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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Dec 03. 2020

부담스러운 나의 청춘

차라리 사라지면 좋겠지마는


서른 되는 거 어때요? 난 아무런 감흥이 없어서.


매월 첫째 주 화요일에 한 달 스케줄을 의논하는 강사 회의가 있고 이틀 후에는 다음 달 학습할 교재 신청서를 제출한다. 한 달을 앞당겨 계획하다 보니 두 달을 한꺼번에 사는 느낌이다. 2021년 1월을 업고 등장한 12월은 왠지 모르게 더 버겁더라니, 있는 힘껏 미루던 서른 너 때문이었구나.   


저도 별 느낌 없어요. 서른 이래 봤자 인생 뭐 없잖아요? 시니컬 한 내 대답에 인생 선배들이 일제히 일을 멈추고 돌아본다.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도 유분수다. 아직 앞길 창창한 서른이 얼마나 귀하냐 다들 앞다투어 한 마디에서 열 마디 던진다. 뭐하며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투덜대는 내게 곧 마흔을 앞둔 미혼의 Emliy 샘은 자신이었다면 대학원을 갔을 거라 했고, 굳게 닫힌 방문 너머 수험생 큰 아들을 모시고 사는 Christal 샘은 방송댄스를 배울 거라 하셨다. 37살에도 여전히 아가씨처럼 짧은 미니스커트를 어여쁘게 입고 사는 Julie 샘은 늦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외국에 나가서 새 삶을 살아야 한단다.


남의 고민은 대부분 3초를 거친 말 한마디로 종결된다. 내 일이 아니기에 객관성을 가질 수 있는 게 첫째 이유고 상황에 따른 조건이나 문제가 나에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둘째 이유다. 남 일까지 골머리 앓으며 고민하기에는 내 짐만으로도 충분히 무거운 인생 아닌가. 너만은 편하게 살아라 하는 마음에 건네는 말이 결국 나라면 이렇게 한다 라는 알맹이 사라진 겉껍질 같은 답을 가져온다. 1 더하기 1이 2인 것을 몰라 물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수식에 꼭 맞는 답이긴 하니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 뭐라도 해야 할 텐데. 노력 없이 변하는 현실이라고는 날짜와 계절뿐이다.


나라면 날아서 뭐든 했어요! 서른은 다 할 수 있는 나이인데.


날아서라도 뭐든 했을 거라는 Julie샘의 말이 아직도 나를 브런치에 붙잡아 둔다. 축 처지다 못해 으스러진 내 날개를 펴줄 수 있는 건 대체 뭘까.


얼마 전 노래가 좋아 합창 모임을 찾았다. 함께 할 사람은 없었지만 그래, 인생 혼자야 하며 세상 쿨하게 일시불로 결제했건만 며칠 못가 환불했다. 남을 홀릴만한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환불 사유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 번 모임에 6만 원은 과하다며 그럴듯한 핑곗거리를 찾는 데 성공했다. 작년 이 맘 때 했던 독서 모임을 해볼까 했으나 퇴근 후 지하철로 왕복 80분을 오갈 생각 하니 그 길에 혹시 코로나에 걸릴까 걱정되었다. 그래도 하자 마음먹었으나 원하던 모임의 마감 알림을 보자 내 의지도 그대로 마감되었다. 영어로만 말하는 커뮤니티에 등록하려던 날에는 웬일인지 로그인 자체에 애를 먹어 에잇 안 해, 시원하게 관뒀다.


서른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나이인데. 나는 무엇 때문에 핑계에 또 다른 핑계를 쌓아 꼭대기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걸까.


다 지나고 여든이면 좋겠어요.


대학 졸업 후 취직을 했을 때는 다 끝난 줄 알았다. 앞만 바라보며 쉼 없이 달리는 인생은 취업하면 더는 뛰지 않아도 되는 줄로만 착각했다.

