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보호사일을 끝내고 돌아오는 길엔 항상 갈증이 났다. 여름철 실외보다는 훨씬 낫지만 에어컨이 없는 실내에서 집안일을 하는 것도 땀을 많이 흘리는 일이었다. 코로나가 재유행하던 시기라 면역력이 약한 어르신의 상황을 고려해 마스크를 쓴 상태로 근무했다. 되도록이면 벗지 않으려 하다 보니 물 마시기도 점차 안 하게 되어서 일을 마치고 나면 무척 물이 고팠다.
목도 축이고 더위도 식힐 겸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있던 도서관에 자주 들렸다. 어르신께 보여드리면 좋을 그림책을 고르다가 찾은 것이 이재연 작가님의<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이다. 어르신과 연배가 비슷한 작가님이 70세가 넘어 그리고 쓴 그림책이다. 작가님은 한국의 모지스 할머니라고 불린다고 한다.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 쓴 그림책인데도 그 당시의 생활이 생생하게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그림을 70세가 넘어 그리셨다니 그 열정과 재능이 대단하신 작가님이시다.
어르신께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보기 싫다고 하시는 날엔 무리해서 권하지 않았다. 며칠을 가방에 가지고 다니다가 괜찮다 하시는 날에 드디어 이 그림책을 꺼냈다. 그 시절의 일을 모르는 내가 더 신나서 그림 속 상황을 설명드렸다. 어떤 그림엔 흥미를 보이시기도 하고 어떤 그림엔 시큰둥하시기도 했다. 어르신께서 그림책에 나온 장면을 보며 어릴 적 했던 놀이들과 풍경들을 말씀하셨다.
그림책을 함께 보며 내가 더 신나 했던 이유가 어릴 적 추억들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어릴 때 시골에서 살던 기억이 좋게 남아있어 그립기도 하다. 시골에서는 어린아이들도 집안일의 일부를 당연히 하는 것이라고 여겼다. 농사로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잔가지와 솔잎 땔감을 해 온다거나 집안 청소를 하고 밥을 짓기도 했다. 이런 일들이 힘이 들 때도 있었지만 어린 나에게는 즐거운 놀이처럼 생각됐었다. 함께 땔감을 모았던 언니의 마음은 모르겠지만.
그림책을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것은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읽어주는 사람에게도 즐거움과 감동의 순간을 선물해 준다. 짧은 그림책을 보고 읽는 것만으로도 함께 무언가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