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도 않은 자식을 두 번이나 버려야 했다

나의 소원이 욕심이 될 때

by 아링

어느덧 일을 관두고 집에서 편히 쉰 지 1년이 넘었다.


임신을 위해 일을 쉬고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는 게 생각처럼 쉽지 않더라. 시간을 효율적으로 보내기보다 침대에서 한참을 누워있다 일어나기 일쑤였고, 매일 30분씩 운동을 하는 대신 거실 소파에 등을 붙인 채 거실 창으로 들이치는 햇살을 피하기만 했다.


처음엔 그리도 따뜻하던 햇살이 이제는 따끔거려서.

들이치는 햇빛에 맨 얼굴을 덥석 내주어도 좋았던 건 잠시. 집에서 선글라스를 낄 수는 없으니 냅다 돌아눕고 그늘을 찾게 되었다.


시간이 내겐 햇빛 같았다.


매일매일 들어치는 햇빛, 하루하루 주어지는 텅 빈 시간. 어김없이 해가 밝듯, 나의 빈 시간은 바지런히 움직였다. 해를 피하듯이, 내 시간의 무의미를 피하고 싶었다.


엄마가 되려고 쉬었으니

엄마가 되어야 하지 않겠나.


언제일지 모르는 임신을 위해 늘 기도했다.

무슨 기도였느냐, 하면.

생명의 태를 열어주세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완벽한 때에. 혹여 이번 달 임신이 안되더라도 믿음으로 견딜 수 있도록 기도했다. 이번에도 안되어도, 요동치지 않도록. 하나님을 원망하고 싶지 않아요.


사람이 참 재미있다.

나는 도통 남을 원망하는 법이 없는 줄 알았다. 차라리 자신을 원망하는 편이었으니. 알고 보니 나는 나에게도, 그리고 남에게도 화풀이를 꽤나 잘하는 축에 속했다.


이번에도 의심할 여지없이 생리가 시작됐고, 곧 온갖 원망과 불평이 일었다.


기도하면 뭐 해! 하나도 되지를 않고!

아이도 생기질 않았고 그렇다고 마음이 온전하지도 않았으니 이번 임신 시도와 함께 그간 했던 기도도 영 꽝인 것 같았다.


내가 이러기 싫어서 기도하기 싫었던 거예요,

아세요 하나님?


임신이 안된 것도 속 쓰리지만,

결과를 마주하고 믿음 없음을 나비치는 내 자신을 있는 힘껏 미워했다.


가임력 빵점, 믿음 빵점.


생리 전 증후군으로 온갖 증상놀이를 했던 내 몸조차 꼴 보기 싫어진 하루였다.


넌 뭐 하러 그렇게 난리를 치니, 임신도 못하는 게.

너 까짓 몸뚱이는 하나도 필요가 없어.


싸늘하고 냉담한 태도에 나의 간담이 서늘해졌다.

입 밖으로 뱉은 말은 아니었을지언정,

내 모든 기관은 선명하게 들었나 보다.


그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대하지 않았는데,

나는 나 자신을 너무나 함부로 대하고 있었다.


기도도 하고 싶지 않았고, 말씀을 읽고 싶지도 않았다.


기도하면 뭐 하나.

말씀 읽으면 뭐 하나.


나는 자기 욕심에 취해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도 필요 없다 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사랑할 수 있을까.

실의에 빠져버렸다.


나한테 좋은 대로 안될 거면 하나님 뭣하러 믿느냐 철없는 소리를 했던 친구가 떠올랐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나 뒤에서 혀를 끌끌 찼는데, 이게 실화인가.

내가 지금 그 꼴이라니.


허우적거리며 단단히 삐쳐있을 즘,

옥한음 목사님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의 구원이라는 책만 눈알을 도르륵 굴리며 읽고 있었다.


책에서는 성령을 소유한 사람에 대해서 단호하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성령을 받았는데도 성도답게 살지 못한다면, 성령님이 계십니다 하는데도 성령님을 따라 살지 않고 있다면, 결국 되돌아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성령님이 계신 인생은 그런 인생을 살 수 없다며. 인도하시는 성령님은 틀릴 수 없으니 애초에 처음으로 가서 다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성령님이 거하시지 않는 인생은 아닌지를.


눈이 번쩍 뜨였다.

어 아니야, 아니에요! 나 그렇게 살 수 없어요, 그렇게 살기 싫어요!
내 안에 성령님을 무시하면서
살고 싶지도 않고,
성령님 안 계신 인생은 생각하기도 싫어요!!


될 대로 돼라, 나는 하나님 어차피 안사랑한다! 한참 삐져있던 나에게 마치 정신 안 차리느냐! 불호령이 떨어진 듯했다.


그리고 허겁지겁 기도하는데,

감사하게도 성령님께서 내 안에 말씀 하나를 붙잡게 해 주셨다.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_마가복음 9:47


임신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일이라면,
저 내려놓겠습니다 하나님.
임신 안 해도 괜찮아요. 못해도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막는 이 임신,
저 안 합니다!!

정말 과감한 결단이 절로 나오더라.

베드로처럼, 급박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임신으로 인해 내가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떼를 쓰거나. 사람의 일에 온전히 골몰하며 함몰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임신이 안되고, 애가 없더라도.

차라리 아바 아버지를 생각하여 그를 기쁘게 할 일이 무엇인지를 골똘히 고민하는 편이 옳다.


내게 육신의 아버지는 애초에 없는 존재였듯이,

그 아버지를 진정으로 버려야만 비로소 아바 아버지신하늘의 하나님 아버지를 만났듯이.


내게 임신이란 구원은 없습니다.

나의 진짜 구원은 하나님 당신 한 분 입니다.


그렇게 나는 있지도 않은 자식을 한 번, 두 번 버리고 있다.


하나님만을 사랑하게 하지 못한다면.

이것이 나에게 쟁기처럼 자꾸 뒤를 돌아보게 하는 일이 된다면.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 눈이 멀어 하나님의 말씀을 합리화 할 바에는, 한 발 두 발 자꾸 이상한 곁으로 빠져버릴 모양이라면.


하나님, 제 소원은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기를 원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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