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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Dec 13. 2020

4만 원어치를 샀는데 먹을 게 없어

소비가 허비되지 않으려면

수도권 2.5단계 격상으로 인해 온라인 수업을 재개한다. 올 한 해 몇 차례의 화상 수업을 겪어온 아이들은 눈에 띄게 적응한 모습이다. 강사들도 이제는 별도의 지시가 필요 없다는 듯 자기 일을 알아서 찾아 준비한다. 그럼에도 급작스러운 비대면 수업 전환은 반 강제적인 야근으로 나의 발목을 잡는다. 가로등 불 빛조차 희미하게 만드는 짙은 어둠이 깔린 시간대에 집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저녁을 안 먹기에는 허기지고 해 먹기에는 한 참 전에 해가 졌으니 8000원의 돼지국밥은 사치가 아니리라. 포장을 풀어 한 그릇 뚝딱 먹기만 하면 되니 요리와 뒷정리가 필요 없다. 외식은 빠른 취침으로 입장시켜주는 프리패스 같다. 휴식도 유료일 줄은 몰랐지만 돈이 들어도 어쩌겠어, 야근을 핑계 삼아 마음 편히 즐긴다.


매일을 꽉 채워 일하다 보니 어느샌가 금요일. 칼퇴와 이별한 한 주가 드디어 막이 내렸다는 발랄한 기쁨이 느껴지는 한편 오늘만큼은 대단한 걸 먹어야 한다는 묘한 고집이 발동된다. 저녁 메뉴는 소고기에 와인으로 정한 후 손목에는 식료품 가득 품은 종량제 봉투를 걸고 다른 한 손으로는 4만 원의 영수증을 받아 든다. 영수증에 찍힌 숫자를 의연하게 바라보지만 혀 끝에서 차마 뱉지 못할 말 하나가 뱅뱅 맴돈다.   없네,   없어.


저녁 찬으로 산 소고기와 마늘, 때 마침 떨어진 올리브유. 전부터 사보고 싶었던 와인 한 병, 부드럽고 짭짤한 한치와 식량 창고에 채워둘 과자 몇 개와 묶음으로 저렴하게 팔던 요구르트까지 모두 4만 원을 훌쩍 넘는다. 불금이니 뭐니 괜한 오기를 부렸다는 게 확실해졌지만 티 내지 않기로 한다. 후회 섞인 꾸지람은 금요일 오후 5시 59분까지로 이미 접수 마감.   


제발 맛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고생했으니까.


장 본 식료품을 하나 둘 꺼내 정리하다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혼잣말이다. 그러니 오늘 저녁은 성공해야 한다. 처음 마셔보는 와인이 내가 기대한 맛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추가로 고기와의 조합이 말도 못 하게 끝내주면 참 고맙겠다. 소고기에 올리브유와 버터를 넣어 구워내고 그 위에 통후추를 아낌없이 뿌려 회갈색의 밋밋함을 숨겨준다. 플리츠 모양의 멋들어진 와인잔에 레드와인을 따라 고기와 한 입 한다. 맛이 꽤 괜찮다. 더 걸쭉한 농도의 와인이라면 좋았겠지만 그럴 거면 포도주를 샀어야 하는 게 맞지. 대성공까지는 아니지만 전혀 나쁠 것 없는 저녁식사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워 허겁지겁 이 과자 저 과자 뜯어 본격적으로 먹기 시작한다. 그러다 문득 방 안을 둘러보고 찬장을 뒤진다. 분명 마트에서 먹을 것만 주섬주섬 골라 담았는데 이상하리만치 먹을 게 없다. 만일 10만 원으로 장을 봤다면 황급히 쳐 들어온 허탈감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 않을 비장의 무기를 마련할 수 있었을까?




