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의 싸움? 자신과의 키재기!

지난번 나보다 잘했으면 됐지

by 아링

폴댄스 수업 처음 10분간은 가벼운 스트레칭과 플랭크 그리고 스쿼트 중심으로 이루어진 동작을 통해 몸을 풀어준다. 초반에는 동작을 따라 하는 게 버거워 끙끙 댔는데 이제는 눈치가 늘어 여유롭게 낑낑 댄다.


선생님의 시연을 보고 있는데 어느 땐가 배웠던 기억이 났다. 가볍게 턴하고 발 바꿔 클라이밍. 공중에서 두 다리를 곧게 뻗어 폴에 걸고 상반신을 폴더처럼 접어내는 20초가량의 동작.


최초로 시도했을 때 다리가 펴지지 않아 애먹었고, 상체를 구부릴 때면 도저히 혼자 힘으로는 안되어 선생님이 내 허벅지를 받혀 붙들어줬던 동작이다. 폴 위에 다리를 걸고 매달려있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공중에서 푸더덕 거리며 버틸 수 있었다.


어딘가 어설픈 점프에 딱 봐도 영 글렀다 싶은 폼이지만, 클라이밍은 가뿐했고 두 다리도 잘 펴서 걸쳐놨다. 왼손을 머리 위로 짚어 그 사이로 오른팔을 통과시키고 상반신과 하반신의 만남을 추진했다. 반쯤 포기한 선생님의 표정에도 나는 꿋꿋한 미소 위에 두툼한 철판을 깔고 말했다.

저 처음보다 나아진 것 같아요!


그거면 됐다. 선생님의 환한 미소와 엄지 척 올려주는 칭찬이 없어 객관성은 떨어지지만, 처음의 나로서는 해낼 수 없는 그야말로 장족의 발전이다. 조만간 step 2로 가셔야죠 능글맞은 선생님의 농담에 손사래 치며 앞으로 100번은 더 해야 해요 하고 나왔으니 사실 발전 이래 봤자 여전히 꼴찌 수준을 면하지는 못한다. 그래도 괜찮다. 같은 시기에 등록한 사람이 저 멀리 앞서 나가든, 늦게 등록한 사람이 힘 안 들이고 쉽게 해내든 나랑은 전혀 상관없다.


성장기 아이의 키를 재는 일은 아이의 정수리가 닿는 벽면에 동그란 점 하나를 콕 찍어 놓는 것이다. 지난번 그 점을 찾아 이번에는 얼마나 컸는지를 보면 되는 것 아닌가. 몇 센티 컸는지 보려고 다른 아이를 데려와 뒤통수를 맞대고 괜히 숨 참는 일만큼 우스운 일이 또 있을까.


그러니 나는 지난번 기록해놓은 그 지점에 오늘의 나를 비교하련다. 훨씬 많이 자랐다. 쑥쑥 크고 있음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만큼 한다고 고생 많았어, 나를 토닥이고 칭찬한다.


키를 재는 건 나의 신체를 정확하게 알기 위해서다. 165cm의 신장에 걸맞은 체중을 유지하고, 짤롱하거나 흘러내리는 옷보다는 딱 맞는 기장의 옷을 입어야 하니까 말이다. 실력을 재보는 일도 그저 나의 현재를 측정하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노력할지 가늠하기 위함일 뿐이다. 남보다 더 잘났음에 감동하거나 더 못났음에 기운 빠질 게 아니라.


배우고 노력하는 인생이란다. 제 풀에 지쳐 포기하지 않으려면 내 키를 기록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자신과의 싸움은 내가 나를 꼭 이겨야 하는 강박을 쥐어주니 사실 조금 부담스럽다. 2021년을 사는 세대답게 우리는 자신과의 키재기를 하는 건 어떨까. 오늘은 또 이만큼 컸구나 나를 귀여워하는 일이야말로 백세 인생을 건강하게 롱런하는 방법일지 모른다.


#사진출처_구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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