워라벨을 즐기며 마음껏 늘어져 지내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와 보니 인생은 평생 게으를 수 없는 것이었다. 지금 만족하며 살기에 상대적으로 나는 너무 젊은 청춘이라고, 인생 다 마친 게 아니기에 미래의 행복을 보장하는 건 지금 나에게 달렸다고. 아무도 콕 집어 말해주지 않았지만 대충 눈치가 그렇다. 서른 언저리에 있는 내 모든 주변이 그렇게 산다. 뭔가에 쫓겨 허겁지겁 신발끈 동여매고 정신없이 내달린다. 달리는 동안은 적어도 한심하게 느껴지지 않을 테니 달리는 것 말고는 방도가 없다.


더 나은 직장을 위해 자격증을 준비하고, 일에 지친 나를 달래기 위한 취미를 찾는다. 혼자 살아도 그만이지만 혹시라도 있을 운명적 만남을 위해 나도 그럴듯한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퇴근했음에도 퇴근하지 못한다. 오늘만큼은 직장에서 크게 고생했으니 일은 1도 안 하겠다 마음먹고 넷플릭스와 즐거운 4시간을 보내지만 하루를 열심히 마무리하지 못한 찜찜함에 잠자리로 드는 취침 시간만 늦어질 뿐이다.


서른이 반갑지 않은 이유. 차라리 여든을 코 앞에 두고 살고 싶은 이유는 언제까지나 열심히 살아야 할 인생이 아득하게 느껴져서 인가보다. 인생의 마지막 때를 안다면 젖 먹던 힘을 내 달릴 수 있을까. 결승선이 눈에 보이면 드디어 끝이구나, 후들거리는 다리에 온 몸의 힘을 실을 이유는 그걸로 충분하니까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끝이 보이지 않는 전력질주를 통해 도착하는 곳이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좋은 곳이어야 하지 않은가. 하지만 한 평생 쉬지 않은 보람이 있구나 느끼게 해 줄 그런 종착점은 내 바람과는 달리 결국 죽음 아니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29.9살의 고민은 깊어진다. 죽음으로 달려가는 인생에 내가 무엇하러 청춘에 걸맞은 인생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흔히들 말하는 청춘이니까 새로 도전할 수 있는 특권을 누려야 한다는 말이 가장 불편하다. 청춘이면 다 누릴 줄 알았던 특권은 이제는 내게 최소한의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입장권처럼 느껴진다. 청춘을 누리기 위해선 입장권을 사셔야죠, 최소한의 대가는 지불해야 한답니다. 노력이란 걸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 지나고 여든 일 수는 없나요. 치열한 청춘을 반납하고 고요한 노후를 얻었으면 좋겠네요.


치열한 청춘이 빠진 고요한 노후는 없을 거라는 것을 빼곤 완벽한 말이었다.


그래도 어쨌든 청춘  


어쩌면 이 모든 게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하는 나를 위한 최후의 변론인 건 아닐까. 일단 시작하고 노력하면 생각보다 일이 수월해질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되면 나는 아마 내가 했던 고민을 하는 이에게 I’ve been there, trust me 하며 조언이랍시고 꼰대 짓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뭐, 그럴지도 모른다. 때로는 상황이 변하는 속도보다  내가 내린 결론을 뒤집는 몇 초가 더 빠른 법이니까.


나는 분명한 목적이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무기력한 나를 이끌어 낼 강력하고도 확실한 소명. 언제 끝날지 모르는 인생이고 결국 죽게 될 운명인 건 두 번 말해 입 아프지만 어쨌든 지금은 청춘으로 팔팔하게 살아있으니 말이다. 처한 현실이 이렇다면 최대한 잘 살아보자는 게 결국 내가 돌고 돌아 얻은 결론이다. 입장권을 강매당했다면 최대한 본전을 뽑아야 억지로 낸 돈 더는 아깝지 않을 테니.


목적이 이끄는 삶이야말로 어렵고 복잡한 길이 되겠지만 포기 않고 꿋꿋이 앞으로 가게만 한다면 이 한 몸 이 청춘 기꺼이 바치리다.

얼마나 가겠느냐 하는 의구심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작심삼일을 여러 번 연달아하라는 말도 있으니.


이번 주말에는 본가로 내려가야겠다.

아빠가 10년 전 사둔 책 꺼내 목적이 필요한 내게 건네주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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