우울감에 무기력 해 지거나 스트레스로 스스로를 어쩔 수 없을 때에 나를 챙긴다는 타당한 명분을 붙여 어딘가 탐탁지 않은 소비를 부추긴다. SNS에 올릴 만한 근사한 음식을 사 먹고 현관문 앞에 층층으로 쌓인 택배 상자를 전투적으로 뜯어 새 상품 진열을 마치거나 쾌적한 곳에 앉아 한 숨 돌리며 차 한 잔을 음미한 후에는 괜찮아질 거라고 굳게 믿는다. 손에 쥐어진 월급으로 나는 이만큼 소비할 수 있는 능력자임을 확인하면 바닥을 친 에너지가 다시 기적적으로 솟아날 것만 같다. 일에 지치고 사람에 치이면 나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는 사실을 소비가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 믿으니 오늘도 다시 소비로 시작해 허비로 끝나는 사이클에 기꺼이 진입한다.


빙글빙글 돌고 도는 소비와 허비의 연결고리를 끊는 방법은 브런치에 키워드 검색을 통해 손쉽게 찾을 수 있다. 소비 단식일기를 쓰거나 과소비의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를 찾아 해결하는 등 효율적이고 옳은 말들이 넘쳐난다. 하지만 내게 꼭 맞는 궁극적인 해결책은 따로 있다.   


영적인 소비를 우선순위로 두어야 한다. 목마르고 주린 영혼의 허기를 제대로 알아채고 충분히 먹일 수 있어야 하고, 닳아 없어진 나의 존재를 바로 인식하고 새롭게 세워야 한다. 영적인 소비의 세계에서는 돈을 화폐로 사용하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시간과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풍족하게 누릴 수 있는 곳이다. 아무리 사도 만족은 구매할 수 없는 세상의 시장과는 다르다. 전부를 쏟아 소비할수록 당신이 얻을 이익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당신의 시간을 예수님과의 교제에 소비하라.


그와 많은 시간을 보낼수록 영혼의 목마름은 축여지고 주린 배는 배불리 먹게 될 것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하나님만 한 크기와 그의 모습대로 만들어진 구멍이 있다. 세상의 음식과 물건으로 또는 좋은 장소로는 어딘가 헐렁하거나 턱없이 모자랄 뿐이다. 그것의 모형이신 하나님과 함께 할 때 비로소 남김없이 채워진다. 하루 세 번 때가 되면 곯은 배를 부여잡고 밥을 찾아먹는 게 당연하듯이 예수님을 향한 갈망 또한 지극히 자연스럽다.  굶지 말고 제 때 찾아 먹으라. 왜 또 배고픈가 찡얼 대지 말고 그저 시간을 지켜 잘 찾아 먹으면 된다. 허기가 채워지는 경험을 통해 건강한 나로 살아가자. 그가 의도하신 나의 모습으로 말이다.     


자신의 것이라 믿는 그 마음 또한 예수님의 말씀 앞에 온전히 소비하라. 아무런 힘이 없는 그대를 있는 그대로 보듬어 주실 분은 예수님 뿐이다. 그러니 마음을 다해 주를 찾고 기록된 말씀을 통해 그를 만나라. 예수님은 당신의 상한 마음까지 주저 없이 받아주시는 분이다. 자아를 향한 부정적인 생각과 마음을 그에게 털어놓고 예수님이 당신을 바라보며 하신 말씀을 붙들라. 세상의 말과는 차원이 다른 말을 듣게 될 것이다. 직장 상사에게 치이고 거래처 사람에게 얻어 맞고 가족에게도 따뜻한 위로를 받지 못하는 나를 예수님이 끔찍하게 사랑하신다. 어여쁘고 특별하다 너는 소중하다 언제까지나 속삭이신다. 당신의 닳아버린 마음을 남김없이 소비해 말씀으로 이전보다 단단히 세워지는 회복을 누리라.


속이 건강해야 겉도 멀끔하다. 세상에 육신을 두고 살아가는 인생이니 사람의  지혜를 활용하는 것이 백번 맞지만 그 어떤 것도 예수님만큼의 행복을 주는 것이 없더라. 무엇보다 하나님의 코칭을 받으며 소비 공부를 하는 것이 훨씬 수월하다. 그의 도움이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던 답을 알게 될지도 모르니까.


예배로 하루를 시작한다. 금요일 밤에는 먹을 게 하나도 없었는데 이제 보니 꽤 많이도 샀다.

오늘 오후는 배 부르게 뒹굴며 보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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