 좋아하냐고? 자신은 서울의 만원 버스 안에서 낯선 여자에게 몸을 비비는 것이 좋아 자주 아무 이유 없이 출근길 버스를 타곤 했는데 그때 자리에 앉아 있는 아가씨들의 배가 숨 쉴 때마다 나왔다 들어갔다 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것이 꿈틀거리는 것이라면 좋아한다고 답을 한다. 이렇게 시답지 않은 대화를 하다 둘은 장소를 옮겨 정식으로 술을 먹기로 하는데 갑자기 삼십 대 중반의 남자가 자기가 술을 살 테니 그 자리에 자신을 껴달라고 부탁한다.
내키지는 않지만 함께 하기로 한 이들. 어느 중국집 방에 자리를 잡고 다시금 술판을 벌인다.
이때 이 남자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그는 아내와 행복하게 살고 있던 책방문 판매원인데, 그날 급성 뇌막염에 걸렸던 아내가 연세세브란스 병원에서 죽고 처가 쪽 가족을 전혀 몰랐던 그는 사는 형편도 형편인지라 병원에 아내의 시체를 4,000원에 팔고 나오는 중이라고 했다.(소설을 읽어보면 그 돈을 쓰는 과정에서 이돈을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한 50만 원 조금 안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오늘 그 돈을 모두 쓸 참이니 밤새 함께 있어 달라고 한다.
5.16군사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선 지 3년여의 시간이 흐른 즈음 당시에는 통금시간이 이었기에 사실 마땅히 할 수 있는 것도 여유치 않았던 때이므로 여기를 갈까 저기를 갈까 하다. 중국집을 나와서 스무 발자국을 못 벗어나고 있었을 때 소방차 두 대가 다급히 지나가고 30대 중반의 사내는 택시를 급히 잡곤 소방차를 따라가라 가자고 한다.
정말 남의 집 불구경 하듯 타인의 불행은 아랑곳하지 않고 화자는 불이 더 활활 타기를 원하며 앉아서 불구경을 한다. 그때 남자가 남은 돈을 손수건에 싸서 불구덩이로 던져 버린다.
이때 안이 말한다. 이제 약속대로 가지고 있던 돈을 다 썼으니 자신은 가겠다고, 그러자 남자는 오늘 밤 혼자 있는 것이 무섭다며 함께 있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
하는 수없이 함께 여관에 들어간 셋. 남자는 함께 방에 있어줄 것을 원하지만 안이 거절하며 서로 다른 방에서 각기 나란히 누워 참을 청한다.
다음날 아침 안이 나에게 찾아와 그 남자가 자살을 했다고 하며 자신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낌새는 미처 느끼지 못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안은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경찰이 오면 귀찮게 조사를 받아야 하니 서둘러 여기를 벗어날 것을 제안하고 둘은 각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 귀갓길에 버스에 탄 내가 싸리 눈이 내리는 거리에 서서 눈을 맞으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안을 바라보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된다.
요즘 말로 하면 정말 유니크한 소설 내용이다.
이 줄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우선 당시의 시대상을 좀 알아야 할 것 같은데 1964년도 하면 말할 것도 없이 군사정권의 초창기로 말 그대로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다.
1945년 일제 강점기를 벗어나 민주 공화제 국가에 대한 열의가 그 어떤 식민지 국가의 국민보다 높았던 조선 땅의 사람들. 하지만 민주 공화제에도 서로 대립적인 두 체제가 있었느니 바로 자본주의 민주 자유 공화국과 그에 대한 반(反)으로 자본가의 세상이 아닌 노동자의 세상을 만들겠다는 공산주의 민주공화국이었다. 두 국가의 선봉인 미국과 소련의 연합군이 일본에 항복을 받아 이루어진 광복인지라 우리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으므로 북은 소련, 남은 미국에 의하여 신탁통치를 하다 각각 독립했으나 이내 1953년 6월 25일 한반도에 내전이 발생한다.
그 전쟁은 어느 누가 이겼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전쟁 전과 비슷한 영토로 나뉘어 분단은 고착화되고 극단적인 좌. 우 대립 속에서 원하던 민주화는 점점 멀어져 가니 민중은 봉기하였고 마침내 1960년 4.19혁명이 일어났다.
