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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Feb 10. 2021

“잘”하는 것보다 “잘”봐주기

오늘 정말 멋졌어, 너는 최고야!

드디어 댄스 촬영을 마쳤다.


반 분위기에 꼭 들어맞는 선곡. 6세에게 적당한 안무와 대형 구성.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개사한 가사. 틈새 시간을 이용한 치열한 연습까지.


큰 연례행사 중 하나로 난이도 최상에 해당하는 Song Festival은 다시 말해 준비하는 교사에게는 자잘한 것 모두 다 스트레스라는 말이다. 인생에 대충이란 없는 허접한 완벽주의인 나는 행사 앞에 호흡을 가다듬고 저 높이 뛸 준비를 한다.


잘하고 싶었다.


열심히 준비하면 될 수 있을 거라 믿고 작년보다 나은 발표가 되었으면 했다. 막대기처럼 뻣뻣하고 무대 감각과 스타일링 센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교사라도 성실하게 노력하면 되겠지. 말 안 듣는 몸을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흔들고, 지인에게 부탁해 mr을 만들고 여러 영상을 참고해 한 곡을 완성시켰다.


6세가 소화하기 어려운 댄스와 랩을 많은 연습량을 통해 기어코 해냈지만 내 눈에는 여전히 부족했다. 하, 엔딩이 이게 아닌데. 왜 라인을 제대로 못 잡아서 사다리꼴을 만들어놨어. 진한 아쉬움이 생겨났고 이 못난 아쉬움은 비겁하게도 아이들 등 뒤를 피난처 삼아 숨어버렸다.


마지막 날 만큼은 실수 없이 짠 하고 잘 해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으니까. 등원 시간이 들쑥날쑥 한 아이와 뒤늦게 반에 합류한 아이는 연습시간이 턱 없이 모자랐으니 이런 결과가 당연하지. 말로는 수고했다 칭찬하며 스티커를 나눠주었지만 못내 언짢은 내 표정은 누가 덜어줄 수 있나. 더 잘했어야 하는데. 거기서 실수 해서는 안됐는데.


찜찜함으로 야근을 결정하고 느릿느릿 일을 마쳤다.

집에 가기 전 아이들 영상을 다시 보고 싶어 짐을 다 챙겨놓고 컴퓨터 앞에 털썩 앉는다. 마우스를 클릭해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을 돌려본다.


영상을 돌려 볼수록 처음에는 미처 보지 못한 장면이 눈에 띈다. 아이들을 지도할 때는 평행선, 삼각형 그리고 사다리꼴만 보였는데. 완전한 도형이 아닌 9개의 점들이 있었네.


한 명 한 명으로 모인 아홉 명의 아이들이었다.


댄스가 싫다던 S는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동작을 자연스레 이어갔고 제법 열심이던 D의 춤사위는 꽤나 멋들어져 나를 심쿵하게 만들었다. H는 옆 친구의 위치를 두 손으로 친절히 밀어주고 타이밍 딱 맞게 돌아섰고 마지막까지 꾸중 들은 J는 다른 건 몰라도 제가 있어야 할 곳에 스스로 찾아갔다.


우리 아이들은 사랑스럽고 어여뻤다.

귀염 뽀짝 그 자체. 나의 보물 같은 뽀시래기들.


이렇게 잘하는데 뭐가 부족하다고 그리 투덜거렸지.

이만큼이나 멋지게 해냈는데 무엇이 덜 되었다고 환한 미소로 기쁘게 엄지 척 올려주지 못했지.


잘했으면 하는 욕심에 잘 봐주지를 않았다. 전체적인 그림에만 신경 쓰느라 세세하게 봐주는 법을 잊었다. 서로를 챙기며 하나가 되려 하는 아이들의 정성을 1도 몰라봤고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았던 최선은 딱히 필요 없다는 듯 지나쳤다.


티쳐 하나만 보고 사는 아이들이다. 내 표정과 말투로 하루가 달라지는 세상에 사는 아이들인데. 내가 아이들에게 선사한 오늘 하루는 과연 어땠는가.


잘해야만 인정받는 세상은 최대한 늦게 배웠으면 했다. 성취를 통해서 사랑받는 삶이야 말로 발버둥 칠수록 깊게 가라앉는 늪과도 같다는 걸 우리 아이들은 경험하지 않기를 바랐다. 존재 자체로 사랑해주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어쩌다가 나는 또 잘하라고 목청껏 외치고 있는 걸까.


결과에 상관없이.

수 백번 실수해도.


나는 아이에게 여전히 너는 멋져, 정말 최고야

말해줄 수 있기를 바란다. 아이의 존재와 그의 정성만이 내 두 눈에 반짝이길 소망한다.


매번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일을 반복하는 어리석은 사람임에도 내일은 오늘보다 나으리라는 믿음으로 기도한다. 오늘 못해준 사랑 내일은 꼭 해주리라 마음먹으며.


#사진출처_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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