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멍 걸으멍, 가파도 한바퀴

by 블리

작년 이맘때, 생일을 맞아 가파도에 들어갔던 하루가 유독 좋게 남아 있다. 특별한 계획 없이 밥 먹고, 걷고, 사진 찍고, 그냥 쉬다 나왔던 시간. 그래서 2025년에도 비슷한 시기에 다시 가파도를 찾았다.


이번엔 클린올레를 겸해, 생일맞이 여행이라는 명분까지 더해 겸사겸사 섬을 한 바퀴 걷기로 했다.

오랜만에 배를 탄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먼저 설렜다. 운진항에서 배에 오르며, 한편으로는 ‘제발 배멀미만 하지 않게 해달라’는 소소한 바람도 함께 실어 보냈다. 15분 남짓이면 닿는 가까운 섬이지만, 배는 거의 만석이었다.

청보리 축제가 끝난 뒤에도 가파도를 찾는 발걸음은 여전히 많았다.
멀리서 보이는 가파도 마을 풍경만으로도 이미 여행의 절반은 채워진 기분이었다.


터미널을 지나 10-1코스 표식 앞에서 스탬프를 찍고, 집게와 봉투를 꺼내 클린올레 준비를 마쳤다.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바로 출발. 날은 흐렸지만, 오히려 그 덕에 더 느긋하게 걸을 수 있었다. 사진도 찍고, 바다도 보고,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쓰레기도 줍고 섬 안에서 또 다른 섬을 걷는 듯한 기분이었다.


올레길은 마을 골목을 지나 해안길로 이어진다. 가파도 특유의 낮은 돌담과 조용한 분위기가 인상 깊었다.
길가 돌 위에 적힌 짧은 문장들도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작년엔 보지 못했던 장면들이다. 같은 길을 다시 걸으면, 풍경은 늘 새롭게 다가온다.


‘가파도 맛집 1위’라는 핫도그 집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올레길 표식이 분명 그쪽을 가리켰는데, 잠시 놓쳐 한 번 헤매고, 결국 다시 돌아가 입장. 따끈한 핫도그로 입가심을 하고 다시 길 위로 올랐다. 아기자기한 소품샵과 작은 카페들이 섬의 분위기를 한층 더 살려준다.


해안길에 들어서자 시야가 확 트였다. 돌, 바다, 그리고 바람.
가파도는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언젠가는 이곳에서 하루 묵으며 백패킹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후 늦게 들어와 머무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의 고요한 가파도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의외로 쓰레기는 많지 않았다. 섬 주민들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이곳을 돌보고 있는지

걷는 내내 느껴졌다. 바다 냄새를 깊이 들이마시며 걷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차분하게 정리됐다.


가파도 다음은 마라도라던데, 다음 여행지는 자연스럽게 정해진 셈이다.

길 곳곳에는 청보리를 아끼자는 안내 문구들이 서 있었다. 지금의 청보리는 황금빛으로 익어가는 중. 갯무꽃, 유채꽃, 들풀까지 섬은 여러 색으로 차분히 채워지고 있었다.

어디를 찍어도 포토존이고, 어디를 봐도 바다였다.

아주머니들 사이에 슬쩍 끼어 유채밭에서 사진도 한 장 남겼다.
걷는 내내 “하루 묵고 싶다”는 생각이 계속 따라왔다. 섬을 거의 한 바퀴 돌 무렵, 가파도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사실이 더 또렷해졌다.

음식점, 학교, 재활용 센터까지 일상의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주운 쓰레기를 분리배출하고 종점에 도착했을 때, 짧지만 꽉 찬 여행을 마친 기분이 들었다. 가파도 올레길은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 남짓. 하지만 나는 세 시간을 머물렀다. 걷다가 멈추고, 사진을 찍고, 구경하고, 다시 걷는 시간까지 모두 포함한 온전한 섬의 리듬이었다.


예쁘게 차려입고 집게와 봉투를 들고 걷는 모습이 조금은 낯설었는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유독 따뜻하게 들렸다.

주민들이 지켜온 깨끗한 섬 위에서 작은 도움을 보탠 하루여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쉬멍, 걸으멍 보낸 세 시간. 그렇게 클린올레 13코스도 마무리했다.


좋은 날, 좋은 길 위에서 충분히 여유를 누린 생일 여행.


다음엔, 또 어디를 걸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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