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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Mar 09. 2021

벌레 못 잡아? 그럼 결혼해!

거창 할 이유 없는 결혼의 필요

키는 적어도 178cm 이상.
화려하지는 않아도 선한 인상의 외모.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섬기는 믿음.
여린 마음을 공감해주고 두 팔 벌려 안아줄 성품.
고집부리지 않고 맘껏 져주며 우쭈쭈 해줄 사랑.

나열하자면 끝도 없는 게 이상형 아니겠는가.
추리고 추려도 이건 뺄 수 없지! 하는 것만 다섯 개.

아빠는 일 번부터 글렀다고 혀를 끌끌 찼다.

 얼마나 더 마음이 가난해져야 사람을 만나려는지, 외모를 따져서 큰 일이라더라. 2세에게 물려줄

내 유전자가 심히 아름다웠다면 외모를 상위권에

넣는 일 따위는 없었을 텐데.

주위를 둘러보니 반은 시집갔거나 날을 잡았다.
나머지 반은 없거나, 전혀 없다. 누군 되고 누군 안 되는 일이 결혼이었나? 이쯤 되니 기혼자 친구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결혼은 어떻게 결심하게 됐는지, 막상 식을 올리니 기분은 어떤지 틈만 나면 묻는다. 누가 봐도 결혼하고 싶은데 맘처럼 안돼서 아쉬운 사람 같은 질문만 골랐다. 어느 날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이렇게 대답했다.


혼자 벌레 못 잡아서 결혼했어.
화장실이나 싱크대에 더러운 것도
내 손으로 못 치우겠고, 아플 때 죽 하나 끓여줄 사람 있으면 좋겠고. 그냥 그게 다야.
너 벌레 잡을 수 있어?
못 잡으면 너도 결혼해야 돼!!



  평탄한 인생을 사는 친구인  알았는데 결혼에 고작 벌레를 운운할 정도로 쿨한 현대 여성인  이제야 알았다. 주위 사람들에게 벌레 잡을  있냐고 물어보고 다닌 다는 친구 말에 킥킥대며 웃었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맞는 말이더라. 결혼은 단순한 벌레 퇴치용,  이하 일리 없고  이상 기대할  또한 없다는 뜻이겠지.

 후에 친구는 덧붙였다. 혼자 자기 계발하는 것도 어려운 마당에 관계를 통해 서로를 발전시켜주기를 기대한다는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모르겠느냐고. 대신 벌레 잡아주는 것처럼 아주 작은 성의만이라도 보일  아는 사람을 만나면 된단다. 지금의 남편이 아닌  누구와도  살았을 거라는 친구의 여유는 과연 사람은 타인에게 기대하고 바라기보다 스스로를 돌볼  있는 건강한 자존감과 독립심을 길러내야 하는구나, 다시 한번 깨닫게  주었다.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없다. 타고나는 기질과 환경에 의해 형성된 성격에 따른 장단점. 그로 인해 생기는 본능에 가까운 우월감 내지는 열등감.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찌꺼기처럼 들러붙어있는  어두운 그림자를 어떻게   것인지가 아니겠는가. 극복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면 눈부시게 성장할  있다는 무한의 긍정과 가능성을 믿고 되뇌며 말이다. 또는 요즘 세상이 추천하는 접근법인 이런 나라도 인정하고 사랑하는 방법도 있다. 미움받을 용기, 자존감 수업, 나는 나답게 살기로 했다 등등 비슷한 종류의 수많은 책이 줄줄이 베스트셀러에 선정되는 것을 보니 그 효과는 어느 정도 보장되었나 보다.

 그러나 나는 그게 어려워서 쉬운 길로 가보려 했다. 끝장을  때까지 노력하기는 생각만으로도 이미 귀찮고  모습 있는 그대로를 마주하고 인정하기도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더라. 언뜻 보기에 간단한 길은 연애뿐이었다.
 
 잘생긴 사람과 연애하며 나도  정도 되는 남자쯤은 만날  있다는 자신감으로 외모 콤플렉스를 손가락 하나 튕겨  멀리 치워버릴  있으니  얼마나 간편한 일인가! 훈훈한 외모와 번듯한 키를 반사광으로 누리며 매력적인 여자가   있다는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실로 굉장했다.  남자가  남자  때만 가능하다는, 유통기한이 적힌 일시적인 효과라는  유일한 흠이랄까. 겸손하려는 노력은 패스하고 무조건 져주는 마음 넓은 사람을 찾기도 했다. 어린아이를 훈련시키듯 자기야, 이럴  이렇게 져주는 거야. 해봐, 하고 잘했다 칭찬하기도 했다. 이것뿐이랴.   내려가기 민망할 정도로 다양한 노력을 해왔다. 내가 가진 열등감을 가리고 태생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는 노력. 내가 아닌 남에게! 나를 받아줄 당신으로 변화시키려고 혈안이 되었던 지난  년이  부끄럽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남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들들 볶아서 정말 미안해.

  문제는  스스로 감당할  있어야 한다. 내가 어쩔  없는 열등감은 남도 감히 어쩌지 못한다. 당장 본인 하나를 돌볼  없으면서  상대에게 나를 이해하라 사랑하라 큰소리치는가.

 이제부터 나는 내가 책임지기로 했다.  성난 감정을 달래는 일도 내가 먼저, 못난이 콤플렉스를 안아주는 일도 내가 가장 너그러이. 그래도 결혼은 하고 싶으니 친구가 말한 최소한의 성의를 고민해본다.

 벌레도 벌레지만 나는  이불 덮고 같이   있는 사람이면 되겠다. 정자세로 누워 자고 일어나는 내게  싱글베드는  사람  곁에 누울  있는 넉넉한 사이즈다. 춥고 쌀쌀맞은 인생 이리 , 따뜻하게 서로를 품에 안고 잠들  있는 그런 사람이면   같다.

 혼자 쓰기엔 침대가 너무 ? 그럼 결혼해!


#사진출처_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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