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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Jan 06. 2021

장자(莊子)- 6편 대종사(大宗師)

죽음에 대하여

장자 내편 여섯 번째는 대종사(大宗師)이다.

큰 스승이라는 뜻으로 풀이되는데 이편에서 거론되는 이상적인 인격인 진인(眞人)이 대종사가 아닐까 한다.

장자 대종사 편에서는 진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나오는데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다.    

      


진인眞人(참된 사람)이 있고 나서 진지眞知(참된 지식)가 있다. 진인이란 어떤 존재인가? 옛날의 진인은 시시한 것이라도 거절하지 않았고, 자기가 이룩한 것을 뽐내지 않았으며, 아무 일도 꾀하지 않았다. 그와 같은 사람은 후회하지 않고, 잘함에 자만하지 않는다. 그와 같은 사람은 높은 곳에 올라가도 두려워 떨지 않고, 물속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속에 들어가도 뜨거워하지 않는다. 지혜가 도道에 정통한 자만이 이와 같은 것이다.


장자- 대종사 中


한마디로 참된 앓을 바탕으로 어딜 가든 두려워하지 않고 물들지 않는 도에 정통한 사람이 진인이며 대종사인 것이다.

1장에서 진인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고 나머지는 삶과 죽음 특히, 죽음에 대하여 많은 이야기 한다.

어떤 실의나 욕망에도 얼굴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자연합일의 도를 실천하는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그 진인은 죽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로 인간의 가장 큰 공포인 죽음에 대해 초연히 대처하는 모습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다소 당황스럽긴 하다. 진인 이야기를 하다 뜬금없이 죽음에 대한 도가들의 대처 방식이 나오는데 그것도 춤추고 노래 부르며 죽은 이를 축하해 주니 말이다) 


먼저 장자가 삶과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대해 아래와 같이 표현하고 있는데 대종사 편에서 두 번 언급을 한 것으로 보아 장자가 매우 중요하게 여긴 부분이라 생각된다.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대지는 나에게 몸을 주고, 삶으로써 나를 수고롭게 하고, 늙음으로써 나를 편안하게 하고, 죽음으로써 나를 쉬게 한다. 그러므로 나의 삶에 대해 좋다고 여긴다면 같은 이유로 나의 죽음도 좋게 생각해야 한다.


장자- 대종사 中



사실 위에 대한 내용으로 삶과 죽음을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나?

삶이 수고스럽고 죽음이 쉬게 한다는 명제를 우리 인류가 받아들였는가?

일찍이 인간은 이 짧은 장자 말대로 수고스러운 삶에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내세에 집착하며 살아왔다.

그것에 도끼질을 가한 니체조차 내세라는 가정이 없는 인간의 삶은 허무함만이 남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 무슨 허무한 고백인가?

개인적으로 생각하면 사실 장자의 죽음론이 솔직히 와 닿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것을 받아들인 진인들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였나에 대하여 장자는 여러 가지 우화들을 통해 이렇게 이야기한다.

자사, 자여, 자리, 자래, 자상호, 맹자반, 자금장, 맹손재 이런 사람들이 장자가 대종사 편에서 예를 든 진인들로 이들은 죽음을 고통스러운 삶의 종말로 보지 않고 새로운 출발의 축제로 여겨 노래를 부르며 죽은 자를 축하해 주었다고 한다.


하긴 장자 자신의 이야기도 지락 편에 등장하는데 장자의 아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방문한 혜초가 본 것은 슬피 우는 장자가 아니라 두 다리 쭉 뻗고 항아리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며 아내의 죽음을 축하해 주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특히, 주목할 점은 이런 식으로 죽음을 대처하는 도가의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공자의 모습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아낀 제자 안회와의 대화를 통해 나타나는데 더 나은 현세의 삶을 군자의 수신(修身)으로 바로잡고자 했던 공자에게 죽음은 그저 각자의 안타까운 삶의 종착역일 뿐이었기에 죽음을 축하할 수 없었고 단지 사랑하는 이들의 죽음에 대하여는 의연하게 대처할 것을 이야기했는데 정작 사랑하는 제자 안회가 죽었을 때 목놓아 대성통곡을 했다고 논어에 기록되어 있다.

죽음에 대해 의연하지 못했던 공자를 비꼬는 투로 이 대종사 편에서 이야기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아울러 장자는 공자의 입을 빌려 도가는 자연 속에 살지만 유가는 인간 사회 안에만 머물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토로를 통해 은근히 자신들의 사상적 우월함도 뽐내고 있다.


장자 내편 6편을 통해 삶과 죽음이라는 인간사의 절대적 문제에 대해 세상 그 누구보다 의연하게 대처했던 장자의 생각을 읽어보았는데 많은 현인(賢人)들은 늘 죽음이라는 종착을 생각하고 살아야 하루를 삶의 마지막 날처럼 열정을 다해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죽음에 대하여 끝, 종말, 사라짐이라는 부정적 의미보다 새로운 시작이라는 장자 대종사 편의 지혜로 조금은 더 홀가분한 마음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우리 삶의 마지막인 것처럼 열정을 다해 후회 없이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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