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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링고주스 Aug 28. 2021

사과 바

사과 이야기

사과 바


여기는 사과로 만들어진 칵테일 바. 의자도 테이블도 가게 전부가 사과나무로 만들어졌고 턴테이블로 소리를 낸다. 사람 손이 스친 음악과 끌림이 공존하는 곳. 모든 것은 손때 묻은 물건과 흔적들로 사람 냄새가 가득했고 최소한의 기계 힘을 빌려 정성 어린 손길이 담긴 것들로 구성된다. 그만큼 느리게 흐르는 공간이지만 느긋한 손님들이 자연스럽게 방문하고 주인은 나긋이 맞이한다.

그러다 보니 소란스러운 잡음보다 상냥한 말들이 난무했다. 서로의 속삭임 같은 말들은 숨죽여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듯 말을 해야 했고 아무도 불평하는 사람 없었다. 다정함과 배려가 섞인 장소여서 진정성이 없는 말들은 사라졌고 고유함을 원하던 사람들이 모여 작은 목소리가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공간으로 지극히 독립적이고 고요한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혹은 그런 곳을 이상화하면서 불만보다 기쁨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신기루처럼 자주 찾거나 말이다.

조근 조근한 말들과 클래식한 소리들이 한데 뒤섞인 공간에 낯선 바람이 들어오면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자리는 듬성듬성 남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남성은 긴 테이블에 앉아있는 한 여성의 옆에 자연스럽게 앉았다. 서로 눈인사를 주고받았고 몇 마디 대화를 나누었다. 서로가 가진 부드러움은 같은 부류라고 직감한다. 남자는 자연스럽게 애플 모히또를 주문했고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01. “혼자 다니는 것을 외로운 사람이라고 규정짓는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니다. 비겁했어요, 술집에 혼자 오는 여자는 외로워 보이나요?” 침묵을 깬 여자의 질문에 남자가 답했다. “이유가 그것이 전부는 아닐 텐데 외로움만 부각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떤 의도인지 대충 알 거 같아요.” 그 남자의 대답에 여자는 만족했다는 듯 답례로 미소를 보여주었다. 그는 피하지 않고 다정하게 그 미소를 바라본다.

02. “얼마 전 좋아하는 작가의 개인전을 보러 갤러리를 갔어요. 지인과 함께. 많은 작품 중 열정적인 키스를 하는 남녀의 그림이 하나 걸려있었죠. 지인은 그 작가가 분명 사생활도 음탕할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전반적으로 전시는 불쾌했다는 저평가와 함께 말이죠. 그 그림은 작가의 다양한 면 중에서 일부였고 다른 작품과 배경들을 보면 그 작품은 춤 또는 노래였어요. 행위 중 하나로 언어의 또 다른 형태요.”라고 여자는 만난 지 얼마 안 된 낯선 사람에게 한탄을 한다. 마치 알고 있던 사람에게 말하듯, 원래 그렇게 해왔다는 듯. “전체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부분을 보는 사람이 있죠. 부분을 극대화해서 그것이 전부라고 하는 사람은 허물을 입은 듯 어딘가 불편해 보여요. 문제는 상대에게도 그 허물을 덮으려는 공통점이 발견돼요.” “맞아요, 다르다는 분리가 불안을 만드는 걸지도 몰라요. 어쩌면 나 역시 마찬가지 일지도 모르겠네요.”, “나와 같은 것을 봐주면 좋겠다는 기대 심리가 있을지도 모르죠. 유아적인 것으로 천진하다는 거죠.”, “유아적인 것보다 미개에 가깝지 않을까요.” 하며 킬킬대며 허물없이 같이 웃었다.

03. 세상은 알고 있는 것보다 알 수 없는 것들이 더 많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두 세상은 서로를 빨아들였다. 입술과 입술 사이에서 내뱉는 달콤한 단어의 입김은 촉촉하다 못해 젖어들었다. 서로의 시선은 입술로 향해 있었지만 누구도 천박해 보이지 않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함을 말하는 듯했다. 만지지 않아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말은 당신과 나는 같다, 혹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는 안심에서 비롯된 충족감이었다. 둘은 너무 오랫동안 혼자였다. 상대가 있지만 혼자라고 느끼는 비참함을 주는 이전의 사람들과는 달랐다. 그것은 이성을 넘어 마음으로 느껴질 수 있었다. 마음에서 충분히 느껴지는 것들은 설명이 필요 없다. 마음이 이미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04. 이제 막 상대를 찾았고 시작 단계에 있는 남녀는 초월적으로 매력을 풍긴다. 특별할 거 없는 대화에서 가끔 찾아오는 침묵은 서로를 더 긴밀하게 만들어주는 시간이었다. 그들에게 직업, 환경, 마지막 연애, 과거 연애에 대한 실패 이유, 이상형과 같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뻔한 질문은 결과도 뻔할 것 같아 그렇게 되고 싶지 않은 바람일지도 모른다. 혹은 서로를 파악하지 않겠다는 자세로 지금에 충실한 상대의 모습만 보겠다는 마음과 두근거리는 이 마음이 혼자만 느끼고 있다는 착각으로, 실망과 혹시나 받을 상처에 대한 우려의 두 가지 마음 일지도 모른다.

05. “서점에 가면 그 사람이 요즘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가고 싶은지, 제자리에 가만히 서서 읽고 있는 책의 제목을 보면 알 수 있어요.” 남자가 말했다. “타인을 통해 자신을 카멜레온처럼 바꾸는 예민한 지각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요. 그들은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책을 통해 자신을 돌아봐요. 그런 귀중한 시간을 겪고 자신을 찾아가는 사람이 보는 책을 저는 좋아해요.” 여자가 답했다.

06. 대화로 충분히 일체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한 순간 절정에 이르렀다. 거짓 없는 솔직한 대화는 서로의 영혼을 탐했고 어루만진다. 그들은 아무도 방해받지 않는 둘만의 필로우를 채우기 위해 사라졌다. 사랑이 오는 광경을 본다는 것은 예상치 못한 사고와 같아 반짝하는 찰나라고 하지만 어떤 이들의 시작은 고요히 반짝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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