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출 나게 잘나진 않더라도 못난 모습으로는 살고 싶지 않다.
전 새로운 사람들, 특히 전문 직종에 오래 종사하거나 좀 똑똑해 보이는 사람들 앞에서는 저절로 말수가 적어지게 돼요. 그들이 하는 말을 주워듣고 친한 친구들에게 아는 척 뻐드렁 대며 이야기하는 모습이 어느 순간부터 느껴졌던 건 내가 듣기에도 내 말투가 재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을 때였던 것 같아요. 가끔 친구들을 만나고 오면 '아, 오늘 이 부분에서 내가 재수 없었겠구나'하고 뉘우치는 때도 있어요. 이렇게 저는 '관계'에 있어서 상대적인 사람입니다. 나라는 사람을 기준으로 잘난 사람 앞에서는 겸손하고 비슷하거나 내가 좀 더 아는 게 많다고 생각할 때는 더 우쭐해지는 그런 사람이요. 이렇게 좋지 않은 자세는 화살이 되어 저에게 돌아오기 마련이죠.
백수 거나 작가 거나, 또는 프리랜서일 때 저는 저의 가치를 '월 수입'이라는 잣대에 놓고 매우 헐값으로 측정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지 않으면 자존감이 매우 낮아지죠. 월 수입이 적으니까요. (아이러니한 건 일을 다니면 사회생활에서 오는 압박으로 자존감은 바닥을 쳐요.) 얼마 전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면서도 제 잣대는 여전히 저를 평가하고 있더군요. 예술 쪽에 종사하며 밥벌이가 시원찮던 언니가 보험 영업을 시작하면서 월 수입이 몇백만 원으로 오른 걸 보며 질투의 화신까지 절 지배했어요. 질투까진 아니더라도 조급함, 비교, 상대적 박탈감이랄까? 에이 그냥 셈이 났던 것 같아요. 변변찮은 월 수입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는데 제일 가까운 언니가 잘되는 걸 보니 셈이 좀 났나 봐요. 제가 좀 못됐어요 원래. (웃음)
하지만 아무리 질투가 나고, 조급해지고, 자존감이 바닥을 드러내도 결국 나를 지킬 수 있는 것 또한 저의 잣대라는 걸 알게 됐어요. 상대방과 나를 비교하지 말라는 명언은 실제로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 듯했어요. 그러다 나름의 해결책을 찾은 것 같아요. 곰곰이 생각했죠. 이렇게 낮은 자존감으로 살면 누구에게 득이 되고 누구에게 실이 될까. 득이 될 사람은 불특정 소수, 음... 어쩌면 득이 되는 사람도 있겠죠. 근데 실이 되는 사람은 아주 명확하더라고요. 바로 '나 자신'이었어요. 그 누구도 아니고 내 평생의 동반자 나 말이죠. 3개월 정도 바닥난 자존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 같아요. (물론 살아오면서 이런 순간들은 더 길었지만요.) 그리고 더 생각했죠. 그럼 왜 내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있는 걸까? 한참을 생각하고 찾아냈어요. 바로 '월 수입'으로 가치를 평가하던 저의 잣대가 잘못되었다는 걸 말이죠. 언니는 나보다 10배가 넘는 돈을 벌어 부모님께 비싼 소고기를 사주네. 내 친구는 8년간 다닌 직장에서 상여금도 받고 갖고 싶은 명품백도 턱턱 사네. 또 다른 친구는 돈을 많이 벌어서 남자 친구랑 주말마다 어디든 놀러 가고 있네. 나는 돈이 없어서 못하고 있는 것들을 남들은 다 하고 있구나.
그래서 이런 공격에서부터 저를 보호하기로 했습니다. 제 가치가 '돈'에 머물지 않도록 생각을 잘 타일렀어요. '내가 정말로 돈이 좋았다면 돈 많이 주는 직장을 다녔겠지.", "돈이 중요하다면 지금 이 여유로움에 만족하지 못했겠지.", "돈보다 이렇게 누워있는 게 좋아"라며 더 좋아하는 것들로 마음을 하나씩 이사하기 시작했어요. 이렇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으니 저는 더 이상 공격에 아파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조금 멀리 보고 돈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돈이 나를 따라오도록 달려보는 거죠. 뭐 설령 돈이 환장하고 절 따라오지 않더라도 별 수 없죠. 전 돈보다 더 좋아하는 게 많아졌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제 자존감을 공격수에서 수비수로 바꿨습니다. 하지만 언제 또 공격수가 될지 몰라요. 워낙 다재 다능한 친구라서. (웃음)
어쨌든 계속 절 공격해 오던 자존감이 절 지켜주는 방법을 알게 됐으니 앞으로는 이 방법을 계속 사용해 보면 언젠간 100점짜리 수비수가 되어있지 않을까요. 물론 밥벌이가 안되면 불안해지는 건 어쩔 수 없지만요. 하지만 이 자존감이라는 아이가 제가 글을 쓰게, 좋은 일거리를 얻을 수 있게, 무거운 짐을 덜어주게 하는 것 같아요. 프리랜서로 생활하면서 돈도, 작업 공간도, 주변 환경도 무엇하나 쉬운 게 없지만 가장 절 지치게 하는 건 자존감이 아닐까 싶어요. 부모님이 어디 가서 내 직업을 쭈뼛거리며 설명을 못하더라도 나는 나만의 인생을 산다! 하는 마인드가 필요한데 말이죠.
저는 요즘 누군가를 만나면 이렇게 말을 해요. "돈은 못 벌어도 행복해."라고요. 진짜로 행복하거든요.
여러분도 어느 위치에 있던, 어느 시기에 와있던 자신을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남과 비교해서 좀 뒤처지는 것 같더라도 사람마다 평균 속도는 다른 거니까요. 우리 스스로에게는 힘들게 하지 말아요.
오늘도 밤이 늦었네요. 내일은 전시회를 보러 가는데 전에 봤던 전시회를 또 보러 가요. 그래도 기대가 되네요. 이번엔 사진도 많이 찍고 오려고요.
다들 뒤척이지 않고 잠들었으면 좋겠네요. 그럼 내일도 나를 위한 노동을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