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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존새 Aug 10. 2020

돈, 얼마나 벌어야 만족스러울까요?

"돈돈돈"

늘 부모님의 입에서 나오던 노랫소리같은 말이다.

돈 얼마나 아름다운가.

우리아버지는 새마을 운동시기에 태어나서 어쩌면 자식도 본인이 지은 농사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돈을 벌어오는 딸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딸이라고 생각하신 분이었다.

엄마도 당시 교수인 친구가 본인의 학과가 전망이 좋으니 너희 딸이 오면 좋을거라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부모님의 바람대로 인풋은 적고 아웃풋은 클거라고 생각한 과로 진학했다.

어떻게든 나의 진로를 바꿔보려고 애썼으나 무용지물이었다.

삶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그놈의 생계라는게 뭔지 나는 빠르게 졸업을하고 바로 세상에 던져졌다.


난 남들보다 빠르게 돈을 벌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대학생이며 누군가는 군대에 있는 그 시기에 난 먹고살기위해서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장삿집 딸이라 그런지 타고난 사람처럼 서비스에 강했고, 돈계산이라면 누구보다 빨랐다.

거기에 꽤 많은 아르바이트 경력이 있어서 딱히 미운털 없이 사회생활을 하며 돈을 모을 수 있었다.

난 사회에 나와서 공부에 재미를 붙였다. 솔직히 재미를 붙였다기보단 전문대를 나와 할 수 있는건 세상에 많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재수를 하고싶었으나 기울어진 가세탓에 굶지만 않으면 다행이었고, 편입성공은 일하는 시간을 쪼개서 공부하는 내겐 사치같은것이었다. 그 후로 내가 제일 부러운 사람은 억만장자가 아니고 부모님이 제공하는 집에서 그저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가진 사람이되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그냥 돈을 벌자고.

주6일을 일했다. 매일 11시간씩. 창문도 없는 공간에서 어림짐작 바깥은 이만큼 어둡겠구나 하며 하루를 보냈다. 그땐 여섯시는 그저 퇴근하는 손님들이 찾아오는 러쉬타임 정도라고만 생각했다. 왜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하는 우스운 생각이든다.

같은 업을 하는 친구들은 군대를 갔었고 어린나이라 다른 공부를 하겠다는 친구들도 종종 있었다. 주5일 일하는 친구에 비하면 난 당연히 더 받아야 마땅한데 그게 위로가 되었다. 따라갈 수 없는 부모님의 경제력을 내가 금방이라도 잡을 수 있겠다는 헛된 망상과 함께 말이다.

돈을 벌면 더 많이 벌고싶다 라는 생각이든다. 통장에 빼곡해진 숫자들은 3개월 전의 나라면 부러워할 정도인데 정작 그 숫자들이 내것이 되면 우스웠다. 이정도로는 안되겠다, 더 많이 벌어야지.

한낱 월급쟁이에게 노력한다고 더 많은 돈이 들어오진 않았다. 나의 노력을 알아주지도 않았다. 남의 인생이 부러워보였다. 월급과 일하는 시간을 나눠보니 최저임금에서 조금 더 받는 내가 어이가 없었다. 어쩌면 질려버렸는지도 모른다. 일에대해. 차라리 조금벌고 조금 일하자는 심정으로 퇴사를 했다.


일을 하던시절보다 쉬는동안 돈을 더 많이 썼던 것 같다. 처음엔 떨어지는 잔고를 보며 마음이 아팠다. 적금을 깨면서도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을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생각을 바꿨다. 돈은 있을때도 없을때도 있고 난 아직 젊으니 언제든 다시 벌 수 있다.

그놈의 돈이 뭐라고 나를 이렇게 스트레스 받게하는지... 그러면서도 쉬는걸 멈추진 않았다. 그동안 고생한 나에대한 포상이랄까. 일정부분 돈이 떨어지고 나면 해탈을 하게된다. "와 이정도나 남았네? 더 쓴줄 알았는데!"하면서 말이다. 어차피 없는돈이니 별로 연연해하지도 않는다. 굶지만 않을정도라면 하고싶은 일을 하는게 우선이 되었다. 지금의 나처럼 말이다.

그때 많이 깨달았다. 돈을 벌고있으면 더 벌고싶어진다. 더 인색해지고 못난 모습으로 변한다. 100원이 있으면 천원을 갖고싶은 마음에 더 크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어차피 이래도 없고 저래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 적은 돈에도 소중해지고 꼭 필요한 곳 에만 돈을 쓰게된다. 자연적으로 돈과 바꾼 내 시간에 집중할 수 있게되고 마음은 더 편안해진다고 느껴졌다.


호주를 가서도 매주 앞자리가 바뀌는 기쁨에 쉬지도 않고 일을했다. 그랬더니 돈과 함께 병을 얻었다. 난생 처음으로 식도가 타들어가는 느낌을 받았고 5년만에 걷지도 못하고 길에 주저 앉아 벌벌떨어봤다.

역설적이게도 난 지금 백수다.

그렇게 돈모으는것에 혈안이 돼서 한국 가자마자 돈 엄청 모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또 백수다. 사실 잠깐 일하는 동안 코딱지만한 월급을 받고 돈을 모으면서도 더 많이 벌지 못하는것에 초점이 맞춰져있었다. 더 좋은 직장을 찾아서 10만원이라도 더 주는 직장을 찾아서 헤매는 하이에나가 돼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경제도 어려워서 함부로 그만두지도 못한다는 생각과, 미래를 그려야 한다는 압박감에 나는 점점 미쳐갔다. 그렇게 그냥 백수를 선택했다.

백수된지 한달정도 흘렀다.

통장에 잔고는 뚝뚝 떨어져 가지만 큰 압박감은 들지 않는다. 월급을 받으면서도 이것가지곤 택도 없다는 생각을 하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흐르는대로 살기로했다.

돈을 벌기 시작하면 난 또 달리겠지, 백만원에서 천만원으로 그리고 그 다음으로. 그런데 지금은 그러고싶지가 않다. 나를 이해하고 마음이 풍요롭고싶다. 마음 급하게 달린다고 진짜 그 돈이 벌리는 것도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어차피 내가 만족할만큼 벌 수 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오늘을 편안하게 돈이 아닌 나를 위해서 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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