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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나나 Sep 03. 2020

마음 연고

혼자서도 잘 바를 수 있어요



얼마 전 아침에 토스트를 먹기 위해 재료 손질을 하던 날이었다.


토마토의 꼭지를 떼어내려고 칼로 슥- 하는 순간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그만 엄지손가락을 베어버렸다. 처음에는 상처가 없는 듯 보였으나 조금 지나 상처가 벌어지며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살짝 베인 거라 크게 아프진 않았지만 씻을 때 가장 큰 고통(?)이 잇따랐다.


잊고 있다가 어느 날 아침 양치를 하면서 문득 상처 생각이 났다. '어, 이제 안 아프네?'  아직 자국이 남아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아픔은 사라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자국이 남아있는 걸 보며 '연고를 바를걸 그랬나...'  생각하며 상처를 되새겼다.


그러다 얼마 전과 다르게 내 마음도 한층 잠잠해진 것을 느꼈다.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 사람에게 상처 받은 마음은 이제 희미해져 갔다. 이 마음을 들여다보며 시간이 흐르면 마음의 상처도 아문다고 하는데, 좀 덜 아프게 아물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거란 결론에 다다랐다. 요 며칠의 행적을 뒤돌아보며 내가 발견한 마음의 연고를 몇 가지로 정리해 봤다.


"일단, 잠 좀 자고 시작하자."

마음이 힘들 때면 어김없이 몸도 슬퍼한다.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고 눈은 자꾸만 감긴다. 눈을 감으면 상처의 원인이 생각나지만 뭘 할 수 있는 여력은 없다. 그래서 일단 당장에 내 몸이 원하는 숙면에 취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며칠이 흐르면 생각이 조금씩 맑아지는 것 같다.


"생전 읽지도 않던 책을 펼쳐 들었다."

처음에는 눈에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며칠 잠이라는 약을 바르고 나니 마음에 집중할 수 있었다. 지금 내 마음이 왜 힘든 걸까. 어떤 갈증이 있는 걸까. 그 갈증에 대해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까. 인생에 답이란 없지만 해답은 있다고 하지 않던가. 답을 못 찾는다면 해답이라도 들춰봐야 했다. 그래서 갈증의 근원지가 되는 주제의 책들을 모조리 읽어치웠다.


"운동하자."

올해 봄부터 시작했던 운동을 여름 장마를 핑계 삼아 2주 정도 쉬었다. 마침 그 기간 동안 운동도 집어치우고 싶었다. 그래서 억지로 내 몸을 일으키지 않았다. 잠도 좀 자고 책을 읽으며 머리도 식혔더니 이제 운동할 마음이 생겼다. 마침 날도 조금씩 선선해지고 있었다. 아주 나이스 한 타이밍이다. 그래서 걸었다. 그러다가 집에 있던 자전거에게 안장 쿠션이라던가 라이트를 선물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바퀴를 빵빵하게 채워주며 공원으로 향했다. 바람을 가르며 신나는 BGM을 들으니 그렇게 기분 좋을 수 없었다.


"놀이터는 역시나 즐겁다."

태풍이 오던 날, 남부지방은 태풍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수도권은 비교적 평화로웠다. 바람은 많이 불었지만 습하지도 않고 비도 오지 않았다. 아침을 먹고 동네 산책을 나가는데 가는 길에 걸려든 것이 놀이터다. 거센 바람에 놀이터를 가면 모래가 양 볼을 후려칠 것 같았는데, 슬쩍 염탐해보니 바닥이 모래가 아니었다. 세상 좋아졌다. 아무도 없다. 이제는 쭈구리 듯 앉아야 하는 그네를 오랜만에 탔더니 너무 즐거웠다. 오랜만에 들린 별거 아닌 일상에서 즐거움이 찾아오니 마음이 부자가 된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자주 와서 마음 환기를 시켜야겠다는 다짐을 해버렸다.


누군가로 인해 또는 어떤 상황으로 인해 상처 받는 일은 피할 수 없다. 피하려 하다가도 방심하는 틈에 어느샌가 상처가 생겨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실 이럴 때마다 그 상처를 아물어야 하는 쪽은 어쩔 수 없는 내쪽이다. 그 상황에 좌절하고 한탄하기보단 셀프로 처방할 수 있는 연고로 좀 더 수월하게, 그리고 자국이 덜 남게 시간에 맡길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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