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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Jan 24. 2021

GG 치고 Go to God

feat. 소개남 미안해요

소개팅을 엉망으로 치르고 와서 기분이 한참을 오르락 내리락 거렸다. 아 스트레스 받아, 꽥 소리 지르기도 하고,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며 나를 다독거렸다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 성경을 읽다가 하나님 나 살기 싫어요, 엉엉 울었다가. 불덩이 같은 서러움을 글로 풀어내 대부분을 흘려보내기도 했다.그럼에도 눌어붙은 찌꺼기 마냥 억울한 마음이 가시질 않아 엄마 품에 안겼다가 털어놓았는데, 인연이 아니라는 엄마의 위로가 여전히 충분치 않아 결국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
저 좋은 거 주실 거죠?
이 사람 아니라도 진짜 진짜 좋은 사람으로,
하나님 나한테 좋은 것만 주실 거죠?

하나님이 대답 안 해주시면 정말 망한다는 생각으로 매달리기 시작했다. 내게 늘 좋은 것 주시는 분이라고 했으니 분명 답하실거야. 지난번처럼 번뜩이는 말씀으로, 휘영 찬란한 약속의 말씀으로 세상 따뜻하고 삐까뻔쩍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시고 날 위로하실 거다. 이때야말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낼 만한 아주 중요한 순간이니까. 소리 내어 말은 안 했어도 온 마음으로 소리쳤다, 지금 날 구해요 어서!

그러나 하나님은 아무런 반응이 없으셨다.그분의 위대하심을 드러내는 말씀이 수 없이 많고, 키워드를 검색하면 수면으로 떠오르는 구절 또한 몇 페이지나 될 텐데. 하나님은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셨다. 시작됐네 우리 둘 만의 은혜로운 눈치게임.

내가 방금 구한 게 뭐였더라, 좋은 거라는 게 지금 좋은 남편감을 달라고 기도한 거지? 다시 정신 가다듬고 되새김질하던 중 하나님이 먼저 입을 떼셨다.

나 하나면 충분하지 않니? 나와 함께라면 더 이상은 부족하지 않을 거야.


아니,  말씀  하시네요!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나님 아직도  말씀이에요?

어린애처럼 드러눕고 그 말씀 싫다고 발차기를 했다. 다른 약속 해줘요, 좋은 거 주겠다는 그런 거요! 나도 남들처럼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할 수 있다고 그런 약속 해주란 말이에요!

우리 아기들한테는 감정 따라 행동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지만 항상 예외는 있는 법. 애들아, 안 배우면 좋을 테지만 그래도 정 힘들 때는 하나님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

하나님이 입을 여셨을 때 사실 아차 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좋은 것이란 내가 좋아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는데 어느새 까먹고 징징대고 있던 거다. 그럼에도 매번 아는 만큼 성숙하지 못한 나의 믿음의 분량에 실망해 굳이 센 척을 하기 시작한다. 아니, 미리 정해둔 답을 못 들어서 삐친 게 더 정확하다. 삐쳤을 땐 입술 쭉 내민 반어법이 최고지.

그래요 그래. 알겠다고요. 하나님  분이면 충분해요.  먼저 자요.

다음 날 아침이 되니 어젯밤에 하나님과 무슨 대화를 했는지 다 잊었다. 물론 대화라기보다 지극히 일방적인 똥고집의 현장이었지만. 늦잠 자고 일어나 브런치를 탐방하고, 엄마랑 유명한 크리스천 가수 부부의 갈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된장찌개에 밥 말아 든든히 먹고. 머리를 예쁘게 말려 옷을 입고 오랜만에 교회에 갔다. 새신자 등록을 하려고 마음먹은 동네의 큰 교회였다. 낯선 마음에 잔뜩 쪼글아든 나는 그래도 씩씩하게 앞자리에 가서 착석한다. 하나님이 오늘은 나한테 무슨 말을 하실까. 왔다 그냥 가는 일만큼은 주일날 가장 피하고 싶은 일.

혹시라도 새 교회의 어색함에 말씀이 안 들리면 어쩌지? 별 걱정 중 하나였다. 하나님은 어제 마저 못한 이야기 오늘 한 번 담판을 지어보자며 나를 찾아오셨다. 앗, 어제 그 얘기 여기서 다시 꺼내실 줄은 몰랐는데.

당신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허락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에요. 하나님을 이용하려는  악하고 약한 마음, 하나님 섬긴다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으로만 가득   마음을 오늘 예수의 피로 씻으세요.

머리가 띵했다. 나를 아는 사람 아무도 없었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지목하는 것 같아 낯이 뜨거워졌다. 두툼한 스웨터에 모직 스커트를 입고 있었음에도 내 몸 위에 걸쳐진 것은 수치심과 부끄러움뿐이었다. 울고 또 울었다. 목이 곧은 나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나라서 훌쩍거리기만 했다.


그제야 뭐가 잘못됐는지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결혼을 우상 삼으니 그저 조급해져서는 사람을 사람 그 자체로 볼 줄 모르게 되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 그림에 잘 맞는 사람인가가 먼저고 전부였다.

하나님은 잘 믿나, 생긴 건 멀끔한가, 나랑 같은 취미를 공유할 수는 있나, 술 담배는 안 하는 게 확실한가. 사람을 내 앞에 앉혀놓고 여기저기 둘러보며 체크 리스트에 적힌 내용과 매칭이 되는지만을 살폈을 뿐이다. 마치 최상품을 골라내겠다는 사람처럼. 축구를 좋아한다는 사람에게 스쿼시를 하면 잘하겠다는 말이야말로 정점을 찍었다. 뜬금없는 기대에 부응해야 할 것 같은 불편함을 느낀 그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미안해지고 그럴 수밖에 없던 내가 이해되니 결론은 다시 하나였다.

차오르는 욕망으로 더러워진 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끔히 정화시키는 일. 온전히 하나님 한 분으로 인해 만족하고 기뻐하는 일이었다.  
  
비로소 하나님께 내가 잘못했다며 용서를 구하고 그새 또 영락없는 죄인의 모습으로 살았음을 회개했다.

하나님으로 만족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허황된 자신의 꿈을 만족시키기 위해 주변의 사람을 이용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본인을 낮추고 복종시키지 않으면 어느새 내가 신이 되어 하나님마저 이겨먹으려 한다.

이제는 다시 하나님께로 직진이다.
더는 고집 피우지 못하도록 하나님 나를 따끔히 혼내주신 게 감사하고 이렇게 더러운데도 또 기꺼이 씻겨주신다니 감동이다.
 
이제 그만 GG 치고 Go to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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