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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은 Jul 18. 2020

슬기로운 휴학 생활 12화

후회하지는 않습니다만


오늘도 다이어리에 적는다.

책 읽기, 오늘의 회화, 토익 단어 공부, 자격증 기출문제 풀고 오답하기, 시나리오 쓰기. 

이 모든 것을 하다 보면 하루가 금방 저문다.


먼저 목차를 살피고, 계획을 세운다. 하루에 적어도 한 챕터씩 읽고, 공부하고 문제 풀기. 이 모든 것을 끝내야만 잠에 든다. 저녁까지 약속이 이어져서 다 할 수 없는 날에도 기필코 하나라도 끝내야만 마음이 편하다. 끝내지 못한다면 내일의 나에게 미루는 것이기에 해야 할 일이 밀리거나 쌓이는 게 싫어 그날그날 하는 걸 선호한다.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다.


고등학교 때에도 스터디플래너를 쓰며 이런 방식으로 공부했는데 그때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다. 적당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공부를 했고, 그 정도 공부한 대학에 갔다.


내 이런 집착 비슷한 계획 강박증에 시달리게 된 건 대학에 입학하고 난 후부터였다. 고등학교 때는 공부 잘하는 애와 공부 못하는 애가 확연히 갈라져있었기에 그저 그렇게 받아들였었다. 어차피 공부 잘하는 애는 계속 잘할 테니까. 나는 그 정도 까지겠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반면 대학에는 나정도 공부한 애들과, 나와 비슷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에 그중에서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적어도 그 집단에서는 특별해지고 싶었다.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3년 내내 학생회 간부로 활동했고, 교내 활동과 교외 활동까지 빼곡히 채우고 나를 굴렸다. 그럴수록 다이어리에는 빈틈이 없었고, 그렇게 바쁘게 사는와중에도 주말에는 오전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그리고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열심히 사는 애. 바쁘게 사는 애.라는 인식이 생겼다. 인정받는 걸 좋아하는 나였기에

그래, 더 열심히 살고 바쁘게 살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나도 사람인지라 다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해봤다. 그렇지만 다시 돌아왔을 때 감당해야 하는 걸 생각하면 그럴 수 없었다. 도망가서 얻을 수 있는 건 잠시 동안의 달콤한 행복뿐이니까. 책임져야 하는 일을 관두고 나를 위해 이기적인 생각을 하고 싶진 않았다.



드디어 도망쳐 온 휴학이었는데, 변한 건 없다.

재학 중에는 시험이니 과제니 누군가 시키기 때문에 하는 활동들이 있지만, 휴학 중에는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했다.

이 1년을 낭비할 순 없으니 또 나를 옥죄았다.

나는 이래야 해. 이걸 꼭 해야 해.


그러다 보니 내가 왜 휴학을 했을까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재학했더라면 좋은 학점도 챙길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돌이킬 수 없는 과거를 후회 할바엔 더 열심히 해야지. 후회하지 말아야지라고 되뇌었다.


채워져 가는 다이어리와, 지워져 가는 할 일을 볼 때마다 느끼는 뿌듯함 뒤에는 '아 쉬고 싶다'라는 불안감도 있었다.

누구도 시키지 않은 일에 스트레스를 받는 게 맞는 일일까, 하지만 성인이라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이 두 개의 논제에 부딪혔다.  

인정받는 게 좋아서 하는 일인지, 정말 나를 위해 하는 일인지. 이 일 좀 안 한다고 인정받지 못하거나 나 자신을 미워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하루는 친구와 놀다가 문득 아 집 가서 그거 해야 하는데 라고 할 일 스트레스를 밖에까지 가져와 버렸다. 하루쯤 쉬면 어 때?라고 생각할 순 있겠지만 만약 내가 그 하루를 쉬어버리면 다음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계속 쉬고 싶어 할 것만 같았다. 결국 그 날에도 집에 돌아오자마자 새벽까지 할 일을 끝냈다.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습관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자발적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 생각처럼 좀 쉬면 되잖아 라고 쉽게 말할 순 있지만 그렇게 할 수 없으니 그것 또한 스트레스가 됐다.


내가 원하는 게 취업을 위한 시간과 쉬는 시간이라면 적절히 시간 조절을 하는 게 필요하다. 이제라도 불안함의 원인을 알았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달에 있는 자격증 시험이 끝나면 평일에는 열심히 살고, 주말에는 느긋 삶을 살아야겠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어쩐지 휴학도
꼭 좋은 일은 아닌 것 같다.


부록)

뭐 그래도 무언가 꾸준히 열심히 한다는 것을 장점으로 삼아 이것에 대한 팁을 몇 가지 적어보자면

다이어리를 적는다. 미리 계획을 세워두고, 그 경과를 표시하는데 캘렌더에 표시할수록 경과 확인이 쉽다.

작은 계획부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가 목표라면 하루에 몇 챕터씩 읽을 것인가 정하고 일주일 챌린지에 도전한다. 그 챌린지에 성공했다면 계획을 늘려가도 좋다.

보상을 준다. 1시간 공부하고 휴대폰 20 분하고 이런 식으로 보상을 줘가며 계획을 실천하면 금방 한 가지를 끝낼 수 있다. 다만 휴대폰을 놓아야 하는 의지도 필요하다.

내가 왜 이 일을 실천해야 하는지에 대한 목표가 명확하다면 실천의지가 높아진다. 일단 '왜'하는가에 초점을 맞추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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