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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나나 Jul 25. 2019

밥값보다 많이 드는 작업실 월세

밥값 안 들어 기뻐했는데, 더 많은 지출이 생겨버렸다.



   여러 직장을 다녔지만 제가 마지막으로 다닌 직장은 '식비 미지급'인 곳이었습니다. 영업직이라 기본급이 거의 최저시급에 맞춰져 있던 곳인지라 식비는 셀프로 충당해야 하는 신세였죠. 건물에 4500원짜리 저렴한 구내식당이 있었지만, 저희 팀은 항상 7000원 이상인 밥집을 갔었죠. 다른 분들은 돈을 꽤나 버시는 분들이었으니까요. 어느 날은 8000원, 어느 날은 조금 더 드는 날도 있었어요. 그렇게 한 달을 꼬박 사 먹고 나면 카드 명세서엔 점심 값으로만 15만 원이 긁혀있었죠. 적지 않은 돈이었어요.


   퇴사하며 제일 큰 지출이었던 식비가 들어가지 않아 생활비를 줄일 수 있어 기쁜 마음으로 지낸 것도 잠시. 도저히 집안에서는 일이란 걸 할 수 없어 찾아 헤맸던 작업실 비용에 비하면 밥값은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요즘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코워킹 스페이스나 소호사무실도 적지 않은 돈이 나가더라고요. 독방(?)을 얻으려면 못해도 30만 원 이상은 내야 하고 독서실처럼 책상 한켠을 얻으려고 해도 최소 13만 원은 들더라고요. 그마저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쓸 편한 공간이 필요했거든요. 셰어 작업실을 알아보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해 지금은 월세 20만 원짜리 셰어 작업실에 입주했습니다.


   이곳을 선택한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사실 2년 전쯤 소호사무실의 1인실 독방(?)을 3개월가량 사용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 좁은 공간에 사방이 막혀있고 환풍기가 있지만 답답한 공기에 졸음이 쏟아지던 곳이었어요. 작업실이 아니라 숨소리마저 조심해야 하는 독서실 같았습니다. 작업실을 구하기 전에 도서관에서 작업한 적이 있었는데 마우스 소리와 키보드 소리가 거슬렸는지 모두들 제 옆을 떠나더라고요. 그 후로는 도서관에서 작업하는 게 민폐라는 걸 알고 가지 않았어요. 제가 사용했던 소호사무실이 딱 그런 느낌이었거든요. 숨 막혀서 3개월 만에 계약을 물렀죠. 이곳은 그렇지 않아요. 어느 정도 파티션이 쳐져있어 프라이빗한 개인 자리가 있으면서 공간 전체는 넓고 은은한 조명이 꽤나 안락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이 동네를 좋아하기도 하고요. 공간이 사람에게 주는 에너지는 무시할 수 없죠. 고민을 하다가 이 곳으로 계약했죠.


   친구가 그러더군요. 네가 지금 버는 수입이 작업실을 얻을 만큼이냐? 그렇지 않으면 작업실은 비추다.라고요. 하지만 제 생각을 달랐습니다. 집에서 도저히 집중이 안되고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할 수 없다면 1년 후, 2년 후 저는 지금과 다를 것 없는 반 백수 프리랜서일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나에게 동력이 되고 작업할 여건을 마련해주고자 셀프 투자를 한 거죠. 덕분에 이렇게 글도 끄적이게 되고 그림도 조금씩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긍정적인 변화죠. (웃음) 언젠간 제가 셰어 작업실을 만들 만큼 돈도 많이 벌고 자리도 잡았으면 좋겠네요.


   밥값보다 많이 드는 20만 원짜리 작업실. 누군가에게는 별 것 아닌 금액일 수도 있지만 저에게는 굉장한 투자예요. 옷도 안사고, 먹고 싶은 것도 여행도 참으며 투자하는 값진 금액이죠. 누군가가 저와 같은 상황이라면 전 조금 무리해서라도 작업실을 얻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잖아요.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노력해서 마음에 드는 상황으로 바꿔야 살맛 나잖아요. 우리 지금은 힘들지만 다들 힘냈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떳떳할 만큼이요.


   요즘 장마라서 날이 많이 습하네요.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이 큰 작업실에 저 혼자 있어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일하니 참 좋네요. 에어컨 너무 세게 틀어놓으면 여름에도 감기 걸리니 조심하세요.


그럼 모두들 편안한 밤 되시고, 내일도 나를 위한 노동을 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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