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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나나 Sep 08. 2020

누가나 삶의 기준은 다른 거니까

아직도 나는 그 기준을 세워가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밖은 못 나가는 상황이지만

작년 이 시기쯤, 마음껏 산책할 수 있었던 때에 썼던 글을 발견했습니다.

  서랍이 묻어두었던 글인데 까먹고 있던 에피소드를 만나게 되어 너무 반갑네요. 이 맛에 글을 쓰나 봐요. 이런 생각으로 버텨냈구나... 1년의 시간이라는 건 참 아득하고도 가볍네요.






  얼마 전까지 더위가 기승이더니, 요즘은 서늘한 밤공기에 산책하기 좋은 날씨가 되었어요. 얼마 전 여행을 마친 친구와 오랜만에 만나 밥을 먹고 카페를 찾기 위해 밖으로 나왔던 일이 생각이 나네요. 선선히 부는 바람을 맞으며 은은한 조명을 따라가다 보니, 노란 불빛이 퍼져있는 화성행궁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행궁 안에는 건물 키만큼 거대한 달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행궁 안은 중앙의 길을 따라 반듯하게 등불이 놓여 있고, 웅장한 자태의 행궁에도 노랑 빛이 은은하게 퍼져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에 반해 더 깊숙이 들어가 보니 하얀 천막들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었어요. 예쁜 불이 들어오는 마시멜로 같은 의자도 여러 개 놓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천막 안에는 수원에서 활동하는 예술가, 상인들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그렇게 쭉 둘러보고 있는데 어떤 음료를 팔고 계신 분이 이리 와 보라고 하더라고요. 이게 뭔지 아냐고. 냉큼 가서 뭐냐고 물어봤죠. 제호청이라는 전통 차인데 왕실에서 더위를 이기려고 먹던 차라고 해요. 네 가지 약재와 매실로 만들어서 달달하고 묵직하니 아주 맛이 좋더라고요. 시음을 하고 한 바퀴 돌다 오겠다는 빈말을 남기고 주변을 구경했죠. 친구와 떠들며 걷는 도중에도 계속 사장님이 마음에 걸려 구매를 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친구가 한 잔씩도 판매하니 테이크 아웃해서 먹자는 좋은 아이디어를 냈습니다. 그리고 냉큼 가서 시원하게 마실 제호청을 주문했죠.


다시 찾아온 손님이 반가워서 그랬는지

은 많지만 굉장히 차분한 느낌의 어투였던 사장님이 물었습니다.

"제가 뭐하는 사람 같아요?"

그래서 대답했죠.

"이거 만드시는 분이요."


   너무 정확한 정답이라 사장님도 웃고 저희도 따라 웃었어요. 알고 보니 배우를 하셨던 분이었어요. 연출도 하시고. 그렇게 20년 동안 연극에 미쳐계셨데요. 주변 사람들이 미친놈이라고 할 만큼. 후회하는 것 같진 않았지만 씁쓸해 보이는 표정을 보고 저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와버렸어요.


"어휴, 근데 그렇게 미친놈 소리 듣고 사는 게 나은 것 같아요. 안 그러면 내가 울화통이 나서 못살아요."

그랬더니 사장님이 웃으시더라고요. 위로를 주려고 나왔는데 오히려 위로를 받았다고요. 사장님은 절 응원해 주셨고 전 마음으로 사장님을 응원했습니다.


   누구보다 타인의 영향을 많이 받아오며 살아온 탓일까요. 그 답답한 심경이 너무 이해가 되더라고요. 하고 싶었던 일들은 누군가에 의해, 상황에 의해 중단되고 이제는 지레 겁먹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게 되었거든요. 모두들 그랬어요. 넌 왜 항상 그렇게 하니? 대체 뭘 하는 건지 모르겠다. 남들처럼만 해라. 여행에 중독된 거 아니니?

  제가 뭘 얼마나 했다고 그럴까요. 제가 뭘 얼마나 잘못했고, 제 어디가 그렇게 이상했던 걸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제 모습은 열등감과 원망으로 똘똘 뭉쳐져 있었어요. 그래서 요즘 참 많이 힘들어요. 그리고 너무 후회가 돼요. 멋대로 살지 못한 게.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이 있는 건데 왜 타인들은 꼭 나를 하나의 규격에 맞춰 그 잣대로 판단을 할까요? 그렇게 만들어진 내 모습이 행복해 보이나 봐요? 왜 본인만의 기준으로 날 틀에 가둬서 판단하고 비판하고 꾸짖을까요? 정말 쓸데없는 잔소리, 쓸데없는 참견이죠.


   그냥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어요. 내 생각대로 눈치 보지 않고 더 이상 착한 사람으로 남으려 노력하지 않고요. 누구나 삶의 모습은 다른 거고 그 기준은 다른 거니까요. 서로의 기준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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