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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Nov 18. 2022

노인과 바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이 허무함은 모지?

젊은 시절 전문적인 흑인운동선수와 내기 팔씨름을 해서 꼬박 하루를 걸려 이긴 승부사가 있었다.

그의 본 직업은 어부. 하지만 이제 나이가 들어 작은 배에서 홀로 고기잡이를 하고 있는 백발의 홀아비 노인일 뿐이다. 그는 늙어서 인지 운이 없어서 인지 84일째 고기를 잡지 못하고 있다. 그런 그가 홀로 85일째 되는 날 월척의 희망을 안고 바다로 노를 저어 나아간다.

위와 같이 시작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중편소설 '노인과 바다'의 내용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굳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도 그 허무한 결말은 어떻게든 알게 되는 것이 우리의 교육 환경에서 인지상정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진부하기 그지 않는 내용이 되어버렸다.


1952년도 발표되어 195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데 가장 많은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는 '노인과 바다' . 사실 무언가 엄청난 것을(작품의 명성을 보면 누구나 큰 기대감에 책장을 열 것이다) 바라고 읽으면 과연이게 모지 싶을 정도로 허무하기까지 한 내용의 소설.(소설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노인과 바다'하면 무언가 불굴의 이미지가 있는데 반해 막상 읽어보면 허무의 세계관이 스멀스멀 다가와 종국엔 그것이 대미를 장식한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쿠바 아바나에 관광을 온 미국인들이 상어떼로 인해 다 찢긴 거대한 청새치의 꼬리와 뼈를 보고는 저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그들의 가이드는 '티브론'이라는 상어의 일종이라고 하자 관광객들은 상어의 꼬리가 이렇게 크고 아름다운 줄 몰랐다는 부분에서는 진정으로 삶은 그 각자의 의미대로 산란하는 현상들의 폭주의 장(場) 인가 싶을 정도다. 그만큼 허무주의적 요소가 작품 전체를 휘감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인공 노인(老人) 조차 자신의 배의 조업 능력을 초과하는 청새치임을 알면서도 굳이 잡아 수많은 상어떼에게 몸이 갈기갈기 찢기는 사후 모욕을 당하게 하는 부분에 죄책감을 느끼며 몇 마리를 죽인지도 모르는 상어들의 죽음에 점점 무감각해지는 모습에 무력감마저 느낀다.

확실히 이 소설은 노인이 거대한 바다의 표면에서 자신보다 큰 존재들과 싸우는 모습에서 인간의 고결한 의지를 찬양했다고 하기엔 허무의 감정 이입이 과하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개인적으로 이 소설의 백미는 1961년 총기 사고인지 자살인지 아직도 의견이 분분한 그가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발표한 소설로 그의 마초적인 이미지와는 다르게 죽음에 대한 그의 깊은 성찰.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그 감정을 공포나 불안의 감정으로 이야기하는데 그런 그의 통찰이 말년의 농이 익어 그의 문학적 특징인 간결한 문체를 단순한 소설적 상황 속에서 멋들어지게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노인이 사흘을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가득이나 나이 들어 성하지 않은 몸으로 말 그대로 사투를 벌여가며 거대한 청새치와의 전투를 벌일 때나 힘에 부쳐 의식이 희미해져 위기를 느낄 때마다 하나님에게 온 갖 축복을 비는 모습에서 늘 상 그랬듯이 형이상학에 의지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나약함을 느꼈다.


또한 분명히 오래된 경험으로 그 청새치를 잡을 수는 있어도 배에 실어 나를 수 없기에 또다시 상어떼와의 2차대전을 인지했음에도 85일째 날 보란 듯이 대어를 낚어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에 오히려 어구(漁具)를 잃고 손의 살점마저 날아가는 고통을 감수하는 모습에 인간의 보편적 우매함을 통찰하는 헤밍웨이를 볼 수 있었다.


마을로 돌아왔을 때 마을 사람들의 그 사투에 대한 인정과 관광객의 무심함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인을 아끼는 소년의 진심 어린 걱정과 눈물에 결국 실재할 수 없는 관념적 이상(理想) 추구나 너무나 뻔한 결말의 욕망에 충실한 본능적 삶보다는 그저 인간이라는 사회적 동물의 삶 그 자체에 충실하여 인정과 사랑을 구할 수 있는 곳에서 적당한 자족을 느끼며 사는 것이 태어나 죽음을 전제로 하는 연약한 인간의 삶에 가장 큰 기둥이자 구원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하는 것으로 정리된다.


간결한 문체 그리고 단순한 플롯으로 인간의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을 얻으며 살수 있는가 하는 거대한 물음에 프리드리히 니체의 역설처럼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며 열정적으로 삶을 살아내는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삶 이외엔 딱히 답이 없다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논술 답안지를 보는 기분으로 읽은 '노인과 바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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