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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새 Aug 15. 2020

지하철에서 못참고 그만..

세상에는 감사해야 할 것들이 참 많다.

오늘 아침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미리 잡혀있던 일정도 미뤘다.

사실 기대를 했는지 안했는지 내 감정을 정확히 알 수 는 없지만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준비를 해야해서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하는것을 알았지만,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어제의 나는 오랜만에 먹는 막걸리에 흠뻑 빠져서 오늘 아침 좀비의 몰골로 눈을 뜨고 말았다.


알람소리에 눈을 떴을땐 그래도 죽을정도의 숙취는 아니네 싶었다.

그리고 몸을일으킨 순간 '휘청'거림을 느꼈다. 머리가 아프면서 '아 대체 나 얼마나 마신거야' 라고 생각했다.

어찌됐던 '술병'을 이유로 취소하고싶은 약속은 아니라 그대로 가기로 마음먹었다.

8시30분 정도 되는 이른 시간이라 약속을 바꾸기도 애매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버틸만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집부터 목적지까지 지하철에서만 대략 50분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어지러운 머리를 붙잡고 깔끔하게 입느라 신경쓴 신발도 사실 너무 불편했다.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이라 다행이도 앉아서 갈 수 있었다. 1번의 환승을 하면 30분정도 쭉 가야해서 알람을 맞추고 잠에 들었다.

'고속터미널역'에서 핸드폰이 날 깨웠다. 언제나 이 역에만 오면 새로운 설렘 그리고 거기에서 오는 긍정적인 느낌에 늘 기분이 좋았는데, 백수가 되고 난 후로 그런 느낌을 받은적이 없다. 그렇게 깊게 잠든게 아니라서 눈을 뜨면서부터 이런저런 생각을 했는데 갑자기 속이 이상했다. 지하철을 타고 멀미가 난적이 있던가? 명치 사이에서 뭔가 꿀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트림이 하고싶은걸까? 아 이건 토하고 싶은거다.


때마침 곧 정차한다는 안내멘트가 들려왔고 속으로 '제발 빨리!!!!!' 라고 외쳤다. 그게 아니라면 '조금만 참아!!!' 였을까? 어딘가 심하게 불편해보이는 나를 사람들이 쳐다보기 시작했다. 점점 식은 땀이 났고 더이상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이미 내가 참고 못참고의 문제가 아니였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였다.

그렇게 난 오늘 '살다보면 그럴 수 있지' 카테고리에 들어갈 일을 하나 더 만들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침에 마신게 물밖에 없어서 엄청난 추함은 아니였다. 야속하게도 그렇게 싸질러 놓고 나니까 지하철 문이 열렸다. 정말 치우고 싶었는데 오늘은 가방도 없이 핸드폰만 덜렁덜렁 들고 외출을 했기때문에 뭘 어떻게 할 수 가 없었다. 일단 내가 탔던 칸의 번호를 외우고 쓰고있던 마스크로 입을 대충 가리고 나왔다. 진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일을 내가 한 것이다.

1. 세상세상 더러운 일을 벌려놓고

2. 치우지도 않고 나왔다.

양심에서 불이 나는 듯 했다. 신발까지 말썽이였다. 발이 너무 아픈데 화장실은 너무 멀었다. 아침에 마신 요구르트 냄새가 온 몸에서 나는 듯 했다. 겨우 화장실에 도착해서 일단 손을 씻고 입을 닦았다. 아무리 물만 마셨어도 누군가 내 얼굴을 신경써서 본다면 충분히 토를 했구나 알아챘을듯하다. 마스크 덕에 일부추한 모습을 가릴 수 는 있었지만 더 크게 범벅이 된 얼굴을 씻어냈다.


그래도 끝까지 약속을 가야겠다는 신념을 갖고 다시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동시에 내가 벌인 일을 처리해야하기에 도시철도 공사에 전화를 걸었다. 

돈을 내라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지만, 내 실수이니 당연 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상담사가 연결 되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제가 한 오분정도 전에 고속터미널 역에서 내렸는데 지하철 안에 제가 토를 해버렸어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할지.. 0000칸에 탔습니다"

"고객님 구토를 하셨다구요? 고객님 몸은 괜찮으세요? 혹시 지금 어디에계신가요?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깜짝 놀랐다. 그 상담사의 친절함에 너무 감동했고 정말 놀랐다. 나는 죄인처럼 전화를 걸었는데도 나의 상태를 먼저 물어봐주시는 그 목소리에서 너무나 진심이 느껴졌다. 정해진 메뉴얼일 수 있지만 누구나 그 친절한 목소리를 들으면 이사람이 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고 느껴질것이다.

"아 저는 괜찮고 거기를 치웠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못들고 타서 치울 수 없었어요 죄송합니다"

"고객님 저희가 청소는 빠르게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구요 고객님 몸상태는 괜찮으신가요?"

내가 어디있는지 도움이 필요한지 그리고 역마다 있는 사무실에 가서 도움을 청하면 쉬어갈 수 있게 도움을 주신다는 말과함께 전화를 끊었다.

각박한 세상을 살고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돈'부터 생각했던 내가 제일 각박한 사람인것을 느꼈다. 나는 누군가에게 이런 감동을 줄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해보는 좋은 계기가 됐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 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일을 망치게 된 것보다 실수한 사람의 마음을 먼저 살피는 인간적인 사람이 되도록 더 많이 노력해야겠다.

다시한번 정말 감사하고 죄송했다. 다음부터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

그런 의미로 결국 지하철을 반대로 타서 약속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온 나를 채찍질 하기보단(이미 충분히 자괴감을 느꼈다) 그럴 수 있지 라는 말로 다독여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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