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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Jan 20. 2023

불안 할 때는 예빼시

예수님 빼면 시체

직장인 + 사랑하는 남편의 아내 = 나


지금의 나를 가장 빛나게 해 주는 두 가지는 바로 직장과 나의 남편일 것이다.


퇴근해서도 폰을 놓지 못하고 이것저것 들춰 일을 한다. 잘 쉴 줄 모른다. 일은 시간을 보내는 가장 익숙한 방법이 되어버렸다. 인정욕구도 여전히 있지만 글쎄, 이제는 잘하는 것 자체가 욕구로 자리 잡은 듯하다. 조금 더 멋지게. 조금 더 깔끔하게. 조금 더 근사하게. 한 마디로, 조금 더 내 성에 차게.


그래서 퇴사 후의 나의 모습이 두렵다. 일을 빼면 내게는 무엇이 남을까. 젊음, 열정, 시간 그리고 온 마음을 다 바쳐 일한 이 직장을 내게서 떼 놓는다면, 나는 이제 어떤 사람으로 정의될 수 있을까.


이 놈의 일, 지긋지긋하다 궁시렁 대다가도 문득 그런 두려움이 엄습한다. 관두면 뭐 하지?  나 이제 뭐 하지?


물론 직장을 관둔 후에는 또 다른 플랜 비가 생겨날 테다. 급작스러운 두려움에도 아직 여유로울 수 있는 건 내 곁에 있는 든든한 남편 덕분이다. 그래, 뭔들 어때. 사랑하는 남편과 행복하게 알콩달콩 살며 하나님 기업으로 주실 아이를 기대하며 살면 되지.


그러곤 또 번뜩 무서워진다. 주변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이별의 소식들. 하루아침에 사고로 남편을 잃은 사연, 별안간 남편의 얼굴이 노랗게 되어 쓰러져 뇌사 상태에 이르렀다는 슬픈 이야기도 이제는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나는 남편을 잃으면 세상이 무너질 것만 같은데. 이전에 잃었던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온 우주가 한순간에 녹아내린 것만 같을 거야. 남편을 잃게 된 현실을 상상하기만 해도 눈물이 동글동글 맺혀 후두둑 떨어진다.


남편이 어딜 간 것도 아닌데. 아픈 사람도 아니고 사고가 나지도 않았는데.


삶이 불안하기 짝이 없다고 느껴졌다. 나의 존재를 화려하게 꾸밀 수 있음은 직장 덕택이고, 나의 내면이 굳건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 남편 덕분이니까. 영원하지 않을 것들에 나를 의지하여 언제 무너질까 걱정하고 고민하며 불안해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한참을 헤매는 중이다.


그렇게 서서히.


하나님 은혜 + 예수님 사랑 = 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답.

업적과 물질 그리고 사람이 내 존재를 붙들어주는 게 아니라,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만이 나를 온전히 나답게, 특별하게 세워주신다. 그 무엇도 나를 그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것이 없고, 그 어떤 것으로부터 빼앗길 수 없는 기쁨이 내게 들끓는다. 더 이상 초라하지 않은 나의 존재. 나의 정체성과자존감이 생겨나는 이 반석은 절대 무너지지 않고 사라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딘가 석연치 않음은 아마 내게 부활의 기쁨과 확신이 없어서 인 건 아닐까.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힘의 위력”이 이제 우리 안에 있다. 엡 1:19-20 그래서 우리는 ‘새로 지으심을 받아’ 미래의 “빛” 가운데 살아가야 한다. 롬 13:11-13; 갈 6:15 즉 미래에 누릴 부활한 삶을 현재의 생활 방식에 접목해야 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우리의 모든 것이 달라진다. <팀 켈러의 부활을 입다>


모든 것이 달라진다, 라니.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모든 것이 달라진 인생을 꿈꾸는데, 아직 그 부분이 흐릿하고 뿌옇다. 안개가 자욱이 낀 것 마냥,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눈을 가늘게 뜨고 손을 휘저으며 한 걸음 겨우 내딛는 그런 상황에 놓인 듯한 기분이다:

 

신약 성경에 따르면 성령께서 ‘거듭나게 하심으로써 the new birth’ 그리스도인 안에 영적 새 생명을 주시는데, 그 생명이 가진 필수 요소가 바로 희망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영혼 깊은 곳에 그 희망이 심긴다. <팀 켈러의 부활을 입다>


불안을 잠재울 희망.

끊임없는 불안의 소용돌이 가운데 나를 건져낼 바로 그 희망.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면 나의 영혼 깊은 곳에 그 희망이 생긴다고 팀 켈러 목사님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

나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그 생명으로 살고 싶어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부활을 이제는 보고 싶다. 십자가 죽음을 이기고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으로 나도 살고 싶다.


지나갈 것에 슬퍼하되,

내가 사라진 것처럼 주저앉지는 않기를.


영원한 것에 감사하며,

사라질 인생에 너무 마음 쓰지 말기를.













사진출처_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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