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아가기가 힘든 건 무엇이든 소유할 수 없는 세상에서 가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체만 봐도 그저 자연에서의 우연의 산물 그 자체뿐이라고 합니다.
저 들판의 쌀과 목장의 젖소의 우유는 누구의 것일까요?
쌀? 젖소? 아님 토지 소유주? 임차 농부? 목장주? 계약재배의 구매 계약자? 등등등
소유의 개념으로 세상을 보면 누구누구의 것이라는 아주 편협한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밖에 없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것을 먹고 나의 몸을 구성하니 그럼 그 후에 소화된 작은 분자 상태의 소위 말하는 영양분과 유기물들은 진정으로 나의 것일까요?
네 그냥 단순히 생각해도 누구의 것이라고 할 것도 없이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는 그저 우연의 산물일 뿐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몸이었다가 밖으로 분리되어 다른 어떤 존재의 구성물이 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우리의 상식으로 그것의 것들이지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윤회(輪廻)라고 합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모든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한다고 합니다.
또 이렇게 돌고 도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에 고정된 실체가 없이 만물이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세상이라고 합니다.
우주 만물의 돌아가는 원리 즉 도(道)가 이러한 진 데 우리는 어리석게도 나의 것이라고 말하기 위해 아등바등 힘겨워하며 하루하루 불나방처럼 인간세(人間世)를 헤매고 있습니다.
세상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므로 제법무아(諸法無我) 즉 나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는데도 우리는 굳이 힘겹게 나(我)라는 실체를 추구하고 가지려 하니 일체개고(一切皆苦) 삶 자체가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을 가지려 하면 안 됩니다.
무엇을 이루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아름답지만 무엇을 해서 그것을 가지겠다는 것은 인간세(人間世) 속에서 남들보다 더 높이 날고자 하는 욕망으로 우리의 목을 점점 더 옳다 매는 멍에일 뿐입니다.
가지려 하지 않는 마음 그것이 부처님이 주시는 최고의 가르침입니다.
놓아주고 그저 이용하며 스쳐가는 인연 자체만을 소중히 하는 그런 마음이 우리의 삶을 가볍고도 즐겁게 해 줄 것입니다.
삼법인(三法印)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