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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학년 5반 18번의 특별함  

 선생님으로서 엄마로서의 바람

"3학년 5반 18번 ooo!!"


"선생님!!?"


"그래, 너 아무개!"


"(엇, 담임선생님!)

  어떻게

 제 반이랑 번호까지 기억하세요?"


"안 잃어버리지~

 넌 참 특별한 학생이었지"



"정말요? 선생님께서 저 노래 많이 시키셨잖아요!! 기억나세요?!"


" 그럼,  그 노래 요즘도 부르니? "


"윽.. 선생님 저 이제 개구쟁이 학생 아니에요.!

저는 사범대에 편입을 해서 특수교육을 배우고 있어요.!"


"아휴, 우리 oo이가 좋은 곳에 편입해서 공부한다니 참 좋다.

그때 넌 참 말을 잘했었어. 공부도 열심히 해봐. 잘할 거야"


스물넷,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4년이 흐른 뒤 우연히 식당에서 선생님과 나눈 짧은 대화다.







이름과 반, 번호까지 기억해 주신 선생님은 나에게 특별한 분이다.  



그 시절의 나는 공부하는 수험생보다는 말괄량이였다.

중 2병으로 사춘기가 심했던 나는 간신히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고 이른 아침 체육복으로  등원하던  학생이자 기숙사에서 몰래  배달음식을 시켜 먹던 까불이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을 졸업할 때까지 난 15등 전후를 줄다리기하듯 왔다 갔다 하는 그저 수많은 학생 중 하나였다.



하지만 고 3 수험생 시절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온다. 그건 제자인 나를 소중히 여기는 귀한 마음을 가진 선생님 덕분이기도 하다.



선생님과 함께한  두 가지 에피소드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노래와 관련된 기억이다.  2009년 대학가요제에서 "ex의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곡이 대상을 받았었다. 같은 반의 몇몇 친구와 담임선생님이 함께 친구의 병문안을 갔던 날이었는데 입원한 친구는 "여긴 너무 지루해. 웃을 일이 필요해. 웃겨줘"라는 말을 했었다.


제법 친구를 웃길 줄 아는 나는 친구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할 수 없는 착한(?) 친구라서 듀엣으로 춤을 춰 주던 친구 등에 올라타 "ex의 잘 부탁드립니다" 노래를 불렀다.  철부지 고3 여학생들은 꽤나 시끄러웠다.


그때  노래가 끝나갈 무렵 옆 방에서 누군가 왔다. '혹시 병실 내 순회공연을 해달라는 요청인가?'하고 착각하던 순간 "너무 시끄러워요. 여긴 병원이에요. 조용히 좀 해주세요."라는 반응에 우리는 급하게 병실 내 공연을 마쳤다.


 선생님은 공공장소였기에 노래를 부르면 안 되는 걸 알았지만 오랜만에 만난 아픈 친구를 기쁘게 해 주는 일이기에 말을 아끼셨다.


 하지만 병실을 나가면서 선생님은  "그러게, 왜 노래를 부르냐며" 혼내는 것이 아니라

"다음에는 선생님이 시킬 때 한 번 불러봐"라고 격려하며 민망한 웃음을 지으셨다.


움찔하고 민망한 추억이지만 그때 선생님과 함께 했던 병실 내 순회공연은 선생님과 함께 추억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 중 하나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반성문 사건이다. 운동장에 무단외출 했다가 선생님께 반성문을 썼었나 보다.


기억조차 하지 못했었는데 선생님은 내가 임용이 되었다고 전화했던 29살인 나에게 십여 년 전  반성문을 카카오톡 메시지로 돌려주셨다.

 선생님의 서랍장에 소중하게 보관된 쓰레기가 될 뻔한 내 반성문.


그게 뭐라고 직접 그 종이와 내용을 간직하고 계셨던 모습에 제자를 아끼는 선생님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학생이었을까?

그리고 나는 아이들이 준 사랑한다는 편지, 그려준 그림 등을 간직한 선생님이 되지 못했는데..

우리 아이가 만나게 될 선생님은 어떤 선생님일까..?


 어찌 보면 꽤 떠들고 학업에 집중하지 못했던 나를 미워하셨을 법 한데 고등학교 3학년 선생님은  나에게 내가 잘하는 것을 격려하고 잘하는 것을 자주 언급해 주셨다.

oo 이는 노래를 참 잘 부르는 는 것 같네.  뭐가 되고 싶니?
oo 이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사람들과 함께하는 직업을 하면 좋겠다
가끔 oo이가  발표하는 걸 들으면 참 잘하던데..
oo 이는 글을 재미있게 잘 쓸 것 같아"  


나는  내 담임선생님과 같은 말을 자주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나도 그리운 선생님일까? 나를 만나는 엄마의 얼굴 속에 "oo반 선생님, 정말 보고 싶었어요. 그때 너무 감사했어요"라고 손 붙잡아 줄 엄마가 몇 명이나 있을까?


유아특수교사로서 잘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에 '내 아이가 장애가 있더라도 잘 키울 수 있겠구나'라는 착각도 했던 나. 엄마가 된 후로  깊은 반성을 했다.


 나는 가르치고 있는데 부모님이 협조를 안 하는 것이라며 쉽게 생각했었다.   

기저귀를 갈며  '왜 제때 기저귀 연습을 안 했을까?'라는 말을 했고  '왜 스스로 먹이지 않았을까?' 하며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라고 쉽게 말을 내뱉었다.  내가 부모보다 더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통합반 교사(장애아동이 포함된 학급)에게도 '아이의 강점과 좋아하는 걸 고려해서 활동'을 해 주세요라며

환경도 바꾸고 협력도 꽤 열심히 했지만  정작 난  내 아이의 강점조차 바라봐주는 엄마가 되는 것조차 어려웠다.


 때로는 잘 가르쳐도 아이의 타고난 기질이 너무 예민하여 또는  아이의 장애로  너무나도 노력했지만 지쳐버린 부모님의 상황이나 감정을 나는 과연 어떤 얼마나 이해했을까.


나의 강점을 말해주며 격려하고 반성문 종이 조각 한 장까지도 특별하게 여기는 우리 담임선생님처럼  앞으로 기억될 내 모습은 다르게 기록하고 싶다. 아이의 작은 성장도 귀하게 여기며 부모의 노력을 격려하고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선생님, 보고 싶어요. 그리고 소중한 기억을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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