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는 없는 것이었다. 켜켜이 먼지가 쌓인 책들도, 잘 입지 않는 옷들도 모두 그녀가 준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손가락의 반지도, 한시도 빼지 않는 목걸이도, 심지어는 언젠간 바스러질 몸뚱이도 모두 그녀가 준 것이었다.
보상 없는 사랑이 존재한다 믿은 것이 죄였다. 살아있는 매 순간 끊임없이 죄를 짓고 있었던 것이다. 죄로 지은 빚을 어린 나이에 깨달아본들 혼자서 생활할 수 없는 이상 계속 빚이 늘어갈 뿐이었다. 어떻게든 빚을 갚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그녀가 가진 병은 내가 해온 많은 노력들을 그녀로부터 망각하게 만들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십수백 번 넘나드는 것을 지켜보는 나의 삶. 그것이 유일한 속죄였다.
19살이 될 때까지 긴 속죄의 시간을 보내고 성인이 되자 그저 지긋지긋해졌다. 길고 긴 세월을 함께 겪으며
자신이 지쳐 나를 상처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던 그녀와 함께하며, 미처 들여다보지 못했던 상처들이 터져 나왔다. 나는 그녀가 아니며 그녀도 내가 아님을 늦디 늦게 깨닫자 내가 가졌다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통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것 하나 없는 것처럼 생활했다. 꼭 필요한 것만을 사용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돈을 벌 수 있는 나이부터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 쓰고, 대학은 장학금을 받아 다니며, 더 이상 빚을 지지 않도록. 그녀가 말했듯 나는 거머리 같은 존재였을 테니 떨어져 주어야 했다. 조용히 집을 구하고 시끄럽게 나왔다. 대학생 신분에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는 것은 끔찍했다. 외로웠다. 하지만 그 집에서의 기억을 떠올리니 그 외로움 조차도 내가 원하던 것이었다.
혼자 생활하며 그녀와 연을 끊다시피 하니 주변의 단란한 가정을 보며 부러워하게 되었다. 나는 왜 저런 가정에서 태어나지 못했는가를 원망하며, 끊어내고 싶어 모질게 대하는 모든 순간을 죄스러워했다.
그녀가 죽는다면 하게 될 후회들을 수없이 곱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