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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Dec 20. 2020

주말도 예외는 아니다

인생, 평일과 주말의 무한루트

토요일 아침 7시 30분에 눈이 번쩍.


또 하루 갱신되었다는 알람도, 어디서 날아오는지 모르겠는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고요한 시간대에 잠이 깨다니 이건 낭비다 낭비. 누가 업어가도 모를 늦잠을 자고 엉클어진 머리를 대충 쓸어 올려 가까스로 눈을 반쯤 뜨고 뻗은 손을 더듬거려 핸드폰 시간을 확인하는 주말의 명장면은 다음 주로 연기한다.


곧장 플랜 비 가동이다. 행여나 남은 잠이 달아날까 두 눈을 질끈 감는다. 푹 잔 느낌은 없을 테지만 주말이라면 응당 이 정도는 자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다. 지난 5일 아침마다 열심히 일어난 내게 진 빚을 갚는 시간이니까.


다시 눈을 뜨니 10시다. 일정 없는 토요일은 무작정 늘어지기로 한다. 눈을 부릅뜬 채로 손가락만 부지런히 움직여 폰을 들여다보던 중 ‘계획’을 만들어야 하나 생각한다. 노력을 통한 성취감이 수반되어야 진정한 쉼이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순간 뇌리를 스치길래 예의상 고민이라도 해본다.


그래, 그러지 말자!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는 계획을 세운다. 대신 뭘 하지? 가벼운 질문에 몸을 움직여는 봐야지. 하다 보면 허기를 느껴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오를 테고 그 후에장을 보고 신나게 요리를 하면 된다. 뒷정리를 마치고 나면 오후 3시쯤은 되어있을 테니 다시 침대에 누워 책 읽고 그림 그리거나 넷플렉스를 보면 오늘 하루는 끝나겠지. 일단 조금만 더 누워서 뒹굴대자. 나랑은 이미 합의 봤으니 괜찮다.


점심 메뉴가 주제인 단톡 방에 할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제야 등 떠밀려 일어난다. 배가 딱히 고프지 않은데 무엇을 먹어야 하나. 까다로운 입맛과의 스무고개가 시작된다.


밀린 설거지를 하다가 창틀과 눈이 마주친다. 한동안 춥다는 이유로 창문을 열지 않아 나 몰라라 하고 지냈는데. 좋아, 오늘은 담판을 짓자. 물티슈 한 장에 먼지로 뒤덮인 창틀 사이가 새하얗게 칠해지는 걸 보니 스트레스도 말끔히 닦여나가는 기분이다. 잡생각을 없애는 데는 역시 육체적 노동만 한 게 없구나. 매주 본가에 내려가느라 내 집을 깨끗이 할 여유가 없었다는 걸 지금에서야 알다니. 부모님으로부터 온전히 독립해야 할 또 하나의 타당한 이유가 생긴다.


예상과 달리 먹고 싶은 게 아직도 없다. 그렇다면 냉장고 안에 놓인 우삼겹을 활용해야지. 유튜브에 검색하니 우삼겹 숙주나물 볶음이 간단해 보인다.  때마침 동네 맛집에서 먹던 그 맛이 기억난다. 가자 마트로.


단톡 방 친구들이 우삼겹 요리는 어찌 됐나 묻는다. 대파 한 단을 다 사기 애매해서 포기했다니 한 친구는 대파 심기를 추천한다. 의외로 금방 자란다던데 한 번 도전해봐야겠다. 30분 후에는 밀푀유 나베인지 샤브샤브 찌꺼기 고기인지 모를 인증샷을 보낸다. 고기에 야채는 언제나 맛있으니 sns에 올릴 수없어도 괜찮더라.


청소와 요리에 과부하가 걸렸다. 이만하면 됐다 싶어 간단한 샤워 후 침대 위로 날아든다. 한 게 많아 체감상으로는 저녁때 같은데 시계를 보니 아직 오후 4시. 어느 정도 흘렀으나 꽤 많이 남은 오늘을 마주하는 아주 마음에 드는 시간대다. 다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책이냐 그림이냐.


보통은 마음에 그림이 그려질 때 펜을 잡는 날이 더 많다. 취미란 그런 것 아니겠는가. 하고 싶은 마음이 동해 결국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고야 마는 행위. 하지만 오늘은 정해둔 밑그림 없이 시작한다. 오랜만이야 그림아.


넷플릭스로 밀린 드라마를 오디오로 틀어놓고 멀티를 시작한다. 별그대를 본다 하니 친구가 놀라 까무러친다. 드라마를 챙겨보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독립하니 TV와 친해지는 수밖에 없다. 그림에 별그대 그리고 친구들과 카톡까지. 지루 할 수 없는 조합이다. 정신 차려보니 저녁 식사를 놓친 밤 열 시가 넘었다.


그림 한 장에 나의 6시간이 담긴다. 나의 세계가 곳곳에 자리 잡는다. 베이지 톤의 인테리어와 함박눈 실은 달빛이 주는 따뜻함이 꽤나 마음에 든다. 친구들에게 보여주니 파이프라인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 기세로 sns에도 업로드한다. 내 눈에만 예쁜 그림인가, 시큰둥한 반응이지만 아무렴 뭐 어때. 자꾸 들여다보고 싶은 나만의 귀여운 그림인 걸로 충분하다.


밤 12시. 불을 끄고 머리맡 조명을 켠다. 차분한 분위기에 맞추어 잔잔한 찬양을 틀고 책상에 앉아 성경을 읽는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퍼즐, 나의 예수님과 손 잡고 쎄쎄쎄 하는 이 시간. 험한 십자가 지러 가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 또한 매일 그 길을 걷겠노라 기도한다. 당신이 정말 많이 보고 싶다 고백하는 진실된 시간이다.


비로소 하루의 끝을 마주한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평일 못지않은 성실함으로 오늘을 살아냈다. 순간에 집중하여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로 24시간을 채워냈다. 아무런 스트레스 없이 내가 시간을 리드해 낸 보람찬 하루.


가만.


보람차다는 말이 어딘가 어색하다. 주말과 성취감, 보람은 별개로 선 그어두었는데 그게 아닌가 보다. 시간이 빨리 가면 가까워지는 월요일에 불안하고, 더디게 가 비어버린 시간을 보면 알차게 채워야만 하는 부담감이 느껴지더라니. 주말이라고 해서 버티지 않아도 되는 건 아니구나. 이 녀석도 평일과 한 패다.


잘 살아내야 할 인생에 주말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걸 인정한다. 다만 주말에는 온전히 하고 싶은 일을 우선순위로 둘 수 있다는 것이 그토록 이 날만을 바라게 하나보다.


그럼에도 주말만을 애타게 기다리는 것보다

평일을 주말과 다를 바 없이 사는 게 더 우아하고 아름답다. 성실한 평요일과 보람찬 주우말이 부드러이 이어진 일주일로 가득한 인생이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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