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상처는 미루지 말자
아야.
실핏줄이 투두둑 터지고야 만다.
폴 댄스 6회째 수강생은 오늘도 애처롭다.
어쩜 이리 안 쓰는 근육과 여린 살갗만을 노리는지,
50분의 폴댄스 수업은 마치 맹수가 먹이를 쫓는 사냥의 현장을 라이브로 지켜보는 심장 쫄깃한 기분이랄까.
단지 이곳의 맹수는 먼발치에서 사냥감을 놓치고, 먹이는 먹히지 않은 채 상처만 입는 애매한 현장일 뿐.
오늘의 사냥은 폴 위에서 왼다리를 앞으로 뻗고, 오른 다리를 뒤로 반쯤 접어내 우아하게 버티기다. 준비 탕! 하면 상반신을 중력 반대로 끌어올려 펄쩍 뛰어오르지만 번번이 실패다. 헉헉대며 주저앉아 두 종아리를 보니 그새를 못 참고 파바박 터진 실핏줄이 검은빛 은하수를 이뤘다. 우주의 신비가 몸에 새겨졌으면 이쯤에서 제대로 된 그림이 한 번은 나올 법한데 희한하네,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오늘도 수고하셨단다. 벌써 파장이네 하하.
오늘도 땀만 흘리고 멍만 들었네요!
개그맨 장동민은 주변이 유상무와 유세윤의 뒷담화를 은근슬쩍 시작하면 본인이 가장 먼저 크게 나선다고 하더라. 비슷한 원리로, 나의 치부와 민망함은 내가 가장 먼저 희화화하는 편이다. 등 뒤에서 남들의 입에 맛있게 먹히는 두려움보다는 함께 대놓고 씹는 찌질함이 낫다는 결론에서 시작된 버릇이다. 본인이 실컷 해대면 주변이 되려 말리고 위로하는 식이다. 원장님은 배시시 웃으며 아유 자꾸 멍이 들어 어쩌냐 받아주셨다. 덕분에 마음 편안히 현관문을 나섰고, 피멍이 들 만큼의 최선을 다했다는 팩트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키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래도 차라리 지금 멍드는 게 낫지 않나? 멍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종목이 폴댄스라는데. 전신 구석구석에 멍 한 번은 들어봐야 나 폴댄스 좀 해봤다! 명함이라도 내밀지. 종이 한 장 당당히 들이대려면 지금 두 무릎 안쪽에 든 멍은 꼭 필요한 상처일 테다.
폴댄스뿐이랴.
인생 자체가 배움의 연속이니 멍 투성이 일 수밖에.
최근 시작한 글쓰기 모임에서 책을 쓰기 위한 기획안을 제출했다. 내 눈에는 마냥 예쁜 자식 같은 글이 남들 눈에 비칠 때 과연 어디가 부족할지 궁금했다.
궁금을 넘어 기대를 했던 게 탈이 난 걸까. 군더더기 없는 객관적인 피드백에 마음에 퍼런 멍이 들었다. 에잇 너 상처나 받아라! 무심코 던진 돌멩이 같은 코멘트는 절대 아니었는데도 꽤나 아파서 아찔했다. 이성 논리 객관 등등 이런 종류의 딱딱함과는 약 555m의 롯데타워보다 높은 담을 쌓으며 살아온지라, 칭찬과 격려를 쏙 뺀 단단한 피드백을 듣는 일은 안 쓰는 근육과 여린 살갗을 향해 파고드는 폴댄스의 쇠막대와도 같더라.
아파도 어쩌겠는가. 그만한 멍이 들지 않고서야 더 나아질 방도는 없으니 말이다. 전문가와 인생 선배의 가르침을 달게 듣지 않으면 나 홀로 제3의 길을 개척할 텐데 그때 가서 당황하기는 싫다. 열심히 폴을 타도 틀린 각으로 폼이 나지 않을 테고, 눈 빠지게 글을 써 책을 완성한다 해도 읽어주는 이 없이는 금방 외로워질 테니.
아플 만할 때 제대로 아프자.
뻘겋고 퍼런 멍이 이곳저곳에서 활짝 핀다 하더라도 더럽다 치사하다 나 잘났다 소리 빽 질러 부리나케 도망갈 생각 말고.
몸과 마음에 멍이 들고 그 위에 굳은살이 배길 때까지, 폴 위에서 각이 잡히고 내 글을 읽어주는 이가 편안해질 때까지, 초짜의 마음으로 실패와 상처를 겸허하게 받아들이자.
나는 벙보단 멍을 선택하겠다.
지금 멍들지 않으면 나중에 벙찌는 수가 있으니.
#사진출처_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