당시 지식인들뿐만이 아니라 많은 민중들의 기대는 높아만 갔다.
하지만 1961년 5월 16일 박정희를 비롯한 군인들이 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잡았다.
이제 민주화는 다시 원점 아니 어쩌면 더 멀리 뒤로 가고 만 것이 당시의 시대상이다.
이런 시대 추운 겨울날 선술집에 세 남자가 만나게 되니 그들은 각기 세 계층을 상징하는 사람들이었다.
먼저 대학원생 '안'- 그는 경제적으로 대학 가기도 벅찬 시대 무려 대학원생 이었다. 소설 속 화자는 그가 무엇을 공부하는지조차 이해할 수 없다고 할 정도이다. 안 그자신도 자신이 부잣집 아들로 많이 배운 사람으로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당시로는 최상위 계층이지만 아직 직장이나 직업이 불분명한 사람으로 구체적으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 아닌 지식인 소시민 계층이다.
화자(話子)인 '나'- 육군사관학교 진학에는 실패했으나 고졸 학력에 군대를 마치고 구청에 근무 중인 평범한 시민.
삼십 대 중반의 '사내'- 자신의 아내의 장례를 치를 여력이 없는 것으로 보아 중산층보다는 하층에 가까운 시민으로 보임.
이렇게 함께 하게 된 그들은 각기 다른 계층이나 따지고 보면 모두 시민계급에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러면 그 당시의 암울한 현실을 작가는 어떻게 표현했을까?
개인적으로 소설 도입부에 나와 안의 대화에서 유추할 수 있다.
이십 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먼 과거든 현재이든 무언가 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세대이다.
그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인 심리적 현상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런데 그들은 이야기한다 날아다닐 수 있는 것(이것은 이상을 뜻함) 중 잡을 수 있는 것은 파리(암울한 현실) 뿐이라고 그렇다. 썩을 대로 썩은 시대적 현실 앞에 젊은이들이 품을 수 있는 이상은 그 암울한 현실 속에 부여잡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비민주적인 정권에서의 권력이나 썩은 돈이 전부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좀 더 먼 미래의 희망이라도 품으면 되지 않겠는가?
김승옥 작가는 또다시 뜬금없는 대화로 이끌며 희망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그럼 김형은 꿈틀거리는 것을 좋아합니까?' 여기서 꿈틀거리는 것은 작금의 현실을 타파할 수 있는 혁명의 전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 여자의 숨 쉼으로 인한 움직움을 꿈틀거림으로 여기며 그것이 그 꿈틀거림이라면 자신은 그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자궁 속에 잉태되어 있을 다음 세대를 통해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말은 작금의 그들의 현실에서는 아무런 희망이 없음을 이야기한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소름 돋는 이야기이다. 이 땅의 민주화를 386세대 즉, 60년대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니고 90년대 30대로 민주화를 이끌었다는 평가에 대하여 사회적으로 인정하니 김승옥 작가의 선견지명이 대단하긴 하다.
이렇게 현실의 이상도 미래의 희망도 없는 사회가 1964년 겨울이었다.
그러면서 마지막 부분에 작가가 비판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지식인들의 소시민적 성향이다.
주인공 화자야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이 하루하루 힘들게 삶에 치여 살아 자살하는 사람의 전조조차 느낄 여유가 없었으나, 지식인인 '안'은 잘 알고 있었다 한다. 무엇이 잘못되었고 무엇을 바로잡아야 하는지 말이다.
알면서도 외면하고 벌어진 일에는 책임을 면하려 도망가는 모습의 '안' 그가 바로 당시의 지식인들의 소시민적 태도의 정형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런 그도 싸리 눈 내리는 길거리에 눈을 맞으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에서 지식인들에게 각성을 요구하는 작가 김승옥의 용기 어린 면모를 느낄 수 있다.
암울했던 우리 시대의 이야기를 유니크 하지만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묘사했던 김승옥 작가의 '서울, 1964년 겨울'에 대하여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